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대상이 존재할 수 있는 시공간적장입니다.
세계는 대상이 존재할 수 있는 한계를 뜻합니다.
이는 즉, 대상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은 세계에 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사람이 죽는다라는 것은, 세상으로부터의 의지의 부재와 세계로부터의 소멸입니다. 의지는 선험적으로 맹목성을 지니고 있는 대상의 존재의 기저입니다. 의지의 맹목성 덕분에, 대상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상은, 의지의 객관화가 된 표상입니다. 즉, 우리(인간)은 세계의 의지이자 세계는 대상의 표상입니다. 세계에 있는 대상은, 세상의 물리적 좌표에 의하여 객관화 되어 인식할 수 있는 표상입니다. 이는 즉, 요소명제들의 집합인 사태의 종합은 세상이자 세계안에 존재하는 대상입니다. 여기서 대상이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이유는 이성과 지성, 그리고 감성때문입니다. 감성은 대상을 인식할 수 있게 하고, 이성은 그것이 무엇인지 판별하게 해줍니다. 이성은 선험적이면서 후험적이기도 합니다. 칸트가 제시한 이성은 경험하기 이전에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시각장애인과 기타 장애로 인하여 인식 경험 이전에 인식할 수 없는 자, 즉 대상을 후험적으로 만지거나 듣지 못한다면 인식할 수 없는 자를 포함하지 못했습니다. 즉, 이성은 특수성으로 인해 대상을 감지할 수 없는 특수성에 기인한 사람을 배제한 논리이기 때문에 선험적이면서 후험적이기도 합니다. 허나, 이러한 의지의 맹목성이 진리라면, ‘자살‘은 의지의 자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의지‘는 선험적으로 맹목적이지만, 경험을 통해 자의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이, 태아가 자살을 하지 않고,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세상으로부터의 부재를 선택하는 이들의 이유의 정합성을 설명 가능합니다.

쇼펜하우어, 칸트, 비트겐슈타인, 헤갤의 변증법 등 내가 생각하는 세상과 세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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