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정부동도경(淨不動道經) 제4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에 유행하실 때에 도읍인
검마슬담(劍磨瑟曇)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욕(欲)이란 무상(無常)한 것이며 허황한 것이며 거짓말이다. 이 거짓말 법은 곧 허깨비이고 속임이며 어리석음이다. 현세의 탐욕이나 후세의 탐욕이나 혹은 현세의 색이나 후세의 색(色)이나 그 일체는 곧 악마의 경계로서 이는 악마의 미끼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마음에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과 탐욕[增伺]과 성냄과 또 투쟁 따위가 생기는데, 곧 거룩한 제자들이 공부할 때에 장애가 되는 것이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렇게 관찰한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에 의하여 욕(欲)은 무상한 것이며 허황한 것이며 거짓말이다. 이 거짓말의 법은 곧 허깨비이며 속임이며 어리석음이다. 현세의 탐욕이나 후세의 탐욕이나 혹은 현세의 색이나 후세의 색이나 저 일체는 악마의 경계로서 곧 악마의 미끼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마음에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과 탐욕과 성냄과 투쟁 따위가 생기는데, 곧 거룩한 제자들이 공부할 때에 장애가 된다.’
이렇게 관찰한 그는 또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큰마음으로 성취하여 노닐고 세간을 항복받고 그 마음을 잘 단속하고 지켜야 한다. 만일 내가 큰마음을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고 세간을 항복받으며 그 마음을 잘 단속하고 지키게 되면, 마음은 곧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과 탐욕과 성냄과 투쟁 따위를 일으키지 않아 곧 거룩한 제자가 공부할 때에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것을 실천하고 이것을 배우며, 이렇게 닦아 익히고 널리 편다. 그는 곧 그 자리에서 마음이 깨끗해지고 그 자리에서 마음이 깨끗하게 된 비구는 혹은 여기서 움직이지 않는 선정에 들어가게 되고 혹은 지혜로써 해탈하게 된다. 그는 뒷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다음 본래의 뜻 때문에 반드시 움직이지 않는 경지에 이를 것이니, 이것이 청정한 부동도(不動道)에 대한 첫 번째 설명이다.
또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관찰한다.
‘만일 색(色)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4대(大)와 4대로 이루어진 것[四大造色]이다. 4대는 무상한 법이며 괴로움이며 소멸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배우며 이렇게 닦아 익혀서 널리 편다. 그는 곧 그 자리에서 마음이 깨끗해지고 그 자리에서 마음이 깨끗하게 된 비구는 여기서 움직이지 않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고 혹은 지혜로써 해탈하게 된다. 그는 뒷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다음 본래의 뜻 때문에 반드시 움직이지 않는 경지에 이를 것이니, 이것이 청정한 부동도에 대한 두 번째 설명이다.
또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관찰한다.
‘혹은 현세의 탐욕이나 후세의 탐욕이나 혹은 현세의 색이나 후세의 색이나, 혹은 현세의 탐욕이란 생각이나 후세의 탐욕이란 생각이나, 혹은 현세의 색이란 생각이나 후세의 색이란 생각이나 이러한 일체의 생각들은 다 무상한 법이며 괴로움이며 소멸되는 것이다.’
그는 그때에는 반드시 움직이지 않는 생각을 얻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배우며 이렇게 닦아 익혀서 널리 편다. 그는 곧 그 자리에서 마음이 깨끗해지고 그 자리에서 마음이 깨끗하게 된 비구는 여기서 움직이지 않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고 혹은 지혜로써 해탈하게 된다. 그는 뒷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다음 본래의 뜻 때문에 반드시 움직이지 않는 경지에 이를 것이니, 이것이 청정한 부동도에 대한 세 번째 설명이다.
또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관찰한다.
‘현세의 탐욕이라는 생각이나 후세의 탐욕이라는 생각이나, 현세의 색이라는 생각이나 후세의 색이라는 생각과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 등 이 일체의 생각은 바로 무상한 법이며 괴로움이며 소멸되는 것이다.’
그는 그때에는 소유한 바가 없는 곳이라는 생각[無所有處想]을 얻는다. 그는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배우며 이렇게 닦아 익혀서 널리 편다. 그는 곧 그 자리에서 마음이 깨끗하게 되고 마음이 깨끗하게 된 비구는 여기서 움직이지 않는 선정에 들어가게 되거나 혹은 지혜로써 해탈하게 된다.
그는 뒷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다음 본래의 뜻 때문에 반드시 움직이지 않는 선정에 이를 것이니, 이것이 청정한 무소유처도(無所有處道)에 대한 첫 번째 설명이다.
또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관찰한다.
‘이 세상은 공한 것이다. 신(神)도 공한 것이며 신의 소유도 공한 것이며 유상(有常)도 공하고 유항(有恒)도 공하며 장존(長存)도 공하니, 공한 것은 바뀌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배우며 이렇게 닦아 익혀서 널리 편다. 그는 곧 그 자리에서 마음이 깨끗해지고 그 자리에서 마음이 깨끗하게 된 비구는 혹은 여기서 소유한 바가 없는 곳[無所有處]에 들어가게 되거나, 혹은 지혜로써 해탈한다. 그는 뒷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다음 본래의 뜻 때문에 반드시 소유한 바가 없는 곳에 이를 것이니, 이것이 청정한 무소유처도에 대한 두 번째 설명이다.
