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역사적으로도 그렇게 현명한 사람이 존재할까? 싶을정도로 역사적으로 이름을 날린 그였지만, 그는 결국 신을 믿었다. 그 이유로는 본질계가 존재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었고, 그 이유는 결국 신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신의 존재는 분명 ‘이유‘에 있을 것이다. 형이상학의 기반을 마련한 그였지만, 형이상학의 존재 이유는 결국 신에게 닿아있다. 그렇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반신론자의 형이상학자들이 등장하였다. 이는 형이상학에 대한 오해인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린 것일까?

 현대의 형이상학은 칸트에 의해 인식론적으로 변모한 점이 있다. 하지만 고대의 날 것의 형리상학은 인식론적이 아닌 형이상학적 즉, 본질을 추구하는 학문이였던 것이다. 본질계와 현상계를 물자체와 표상으로 나누어 판단한 칸트의 사고방식에는 아무래도 본질계의 역할을 수행하는 물자체가 오성과 감성의 능력으로 ‘촉발‘되어 자신의 내면에서 나타나는 천재적 발상을 도모했다. 

 하지만 이 논지의 맹점은, 물자체와 본질계는 ‘인식‘할 수 없다는 곳에서 인식론에 대해서 논하는 것 자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계, 즉 물자체가 ’인식‘할 수 없었기에, 그 근원을 찾아 ’인식’할 수 없는 ‘신‘의 존재가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는 논리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신앙심 깊은 신도라기 보다는, ’신’의 존재의 부재는 본질계의 부재, 즉 진리의 부재라고 보았기에 ’신‘을 섬겼을 것이다.

  그렇기에,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의 신의 요청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의 요청과 맞닿아있는 것으로 보는 게 내가 생각하는 철학자들의 신앙이다. 즉, 존재해선 안될 것에 대한 증명은 결론적으로 ’신’에 대한 요청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철학을 빌려 이를 정리하자면, 말 할 수 없는 것은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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