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존재와 시간 강독> 읽던 중 풀리지않아 글 남김
눈앞의 존재와 도구적 존재가 존재구조 속에서 실천적 관계를 맺고 있느냐, 아니면 대상화를 하고있느냐 차이라는 것은 이해가됨
그럼 어떠한 존재자를 받아들이는 현존재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용어를 달리 사용할텐데,
책에서 눈앞의 존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화자가 설명을 위해 존재자를 대상으로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인가?라는 생각이듬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추가로 질문 남김
길을 가다보면 볼 수 있는 붕어빵은 배부른 상태의 나에게 대상으로서, 눈앞의 존재이지만
배고픈 상태인 내가 붕어빵을 인식하는 순간 도구적 존재로 바뀌는 것인가.
아니면 두가지 상황 모두 존재구조 속에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척도로 도구적 존재라고 볼 수 있고,
먹지 못하는 상태, 가령 까맣게 타서 숯덩이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관계의 가능성이 배제되고 눈앞의 존재가 되는것인가
이렇게 두가지 질문 남깁니다.
이런거임 여친이랑 대화나누면서 붕어빵을 쳐묵쳐묵할때는 붕어빵이 자체가 안보임. 그러다가 흠 붕어빵 안에 돌이 들어갔군 하면 붕어빵을 내려놓고 도대체 뭐가 안에 들었나 붕어빵 자체를 들고 성분분석하는거
손안에 있는걸로 볼려면 실제로 붕어빵이 삶에 한가운데 있어야함. 붕어빵 먹을떄는 ㅡ붕어빵이 뭔지 신경도 안쓰잖슴. 그러다가 맛이 너무 좋다거나 맛이 너무 안좋다거나 뭐가 특이점이 생기면 먹던거 멈추고 붕어빵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는거
@rfi(59.7) 그럼 그 붕어빵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는 행위에서는 붕어빵이 눈앞의 존재라는 거죠? 챗 지피티에 몇 번이고 물아봤을 때는 망치가 부서진 것처럼 관계를 갖지 못하는 상황만이 눈앞의 존재로 붕괴한다고 하는데, 이 말에 입각해서 생각해보면.. 눈앞의 존재라는 용어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어서 질문남기게 된거거든요
ㅇㅇ 인간의 거의 모든 행위는 무의식적이니까. 망치질할때 망치를 의식하지 않고 붕어빵 먹을때 붕어빵 의식 안하잖슴. 뭔가 문제가 생겨야 눈앞으로 전환되는거
@rfi(59.7)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1. 목적성 여부에 따른 존재 분류를 설명하기 위해 그 상부 층위에서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는게 맞을듯. 본문의 논리는 하부논리로 상부층위를 끌어내려서 오는 혼란같음. 2. 도구적 존재는 목적, 즉 욕구를 만족시키는 매개물로 기능을 한다고 봄. 즉 욕구가 사라지거나, 매개물이 욕구를 만족시키는 기능이 사라지면 그 존재는 도구적 존재의 범주를 벗어나겠지
그럼 장폴 사르트르의 말을 빌려쓰자면 눈앞의 존재는 ‘실존’의 상태 도구적 존재는 ‘본질’을 가진 상태 라고 이해하고 넘어가도 무리가 없을까요??
내 생각엔 도구적 존재와 눈앞의 존재의 결정적인 차이는 욕구라는 층위에서 파생된, 즉 욕구라는 층위에 귀속되는가 유무임. 대상과의 관계가 욕구라는 층위 이상의 층위에 걸쳐있느냐는거지. 욕구의 충족 및 소멸 유무와 무관한, 즉 특수한 시공간적 제약을 넘어선 층위의 지속적, 초월적 관계가 가능하느냐 유무
@철갤러1(118.235) ㅇㅇㅇ
@ㅇㅇ 감사합니다!
질문 하나 더 하자면 데카르트 생각고로존재에서 선주관 후존재를 하이데거가 비판하는게 마치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처럼 보이는데 일단 하이데거는 뭐가 먼저다가 아니고 계란을 품은 닭이 존재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하는 것 같거든요 제 이해가 맞을까요?
앞의 붕어빵이 도구적 존재면 어떻고 논앞의 존재면 어떤데. 그게왜문제가되는데.
몰라 이데거형이 날 혼란스럽게 만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