또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관찰한다.
‘나는 남을 위하여 일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자기를 위하여 일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배우며 이렇게 닦아 익혀서 널리 편다. 그는 곧 그 자리에서 마음이 깨끗해지고 그 자리에서 마음이 깨끗하게 된 비구는 여기서 소유한 바가 없는 곳에 들어가게 되고 혹은 지혜로써 해탈하게 된다. 그는 뒷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다음 본래의 뜻 때문에 반드시 소유한 바가 없는 곳에 이를 것이니, 이것이 청정한 무소유처도에 대한 세 번째 설명이다.
또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관찰한다.
‘현세의 탐욕이나 후세의 탐욕이나, 혹은 현세의 색이나 후세의 색이나, 혹은 현세의 탐욕이란 생각이나 후세의 탐욕이란 생각이나, 혹은 현세의 색이란 생각이나 후세의 색이란 생각이나,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이나 소유한 바가 없는 곳이라는 생각 등의 이러한 일체의 생각은 곧 무상한 법이며 괴로움이며 소멸되는 것이다.’
그는 그때에 아무 상(想)도 없게 된다. 그는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배우며 이렇게 닦아 익혀서 널리 편다. 그는 곧 그 자리에서
마음이 깨끗해지고, 그 자리에서 마음이 깨끗하게 된 비구는 여기에서 상이 없는 선정[無想定]에 들어가게 되고 혹은 지혜로써 해탈하게 된다. 그는 뒷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다음 본래의 뜻 때문에 반드시 상이 없는 곳에 이를 것이니, 이것이 곧 청정한 무상도(無想道)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때 존자 아난이 불자(拂子)를 잡고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다. 존자 아난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비구가 ‘나라는 것도 없고 내 것이라는 것도 없으며,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며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다’라고 이렇게 수행한다면, 과거에 있었던 것이라 해도 곧 다해 평정[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비구가 이와 같이 수행할 때 그들은 모든 것이 다하여 반열반(般涅槃)을 얻게 되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 일은 일정하지 않아 혹 얻는 자도 있겠지만 혹은 얻지 못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존자 아난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비구는 왜 그렇게 수행하고도 열반을 얻지 못합니까?”
“아난아, 만일 비구가, 나라는 것은 없는 것이고 내 것이라는 것도 없는 것이며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며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라고 수행한다면 과거에 있었던 것도 곧 다해 평정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난아, 만일 비구가 그 평정을 좋아하거나 그 평정에 집착하거나 그 평정에 머무른다면 아난아, 그렇게 수행하는 비구는 반드시 열반을 얻지 못할 것이다.”
존자 아난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비구가 만일 취[受:取]하는 것이 있으면 열반을 얻지 못합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였다.
“아난아, 만일 비구가 취하는 것이 있으면 그는 반드시 열반을 얻지 못할 것이다.”
“세존이시여, 그 비구는 무엇을 취합니까?”
“아난아, 수행하는 사람들 중엔 달리 수행하는 사람도 있으니, 이른바 생각이 있기도 하고 생각이 없기도 한 곳으로서 유(有) 중에서 제일이라 하여 그 비구는 그것을 취한다.”
존자 아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그 비구는 다시 다른 행을 받습니까?”
“아난아, 그렇다. 그 비구는
다른 행을 받는다.”
“세존이시여, 비구가 어떻게 수행해야 반드시 열반을 얻습니까?”
“아난아, 만일 비구가, 나라는 것은 없는 것이고 내 것이라는 것도 없는 것이며,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며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수행하면 과거에 있었던 것도 곧 다 버리게 될 것이다. 아난아, 만일 비구가 평정을 좋아하지 않고 평정에 집착하지 않으며 그 평정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아난아, 이와 같이 수행하는 비구는 반드시 열반을 얻을 것이다.”
“세존이시여, 비구가 만일 취하는 것이 없으면 반드시 열반을 얻습니까?”
“아난아, 만일 비구가 취하는 것이 없으면 반드시 열반을 얻을 것이다.”
그때 존자 아난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미 청정한 부동도를 말씀하셨고 이미 청정한 무소유처도를 말씀하셨으며 이미 청정한 무상도를 말씀하셨고 이미 무여열반(無餘涅槃)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거룩한 해탈(解脫)입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아난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관찰한다.
‘현세의 탐욕이나 후세의 탐욕이나, 혹은 현세의 색이나 후세의 색이나, 혹은 현세의 탐욕이란 생각이나 후세의 탐욕이란 생각이나, 혹은 현세의 색이란 생각이나 후세의 색이란 생각과 움직이지 않는 생각 소유한 바가 없는 곳이란 생각 상이 없다는 생각 등 이러한 모든 생각은 곧 무상한 법이며 괴로움이며 소멸되는 것이다. 이것을 자기유(自己有)라고 한다. 만일 자기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생겨나는 것이며 이것은 늙는 것이며 이것은 병드는 것이며 이것은 죽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이 법이 있어 일체가 멸해 다하여 남음이 없고 다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 그는 곧 남이 없고 늙음과 병과 죽음이 없을 것이다.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관찰한다.
‘만일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반드시 해탈의 법이며, 만일 남음이 없는 열반이 있다면 그 이름은 감로(甘露)일 것이다.’
