우리는 왜 어떤 순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가― 트리거 가설로 설명하는 ‘자아 기동’의 이야기

우리는 흔히 인간을 “선택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원하면 움직이고, 싫으면 멈출 수 있으며, 잘못된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믿는다.
하지만 살아보면 이 설명이 맞지 않는 순간이 분명히 존재한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순간 말이다.

1. 의지가 사라진 게 아니라, 작동하지 않는 순간들

실패, 우울, 번아웃, 극심한 스트레스, 공포, 혼란, 혹은 설명하기 힘든 무력감.
이 상태에서 사람은 “게으른 것”도, “의지가 약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자아가 기동하지 않는 상태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다.

  •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

  • 무력감이나 재능 혹은 심리적 병리등의 환경의 영향으로 못하게 되는 것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사회는 이 둘을 자주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비난하게 된다.

2. 트리거 가설: 인간은 ‘항상 작동하는 존재’가 아니다

트리거 가설은 아주 단순한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행동 능력은
성격이나 의지의 총합이 아니라
특정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 활성화되는 상태다.

즉, 인간은 항상 켜져 있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스위치가 눌려야 작동하는 시스템에 가깝다.

이 스위치를 여기서는 **트리거(trigger)**라고 부른다.

3. 트리거는 무엇인가?

트리거는 하나가 아니다.
대개 다음 조건들이 겹칠 때 자아가 기동한다.

  • 기본적인 생리 상태 (수면, 에너지, 통증)

  • 인지적 여유 (정보 과부하 여부, 집중 가능성)

  • 정서적 안정성 (공포, 수치심, 압박의 강도)

  • 환경적 안전성 (실패해도 즉각적인 처벌이 없는가)

  • 예측 가능성 (다음 행동의 결과를 그릴 수 있는가)

이 중 몇 가지만 무너지면,
사람은 ‘선택할 수 있는 존재’에서
‘반응만 하는 존재’로 밀려난다.

4. 책임은 언제 성립하는가?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자아가 기동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우리는 동일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트리거 가설의 대답은 명확하다.

아니다.

책임은 선택의 결과에 부과되는 것이지,
선택 불가능 상태에 부과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책임을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책임이 성립하는 조건을 정확히 하자는 말이다.

5. 그래서 이 이론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이 이론은 우리에게
“더 열심히 살아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이 사람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상태인가?

그리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윤리와 제도의 역할은 바뀐다.

  • 잘못을 평가하는 것 ❌

  • 가치를 매기는 것 ❌

대신,

  • 자아가 다시 기동할 수 있는 조건을 복원하는 것
    이것이 최소한의 정당한 개입이 된다.

6. 중요한 경계선 하나

물론 모든 선택이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트리

  • 자아가 기동 가능한 상태에서의 비선택 → 존중

  • 자기파괴적 선택 → 제한 가능

  • 타인의 자아 기동을 파괴하는 선택 → 제한

핵심은 이것이다.

개입은 어디까지나
자아가 다시 작동하도록 돕는 데까지만 허용된다.

7. 왜 이 이론이 지금 필요한가

우리는 점점 더 많은 판단을
알고리즘, 제도, 규칙에 맡기는 사회로 가고 있다.

하지만 그 판단 기준은 대개 하나다.

“왜 선택하지 않았는가?”

트리거 가설은 여기에 브레이크를 건다.

“선택할 수 있었는가?”
“기동 가능한 상태였는가?”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불필요한 비난과 폭력을 멈출 수 있다.

8. 무의미한 세계에서, 최소한의 존엄

이 이론은 삶에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는 본질적으로 무의미하다고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의미가 아니라 가능성이다.

  • 의미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

  • 선택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

  • 다시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

트리거 가설은
그 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가장 얇고, 가장 현실적인 윤리다.


어떤 것 같나요? 여러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니체가 "의미를 창조하는 자가 되어라" 라는 말에 이러한 구조를 만들면 창조하는 자에 가까워져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글을 써봅니다


이 가설로 미래 사회에 적용할 사회 구조를 논문의 형식으로 만든 것도 있는데 그것도 시간이 나면 올려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