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적 직관에 한참빠져 골몰해있다보면,
나의 사유 활동에 관여하는
나의 지적 능력에 대한 인식을 좀 더 명료하게
하고 싶은 욕구가 든다.
능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대상화해야만
능력이라는 원형의 범위와 깊이를
대략적으로 측량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내가 능력에 관하여
할 수 있는 일의 윤곽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형이상적 층위에서 벌이는 지적 능력의 양태라는 것이
결국은 형이하적 층위에서 벌이는 지적 능력과
별 차이가 없는 듯 하다.
형이상적 실체에 대한 정신 활동과
그 활동 행간에 녹아 있는 기초적인 논리,
실체들의 구조를 분해하고
이들을 개별적으로 인식함과 동시에,
조립과 통합으로 이어지기까지의 그 일련의 과정이
결국은 실제 눈에 보이는 세계,
즉 형이하적 층위의 학문, 반증가능한 층위의 학문에서
인류가 벌이는 지적활동의 총체와 원형적으로
상당부분 동일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오히려 형이하적 층위는 그것이 가진
명시적 속성으로 인해
인간으로 하여금 수학 과학 등의 범주에서
세계의 복잡한 구조와 역학을
치밀하게 분석, 활용해나갈 수 있는 배경이 된듯 하다.
반면, 철학이란 활동은 단지
형이상적 직관의 발달에 따라
의식의 초점이 내면의 것을 다루는 데에 익숙할 뿐,
형이하적 실체와 비교하면 명시적이지 않기 때문에
인류가 가진 지적 능력의 이점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학문이 아닌가 싶다.
요즘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는,
형이하적 학문을 공부하면서 관찰되고 필요되는
여러 지적활동 또는 실체들의 구조적, 역학적 복잡성이
형이상적 사유를 할 때 상당 부분 동기나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고 느껴진다.
형이하적 학문의 복잡성과 고도화가
역설적으로 형이상이 도달할 수 있는
고점에 대한 동기와 확신을
가시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나의 지적 능력이나 사유를 전개하는 양태
또한 마찬가지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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