그가 이렇게 관찰하고 이렇게 보면 반드시 욕심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할 것이며
생명[有]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할 것이다.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다운 진리를 알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제 너를 위하여 이미 청정한 부동도를 말하였고 이미 청정한 무소유처도를 말하였으며 이미 청정한 무상도를 말하였고 이미 무여열반을 말하였으며 이미 거룩한 해탈을 말하였다.
스승이 제자를 위하여 한 것처럼 큰 사랑과 슬픔을 일으켜 가엾이 생각하고 서럽게 여기고, 정의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는 일을 나는 이미 다하였다. 너희들도 마땅히 스스로 노력하라. 일 없는 곳이나 나무 밑에 가거나 텅 비고 조용한 곳에서 고요히 앉아 깊이 생각하라. 방일하지 말고 더욱 부지런히 정진하여 후회하지 않게 하라.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며 이것이 나의 훈계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76) 욱가지라경(郁伽支羅經)3) 제5제2 소토성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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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이 경의 참고 경문으로는 『잡아함경』 제24권 644번째 소경인 「울저가경(鬱低伽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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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욱가지라(郁伽支羅)에 유행하실 때에 항수지(恒水池) 언덕에 계셨다.
그때 어떤 비구가 해질 무렵에 연좌(燕坐)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원하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간략하게 잘 설법하여 주십시오. 세존께 법을 듣고 나면 멀리 떠나 혼자 살면서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하겠습니다. 멀리 떠나 혼자 살면서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함으로써 족성자가 하신 것처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수행하면, 오직 위없는 범행을 마쳐서 현생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증득하고 성취하여 노닐며,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다운 진리를 알게 될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야,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마음으로 하여금 머무르게 하여 안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고 한량없는 선행을 닦으며, 다시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 그대로 관찰하고 수행하기를 매우 부지런히 힘써서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세우고,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간탐(慳貪)을 여의게 하고 마음에 걱정과 슬픔이 없게 하라.
또 바깥 몸을 관찰하되 몸 그대로 관찰하고 수행하기를 매우 부지런히 하여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세우고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간탐을 여의게 하고 마음에 걱정과 슬픔이 없게 하라. 비구야, 이와 같은 선정[定]은 갈 때나 올 때나 항상 잘 닦아 익혀야 하며, 섰을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잠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잠자다 깰 때에도 또한 잘 닦고 익혀야 한다.
또 유각유관정(有覺有觀定)과 무각소관정(無覺少觀定)을 닦아 익히고 무각무관정(無覺無觀定)을 닦아 익혀야 하며, 기쁨이 함께하는 선정 즐거움이 함께하는 선정을 닦아 익히고, 안정됨이 함께하는 선정을 닦아 익히며 평정이 함께하는 선정을 닦아 익혀야 한다.
비구야, 만일 이 선정을 닦고 지극히 잘 닦은 자는, 비구야, 다시 안의 감각을 닦고 관찰하되 감각 그대로를 관찰하고 수행하기를 매우 부지런히 힘써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세우고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간탐(慳貪)을 여의고 마음에 걱정과 슬픔이 없게 하라.
다시 바깥 감각을 관찰하되 감각 그대로를 관찰하고 수행하기를 매우 부지런히 힘써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세우고,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간탐을 여의고 마음에 걱정과 슬픔이 없게 하라.
다시 안팎의 감각을 관찰하되 감각 그대로를 관찰하고 수행하기를 지극히 부지런히 힘써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세우고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간탐을 여의고 마음에 걱정과 슬픔이 없게 하여야 한다. 비구야, 이와 같은 선정은 갈 때나 올 때나 잘 닦아 익혀야 하며, 섰을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잠잘 때나 깨어 있을 때에도 잘 닦아 익혀야 한다.
또 유각유관정과 무각소관정을 닦아 익혀야 하며 또한 기쁨이 함께하는 선정과 즐거움이 함께하는 선정을 닦아 익히고, 안정됨이 함께하는 선정을 닦아 익히며 평정이 함께하는 선정을 닦아 익혀야 한다.
비구야, 만일 이 선정을 닦고 지극히 잘 닦은 자는 다시 안 마음을 닦고 관찰하되 마음 그대로를 관찰하고 수행하기를 매우 부지런히 힘써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세우고,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간탐을 여의고 마음에 걱정과 슬픔이 없게 하라.
다시 바깥 마음을 관찰하되 마음 그대로를 관찰하고 수행하기를 매우 부지런히 힘써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세우고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간탐을 여의고 마음에 걱정과 슬픔이 없게 하라.
다시 안팎의 마음을 관찰하되 마음 그대로를 관찰하고 수행하기를 매우 부지런히 힘써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세우고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간탐을 여의고 마음에 걱정과 슬픔이 없게 하라. 비구야, 이와 같은 선정을 갈 때나 올 때나 늘 잘 닦아 익혀야 하며 섰을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잠잘 때나 깨었을 때에도 잘 닦아 익혀야 한다.
또 유각유관정과 무각소관정을 닦아 익히고 무각무관정을 닦아 익혀야 하며 또한 기쁨이 함께하는 선정과 즐거움이 함께하는 선정을 닦아 익히고 안정됨이 함께하는 선정을 닦아 익히며 평정이 함께하는 선정을 닦아 익혀야 한다.
