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은 ‘상모 돌리기’와 같다.
상모를 잘 돌리는 사람에게 좋은 대학교에 갈 기회를 주는 것이다.

“상모 돌리는 것과 대학교가 무슨 상관이에요?”라고 묻는다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개 이렇다.
“그게 그나마 공평하잖아. 상모 돌리는 건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어.”

하지만 여기엔 두 가지가 빠져 있다.
첫째, 상모를 돌리는 능력이 직업의 실무적 능력과 어떤 상관이 있는지.
둘째, 상모를 잘 돌리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왜 그중 일부만 ‘기회’를 가져야 하는지.

대학교에 가면 이제 꽹과리를 배우게 된다.
꽹과리를 잘 치는 사람은 본격적으로 취업 서류를 준비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왜 꽹과리를 배워요?”라고 묻는다면, 또 비슷한 말이 돌아온다.
“수능 때부터 해온 풍물놀이 능력을 취업할 때 보여줘야 하니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장구 치기, 북치기 같은 추가 스펙을 쌓아 1차 서류에 통과해야 하고,
필요에 따라 추임새 넣기 같은 기술까지 익혀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상모를 잘 돌리고, 꽹과리를 잘 치고, 장구와 북까지 능숙해도
막상 취업 후 일을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풍물놀이는 풍물놀이일 뿐이다.

그래도 어떤 사람은 모든 풍물놀이를 마스터하고 취업에도 성공한다.
그리고 일이 잘 풀리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밑바닥에서 올라왔다. 남들 놀 때 상모를 돌렸고, 꽹과리를 쳤다.
내가 잘된 건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가 나처럼 풍물놀이를 잘했는데도 안 됐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세상은 냉정하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만약 누군가 상모도 못 돌리고 꽹과리도 못 쳤다면, 그 사람은 이렇게 분류된다.
‘노력 안 한 인간.’
‘나보다 아래 등급.’
사람 취급을 덜 받아도 되는 존재.

이 모든 과정이 진짜 능력을 가리는 일이 아니라,
그저 상모와 꽹과리를 기준으로 사람을 줄 세우는 일이라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공정이라고 부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