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여성의 성적 문란함이 남성의 그것보다 더 강하게 금기시되어 온 이유는, 남성의 물리적 폭력성이 여성의 그것보다 더 강하게 금기시되어 온 이유와 같은 구조를 가진다. 핵심은 이것이다. 사회적 금기의 강도는 그 일탈이 얼마나 교정되기 어려운가에 비례한다.
예를 들어 힘이 센 편인 여성이 물리적 폭력을 자주 행사한다고 가정하자. 이 성향은 사실 교정되기 쉽다. 여성은 대체로 물리적 힘이 약하기 때문에, 특별히 단련되지 않은 성인 남성도 폭력적인 여성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탈이 빠르게 제압되고, 피해가 확산되기 전에 차단된다.
반면 체격과 근력이 좋은 남성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주변 사람들이 선뜻 개입하기 어렵고, 교정되기 전에 다수가 피해를 입는다. 중세 유럽에서 기사 계급에게 엄격한 행동 규범인 기사도를 부과한 것도, 무장한 남성의 폭력이 일반인으로서는 통제하기 어려운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금기와 규범은 제압하기 어려운 힘에 먼저 씌워진다.
성적 문란함에도 같은 구조가 작동한다. 1978년 클라크와 해트필드의 실험에서, 외모가 준수한 남성이 낯선 여성에게 성관계를 제안했을 때 응한 비율은 0%에 가까웠다. 반면 외모가 준수한 여성이 같은 제안을 했을 때 응한 남성의 비율은 75%에 달했다. 문란해지기 위해 남성이 투입해야 하는 비용은 매우 크고, 여성이 투입해야 하는 비용은 매우 작다. 폭력에서 남성이 강자인 것처럼, 문란함에서는 여성이 강자다. 그리고 강자의 일탈에 더 강한 금기가 씌워지는 것은, 사회가 작동해온 기본 원리다.
역사적 사례들은 이 구조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고대 로마에서는 베스타 신녀에게 30년간의 정절을 요구했고, 이를 어기면 산 채로 매장하는 극형에 처했다. 반면 남성 사제에게 동등한 수준의 정절 규범은 존재하지 않았다. 신녀는 로마의 성화를 지키는 상징적 존재였고, 그 상징이 오염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신성이 훼손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근대 이전 대부분의 사회에서 간통에 대한 처벌이 여성에게 더 가혹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의 칠거지악에서 음행이 첫 번째 이혼 사유였던 것, 중동의 명예살인 관행이 주로 여성을 향해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금기들이 여성에 대한 억압의 산물이냐는 질문은 별도로 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금기가 형성된 논리 구조만큼은, 강자의 일탈을 더 강하게 경계한다는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현대의 가족 제도 역시 이 비대칭성 위에 서 있다. 이혼 시 대부분의 사회에서 어머니가 자녀 양육권을 갖는 비율이 높다는 사실은, 자녀가 어머니와 더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이고, 더 많은 영향력은 더 큰 책임을 수반한다. 여성의 문란함으로 가족이 해체될 때 자녀가 입는 상처가 더 크다고 본다면, 그것은 여성을 억압하는 논리가 아니라 영향력이 큰 쪽에 더 높은 책임을 부과하는 논리다.
금기는 언제나 힘 있는 쪽을 향한다. 남성의 주먹에 더 강한 금기가 씌워지는 이유와, 여성의 성에 더 강한 금기가 씌워지는 이유는 결국 같다.
육체 고통이 따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