비구야, 만일 이 선정을 닦고 지극히 잘 닦은 자는 다시 안의 법을 닦고 관찰하기를 안 법과 같이 하고, 행하기를 매우 부지런히 힘써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세우고 자신의 마음을 잘 제어하여 간탐을 여의고 마음에 걱정과 슬픔을 없게 하라.
다시 바깥 법을 관찰하기를 법과 같이 하고 행하기를 매우 부지런히 힘써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세우고 자신의 마음을 잘 제어하여 간탐을 여의고 마음에 걱정과 슬픔을 없게 하라.
다시 안팎의 법을 관찰하기를 안팎의 법과 같이 하고 행하기를 매우 부지런히 힘써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세우고, 자신의 마음을 잘 제어하여 간탐을 여의고 마음에 걱정과 슬픔을 없게 하라. 비구야, 이러한 선정은 갈 때나 올 때나 마땅히 잘 닦아 익혀야 하며, 섰을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잠잘 때나 깨었을 때에도 또한 잘 닦아 익혀야 한다.
또 유각유관정과 무각소관정을 닦아 익히고 무각무관정을 닦아 익혀야 하며 또한 기쁨이 함께하는 선정과 즐거움이 함께하는 선정을 닦아 익히고 안정됨이 함께하는 선정을 닦아 익히며 평정이 함께하는 선정을 닦아 익혀야 한다.
비구야, 만일 이 선정을 닦고 지극히 잘 닦는 자는 마음이 마땅히 자애로움과 함께하여 1방(方)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고 이렇게 2ㆍ3ㆍ4방과 4유ㆍ상ㆍ하 일체에 두루 하며 마음이 자애로움과 함께하기 때문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고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이와 같이 불쌍히 여김과 기뻐함도 역시 그러하며 마음은 평정[捨]과 함께하기 때문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비구야, 만일 네가 이 선정을 잘 닦아 익히고 지극한 선행을 닦되 그 사람이 만일 동방에 노닐면 반드시 안락을 얻어 여러 가지 괴로움과 근심이 없을 것이며, 만일 남방ㆍ서방ㆍ북방에 노닐어도 반드시 안락을 얻어 여러 가지 괴로움과 근심이 없을 것이다.
비구야, 만일 네가 이 선정을 닦아 익히고 지극한 선행을 닦아도 나는 오히려 네가 선법에 머무른다고도 말하지 않을 텐데 더구나 쇠퇴한 사람을 언급하겠느냐? 다만 밤낮으로 선법을 늘어나게 하고 자라게 하여 쇠퇴하지 않게 하라.
비구야, 만일 네가 이 선정을 닦아 익히고 지극한 선행을 닦으면 너는 2과 중에 반드시 그 하나를 얻을 것이며, 혹은 현재 세계에서 구경(究竟)의 지혜를 얻고 혹은 또 남음이 있어 아나함(阿那含)을 이룰 것이다.”
이에 그 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잘 받아 가지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부처님 주위를 세 바퀴 돌고 나서 물러갔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가지고 멀리 떠나 혼자 살면서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하였다. 멀리 떠나 혼자 살면서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함으로 말미암아 족성자가 하셨던 것처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웠다. 오직 위없는 범행을 마쳐 현재 세계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고 성취하여 노닐며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다운 진리를 알았다. 그 존자는 법을 안 뒤에는 아라하(阿羅訶)를 이루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은 경을 말씀하시자 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77) 사계제삼족성자경(娑雞帝三族姓子經) 제6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계제(娑雞帝)4)에 유행하실 때에 청림(靑林)에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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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성(城) 이름. 또는 사기다(娑祇多)ㆍ바계제(婆雞帝)로 쓰기도 한다. 북교살라국(北憍薩羅國) 경내에 있는 성으로 범어로는 Sāketa로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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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사계제에 세 족성자(族姓子)가 살고 있었으니 존자 아나율타(阿那律陀)와 존자 난제(難提)와 존자 금비라(金毘羅)였다. 그들은 다 나이가 젊고 새로 출가하여 수행하는 사람들로서 함께 와서 이 바른 법 가운데 들어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이 세 족성자는 다 나이도 젊고 새로 출가하여 수행하는 사람들로서 함께 와서 이 바른 법에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았다. 이 세 족성자는 자못 이 바른 법 가운데서 범행(梵行)을 수행하기 좋아하는가?”
비구들은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세존께서 다시 두 번 세 번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이 세 족성자는 다 나이 젊고 새로 출가하여 수행하는 사람들로서 함께 와서 이 바른 법에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았다. 이 세 족성자가 자못 이 바른 법 가운데서 범행 수행하기를 좋아하는가?”
비구들도 두 번 세 번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친히 세 족성자에게 묻고자 하여 존자 아나율타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세 족성자는 다 나이가 젊고 새로 출가하여 수행하는 자로서 함께 와서 이 바른 법 가운데 들어온 지 오래지 않다. 아나율타야, 너희들은 자못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범행 수행하기를 좋아하는가?”
존자 아나율타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저희들은 이 바른 법에서 범행 수행하기를 좋아합니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아나율타야, 너희들은 나이 어린 동자들로서 청정하고 검은머리에 신체도 왕성하여 유희(遊戱)하기를 좋아하고 자주 목욕하여 그 몸은 몹시 사랑 받을 만하였다. 그 뒤에 친척들과 그 부모들은 모두 사랑하고 그리워하여 슬피 울고 눈물을 흘리면서 너희들이 집을 나가 도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가정이 없이 도를 배우고 있다. 아나율타여, 너희들은 왕을 두려워하여 도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또한 도적을 두려워하거나 부채(負債)를 두려워하거나 무서움을 두려워하거나 가난을 두려워하거나 생활을 얻기 위하여 도를 배우는 것도 아니다. 다만 생ㆍ노ㆍ병ㆍ사와 슬픔과 걱정과 괴로움을 싫어하고 혹은 또 큰 괴로움의 무더기에서 벗어나고자 해서 도를 배우는 것이다. 아나율타야, 너희들은 이러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아나율타야, 만일 족성자가 이러한 마음으로 출가하여 도를 배운다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한량없는 선법(善法)을 얻는다는 사실을 아는가?”
존자 아나율타가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 되시고 법의 주인이 되십니다. 법은 세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원하건대 법을 설해 주십시오. 저희들은 그것을 듣고 나면 그 뜻을 자세히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다.
“아나율타야,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그것을 잘 기억하라. 내가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그 뜻을 분별해 주리라.”
아나율타와 여러 제자들은 분부를 받고 법을 들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나율타야, 만일 욕심에 덮이고 악한 법에 묶이면 평정의 즐거움[捨樂]과 최상의 휴식처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 마음엔 탐냄ㆍ성냄 수면(睡眠)만 생기고 마음은 즐겁지 않고 몸은 피곤하며 많이 먹고 마음이 걱정스러울 것이다. 그 비구는 곧 굶주림ㆍ목마름ㆍ추위ㆍ더위ㆍ모기ㆍ등에ㆍ파리ㆍ벼룩ㆍ바람ㆍ햇볕 따위의 핍박을 참지 못하고 욕설과 매질도 또한 참지 못한다. 몸은 온갖 병에 걸려 몹시 고통스러워하면서 목숨이 끊어지는 듯하여 모든 즐겁지 않은 것을 다 견디고 참아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욕심에 덮이고 악한 법에 묶여, 평정의 즐거움과 최상의 휴식처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욕심을 여의고 악한 법에 묶이지 않으면 반드시 평정의 즐거움과 최상의 휴식처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마음은 탐하거나 성내거나 잠자지 않고 마음이 불쾌하지 않으며 몸도 피로하지 않고 또한 많이 먹지 않으며 마음에 걱정도 없다. 그 비구는 능히 굶주림ㆍ목마름ㆍ추위ㆍ더위ㆍ모기ㆍ등에ㆍ파리ㆍ벼룩ㆍ바람ㆍ햇볕 따위의 핍박을 참아 견디고 욕설과 매질도 역시 참아낼 수 있다. 몸이 온갖 병에 걸려 매우 고통스러워하면서 목숨이 끊어지는 듯 하여 모든 즐겁지 않은 일도 다 능히 견뎌내고 참아낸다. 왜냐하면 욕심에 덮이지 않고 악한 법에 묶이지 않고 또 평정의 즐거움과 최상의 휴식처를 얻었기 때문이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아나율타야, 여래는 무슨 이유로 없애야 할 것이 있고 혹은 써야 할 것이 있으며 혹은 견뎌내야 할 것이 있고 혹은 그쳐야 할 것이 있으며 혹은 토해야 할 것이 있는가?”
아나율타가 세존께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 되시고 법의 주인이 되십니다, 법은 세존으로부터 나오니, 부디 그 법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저희들이 그 법을 들으면 그 뜻을 자세히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나율타야,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그것을 잘 기억하라. 내가 마땅히 너희를 위하여 그 뜻을 분별해 주겠다.”
아나율타와 여러 제자들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나율타야, 모든 번뇌와 더러움, 곧 미래세계에 생명의 근본이 되는 것과 번열의 고통스러운 과보인 생ㆍ노ㆍ병ㆍ사의 근원을 여래는 끊지 못한 것이 없으시고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시기
때문에 없애야 할 것이 있고 써야 할 것이 있으며 혹은 견뎌내야 할 것이 있고 그쳐야 할 것이 있으며 혹은 토해야 할 것이 있다.
아나율타야, 여래는 다만 이 몸으로 인한 까닭에, 6입처(入處)로 말미암기 때문에, 수명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없애야 할 것이 있고 써야 할 것이 있으며 혹은 견뎌내야 할 것이 있고 그쳐야 할 것이 있으며 혹은 토해내야 할 것이 있다. 아나율타야, 여래는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에 없애야 할 것이 있고 써야 할 것이 있으며 견뎌내야 할 것이 있고 그쳐야 할 것이 있으며 혹은 토해내야 할 것이 있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아나율타야, 여래는 무슨 이치가 있기에 일 없는 곳이나 산림, 혹은 나무 밑에 머무르고 높은 바위에 살기를 좋아하며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서 악이 없고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순리를 따라 연좌(燕坐)하는가?”
존자 아나율타가 세존께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 되시고 법의 주인이 되십니다. 법은 세존으로부터 나오니, 원컨대 그 법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저희들이 그 법을 듣고 나면 그 뜻을 자세히 알게 될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나율타야,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그것을 잘 기억하라. 내가 마땅히 너희를 위하여 그 뜻을 분별해 주겠다.”
아나율타와 여러 제자들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나율타야, 여래는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하여 아직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기 위하여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일 없는 곳이나 산림 혹은 나무 밑에 머무르거나 높은 바위에 머물기를 좋아하며, 고요히 말이 없고 멀리 떠나서 악이 없고 사람들이 없는 데에서 순리를 따라 연좌하는 것이 아니다. 아나율타야,
여래는 다만 두 가지 이치가 있기 때문에 일 없는 곳이나 산림 혹은 나무 밑에 머무르고 높은 바위에 살기를 좋아하며 고요하여 아무 말이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고 사람이 없는 데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는 것이니, 첫째는 자기가 현재 세계에서 즐겁게 살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후세 사람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다. 혹은 후세 사람이 여래께서 일 없는 곳이나 산림 혹은 나무 밑에 머무르고 높은 바위에 살기를 좋아하며,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서 악이 없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는 것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나율타야, 여래는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 없는 곳이나 산림 또는 나무 밑에 머무르고 높은 바위에 머물기를 좋아하며, 고요하여 아무 말이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순리를 따라 연좌하는 것이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아나율타야, 여래는 어떠한 이유가 있기에 제자가 목숨을 마치면 ‘아무는 아무 데에 태어난다, 아무는 아무 데에 태어난다’고 예언하는가?”
존자 아나율타가 세존께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 되시고 법의 주인이 되시며, 모든 법은 세존으로부터 나옵니다. 원하건대 그것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저희들이 그 법을 듣고 나면 그 뜻을 자세히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나율타야,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그것을 잘 기억하라. 내가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그 뜻을 분별해 주겠다.”
아나율타와 여러 제자들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나율타야, 여래는 그 태어나는 세계[趣]를 위하거나 사람을 위하여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사람을 속이려는 것도 아니며 또한 사람들을 기뻐하게 하기 위하여 제자가 목숨을 마쳤을 때 ‘아무는 아무 데에 태어난다, 아무는 아무 데에 태어난다’고 예언하는 것이 아니다. 아나율타야, 여래는 다만 깨끗이 믿는 족성남이나 족성녀들로서 지극히 믿고 매우 사랑하며, 지극히 기쁜 마음을 내어 이 바른 법을 듣고 나서 마음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본받게 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제자가 목숨을 마치면 아무는 아무 데에 태어난다, 아무는 아무 데에 태어난다고 예언하는 것이다.
혹 어떤 비구가 아무 존자는 아무 데서 목숨을 마쳤다. 그는 부처님의 예언을 받고 구경(究竟)의 지혜를 얻어,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이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마쳤으므로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다운 진리를 알았다는 말을 듣는가 하면, 혹은 직접 그 존자를 보거나 혹은 남에게서 자주자주 이 말을 듣기도 한다. 곧 그 존자는 이와 같은 믿음이 있었고 어떻게 계를 가졌으며 어떻게 널리 들었고 어떻게 은혜로 베풀었으며 이와 같이 지혜가 있었다는 등의 말을 듣는다. 그 사람은 그러한 말을 들은 뒤에는 그 존자는 믿음이 있고 계를 가졌으며 널리 들어 아는 게 많고 은혜를 베풀었으며 지혜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바른 법을 들은 뒤에는 혹은 마음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본받기를 원한다. 아나율타야, 이러한 비구는 반드시 보다 안락하게 살게 될 것이다.
아나율타야, 또 어떤 비구는 아무 존자는 아무 데서 목숨을 마쳤다. 그는 부처님의 예언을 받고 5하분결(下分結)5)이 이미 다해 그 사이에 나서 열반(涅槃)에 들고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가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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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하분(下分)은 욕계(欲界)를 말하는 것이고 결(結)은 번뇌이다. 3계 중 가장 밑에 위치한 욕계의 세계에서 중생들을 얽어매고 있는 다섯 가지 번뇌인 욕탐(欲貪)ㆍ진에(瞋恚)ㆍ유신견(有身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ㆍ의결(疑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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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직접 그 존자를 보거나 혹은 남에게서 자주 이 말을 듣는다. 곧 그 존자는 어떻게 믿음이 있었고 어떻게 계를 가졌으며 널리 듣고 은혜를 베풀었으며 어떻게 지혜가 있었다는 등의 일이다. 그 비구는 이런 말을 들은 뒤에 믿음이 생겼고 계를 가졌으며 널리 들었고 은혜로 베풀었으며 지혜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바른 법을 들은 뒤에는 마음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본받기를 원한다. 아나율타야, 이러한 비구는 반드시 보다 안락하게 살게 될 것이다.
아나율타야, 또 어떤 비구는 아무 존자는 아무 데서 목숨을 마쳤다. 그는 부처님의 예언을 받고 3결(結)이 다해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 한 번 천상과 인간을 왕래하게 되고 한 번 왕래한 뒤에는 괴로움을 벗어날 것이라는 말을 듣는가 하면, 혹은 직접 그 존자를 보거나 혹은 남에게서 자주 이 말을 듣는다. 곧 그 존자는 이와 같은 믿음이 있었고 이와 같은 계를 가졌으며 이와
같이 널리 들었고 이와 같은 은혜를 베풀었으며 이와 같은 지혜가 있었다는 등의 일이다. 그 비구는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뒤에 그 존자는 믿음이 생겼고 계를 가졌으며 널리 들었고 은혜를 베풀었으며 지혜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바른 법을 들은 뒤에는 마음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본받기를 원한다. 아나율타야, 이러한 비구는 반드시 보다 안락하게 될 것이다.
아나율타야, 또 어떤 비구는 아무 존자는 아무 데서 목숨을 마쳤다. 그는 부처님의 예언을 받고 3결(結)이 이미 다해 수다원(須陀洹)을 얻어 악한 법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 끝내 7유(有)를 받고 천상ㆍ인간에 일곱 번을 왕래한 뒤에는 괴로움을 벗어난다고 듣는가 하면, 혹은 직접 그런 존자를 보거나 혹은 남에게서 자주 이 말을 듣는다. 곧 그 존자는 이러이러한 믿음이 있었고 이러이러한 계를 가졌으며 이와 같이 널리 들었고 이러이러한 은혜를 베풀었으며 이러이러한 지혜가 있었다고 하는 등의 일이다. 그 비구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그 존자는 믿음이 생겼고 계를 가졌으며 널리 들었고 은혜를 베풀었으며 지혜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바른 법을 들은 뒤에는 마음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본받기를 원한다. 아나율타야, 이러한 비구는 반드시 보다 안락하게 살게 될 것이다.
아나율타야, 또 어떤 비구니는 아무 비구니는 아무 데서 목숨을 마쳤다. 그는 부처님의 예언을 듣고 구경(究竟)의 지혜를 얻어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쳤으므로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다운 진리를 알았다는 말을 듣는가 하면, 혹은 직접 그 비구니를 보거나 혹은 남에게서 자주 이 말을 듣는다. 곧 그 비구니는 이러이러한 믿음이 있었고 이러이러한 계를 가졌으며 이와 같이 널리 들었고 이러이러한 은혜를 베풀었으며 이러이러한 지혜가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그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뒤에 그 비구니는 믿음이 생겼고 계를 가졌으며 널리 들었고 은혜로 베풀었으며 지혜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바른 법을 들은 뒤에는 마음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본받기를 원한다. 아나율타야, 이러한
비구니는 반드시 보다 안락하게 살게 될 것이다.
아나율타야, 다시 어떤 비구니는 ‘아무 비구니는 아무 데서 목숨을 마쳤다. 그는 부처님의 예언을 받고 5하분결이 이미 다해 그 사이에 나서 열반에 들고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어 이 세상에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가 하면, 혹은 직접 그 비구니를 보거나 혹은 남에게서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곧 그 비구니는 이러이러한 믿음이 있었고 이와 같이 계를 가졌으며 이러이러하게 널리 들었고 이와 같이 은혜를 베풀었으며 이러한 지혜가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그 사람은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그 비구니는 믿음이 있었고 계를 가졌으며 널리 들었고 은혜로 베풀었으며 지혜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이 바른 법을 들은 뒤에는 마음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본받기를 원한다. 아나율타야, 이러한 비구니는 반드시 보다 안락하게 살게 될 것이다.
아나율타야, 다시 어떤 비구니는 아무 비구니는 아무 데서 목숨을 마쳤다. 그는 부처님의 예언을 받고 3결이 이미 다하여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 한 번 천상과 인간을 왕래하게 되고 한 번 왕래한 뒤에는 괴로움을 벗어난다는 말을 듣는가 하면, 혹은 직접 그 비구니를 보거나 혹은 자주 이 말을 듣는다. 곧 그 비구니는 이러이러한 믿음이 있었고 이와 같이 계를 가졌으며 이렇게 널리 들었고 이러이러한 은혜를 베풀었으며 이러이러한 지혜가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그 사람은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그 비구니는 믿음이 생겼고 계를 가졌으며 널리 들었고 은혜로 베풀었으며 지혜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바른 법을 들은 뒤에는 마음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본받기를 원한다. 아나율타야, 이러한 비구니는 반드시 보다 안락하게 살게 될 것이다.
아나율타야, 다시 어떤 비구니는 ‘아무 비구니는 아무 데서 목숨을 마쳤다. 그는 부처님의 예언을 듣고 3결이 이미 다하여 수다원을 얻어 악한 법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
결국 7유를 받고 천상과 인간에 일곱 번 왕래한 뒤에는 괴로움을 벗어난다는 말을 듣는가 하면, 혹은 직접 그 비구니를 보거나 혹은 남에게서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곧 그 비구니는 이러이러한 믿음이 있었고 이와 같은 계를 가졌으며 이와 같이 널리 들었고 이러이러한 은혜를 베풀었으며 이와 같은 지혜가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그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그 비구니는 믿음이 생겼고 계를 가졌으며 널리 들었고 은혜를 베풀었으며 지혜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바른 법을 들은 뒤에는 마음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본받기를 원한다. 아나율타야, 이러한 비구니는 반드시 보다 안락하게 살게 될 것이다.
아나율타야, 또 어떤 우바새는 ‘아무 우바새는 아무 마을에서 목숨을 마쳤다. 그는 부처님의 예언을 듣고 5하분결이 이미 다하여 그 사이에서 나서 열반에 들고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가 하면, 혹은 직접 그 우바새를 보거나 혹은 남에게서 이 말을 듣는다. 곧 그 우바새는 이러이러한 믿음이 있었고 이와 같이 계를 가졌으며 이렇게 널리 들었고 이러이러하게 은혜를 베풀었으며 이러이러한 지혜가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그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그 우바새는 믿음이 생겼고 계를 가졌으며 널리 들었고 은혜로 베풀었으며 지혜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바른 법을 들은 뒤에는 마음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본받기를 원한다. 아나율타야, 이러한 우바새는 반드시 보다 안락하게 살게 될 것이다.
아나율타야, 또 어떤 우바새는 ‘아무 우바새는 아무 마을에서 목숨을 마쳤다. 그는 부처님의 예언을 받고 3결이 이미 다하여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 한 번 천상과 인간을 왕래하게 되고 한 번 왕래한 뒤에는 괴로움을 벗어난다는 말을 듣는가 하면, 혹은 직접 그 우바새를 보거나 혹은 남에게서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곧 그 우바새는 이러이러한 믿음이 있었고 이와 같은 계를 가졌으며 이렇게 널리 들었고 이러이러하게 은혜를 베풀었으며 이러이러한
지혜가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들은 뒤에 그 우바새는 믿음이 생겼고 계를 가졌으며 널리 들었고 은혜를 베풀었으며 지혜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바른 법을 들은 뒤에는 마음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본받기를 원한다. 아나율타야, 이러한 우바새는 반드시 보다 안락하게 살게 될 것이다.
아나율타야, 다시 어떤 우바새는 아무 마을에서 목숨을 마쳤다. 그는 부처님의 예언을 받고 3결이 이미 다하여 수다원을 얻어 악한 법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 결국엔 7유를 받고 천상과 인간을 일곱 번 왕래한 뒤에는 괴로움을 벗어난다고 듣는가 하면, 혹은 직접 그 우바새를 보거나 혹은 남에게서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곧 그 우바새는 이러이러한 믿음이 있었고 이와 같은 계를 가졌으며 이렇게 널리 들었고 이러이러하게 은혜를 베풀었으며 이러이러한 지혜가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그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그 우바새는 믿음이 생겼고 계를 가졌으며 널리 들었고 은혜를 베풀었으며 지혜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바른 법을 들은 뒤에는 마음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본받기를 원한다. 아나율타야, 이러한 우바새는 반드시 보다 안락하게 살게 될 것이다.
아나율타야, 어떤 우바사(優婆私:優婆夷)는 아무 우바사는 아무 마을에서 목숨을 마쳤다. 그는 부처님의 예언을 받고 5하분결이 이미 다하여 그 사이에서 나서 반열반에 들고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가 하면, 혹은 직접 그 우바사를 보거나 혹은 또 남에게서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곧 그 우바사는 이러이러한 믿음이 있었고 이와 같은 계를 가졌으며 이렇게 널리 들었고 이러이러하게 은혜를 베풀었으며 이와 같은 지혜가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들은 뒤에는 그 우바사는 믿음이 생겼고 계를 가졌으며 널리 들었고 은혜를 베풀었으며 지혜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바른 법률을 들은 뒤에는 마음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본받기를 원한다. 아나율타야, 이러한
우바이는 반드시 보다 안락하게 살게 될 것이다.
아나율타야, 또 어떤 우바사는 아무 마을에서 목숨을 마쳤다. 그는 부처님의 예언을 받고 3결이 이미 다하여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 한 번 천상과 인간에 왕래하게 되고 한 번 왕래한 뒤에는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말을 듣는가 하면, 혹은 직접 그 우바사를 보거나 혹은 남에게서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곧 그 우바사는 이러이러한 믿음이 있었고 이와 같이 계를 가졌으며 이렇게 널리 들었고 이러이러한 은혜를 베풀었으며 이러이러한 지혜가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그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그 우바사는 믿음이 생겼고 계를 가졌으며 널리 들었고 은혜를 베풀었으며 지혜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바른 법을 들은 뒤에는 마음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본받기를 원한다. 아나율타야, 이러한 우바사는 반드시 보다 안락하게 살게 될 것이다.
아나율타야, 또 어떤 우바사는 ‘아무 우바사는 아무 마을에서 목숨을 마쳤다. 그는 부처님의 예언을 받고 3결이 이미 다하여 수다원을 얻어 악한 법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 결국엔 7유를 받고 천상과 인간에 일곱 번 왕래한 뒤에는 괴로움을 벗어난다고 듣는다. 혹은 직접 그 우바사를 보거나 혹은 남에게서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곧 그 우바사는 이러이러한 믿음이 있었고 이와 같이 계를 가졌으며 이렇게 널리 들었고 이러이러한 은혜를 베풀었으며 이와 같은 지혜가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그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그 우바사는 믿음이 생겼고 계를 가졌으며 널리 들었고 은혜를 베풀었으며 지혜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바른 법을 들은 뒤에는 마음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본받기를 원한다. 아나율타야, 이러한 우바사는 반드시 보다 안락하게 살게 될 것이다.
아나율타야, 여래는 이런 이치가 있기 때문에 제자가 목숨을 마치면 아무는 아무 데서 태어나고 아무는 아무 데서 태어난다고 예언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나율타와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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