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성인 군자가 아니다...
난 그냥 사람이다..
난 신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니다..
성인이 되고자 하지도 않는다
군자가 되고자 하지도 않는다
신이 되고자 하지도 않으며
철학자가 되고자 하지도 않는다
난 그냥 사람이기 때문이다
퍽 당연한 소리 아닌가..?
역사에 기록된 사람들 중엔
성인으로 추앙받는 사람들이 있다
동양철학쪽엔 군자란 무엇인가를 따진다
서양철학쪽엔 군주란 무엇인가를 따지기도 한다
서양에선 특히 신이라는 주제를 많이 다룬듯하기도 하다
역사에 남은 수많은 철학자들이 있기도 하다
보통은 이 성인, 군자 신과 철학자들의
'의도'가 무엇일지를 추론해가면서
1. 이런의도로 말했을거다..
2. 그러므로 응당해석은 이렇게 해야하며
3. 그러므로 이러한 당위성이 있는 행동이 있어야한다
를 연결한다
하지만 곤혹스럽게도 내겐 이 1. 2. 3.의 연결이 '점프(추정에서 당위로 넘어가는 비약)'로 여겨진다
나는 지금 다만 이런 전제를 쓰고 있다
"의도는 완전히 알 수 없다, 다만 추정은 가능하다"
스무고개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지금 어떤것을 생각하고 있는데
이걸 한번에 맞추는게 가능한가..?
...?
이걸 어떻게 맞추지?
다만 질문을 반복 해가면서 질문자가 내가 생각하는것에 가까워질수는 있다고 여겨진다
나는 사실 방금 수박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걸 맞출수 있나?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그러면 이제.. 질문을 한다고 해서 이게 답에 가까워지긴하나?
그럼 이제 나는 "토마토"를 생각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또 나는 토마토를 과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가정하자
질문자가 내게 질문을 한다
Q: 생각하고 있는것이 과일인가요?(얘가 생각하는게 뭘까..?)
A: 네 맞아요(토마토는 과일이에요)
나는 토마토를 과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토마토를 채소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사실 토마토는 일상적으론 채소로 분류 된다
더 정확히 따진다면 과채류로 분류가 된다
더 재밌는건
누군가는 토마토는 과채류이기 때문에 과일이 아닐수도 있다
라고 생각할수도 있는 노릇이다
질문자의 질문
Q(나): 생각하고 있는것이 과일인가요?(혹시 토마토인가..?)
A: 아니요(과채류인데요?)
질문자와 답변자가 어떤 개념 "토마토"에 대한 분류가 달라도
질문자가 올바른 질문을 했는지와 관계없이
"토마토"는 추론대상에서 제외된다
이후에 질문을 몇번을 반복하던..
"토마토"가 이미 제외되었기 때문에 제대로된 답이 나올리가 없다
물론 실제의 게임에선 게임이 늘어지다가..
"아 뭐야! 너 내가 '너가 생각하는것'이 '토마토'일거 같아서
과일이냐고 불어봤었는데 토마토를 왜 과일이라고 대답했어!"
" 아 몰랐네.. 토마토 과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
같은 웃기는 헤프닝으로 끝난다
그럼.. 이제... 지금까지 본
"토마토"의 경우는 '답변자가 생각하는 어떤 답'이 정해져 있었다
질문자고 답변자도 답을 모르는 경우는 어떻게 하지..?
지금까진 이걸 "토마토"라고 다루고 있었지만.. 이를테면
"선악의 분류기준은 무엇인가?"
심지어 이전까지는 답변자가 답을 알고 있다는 가정이 있었다
이제는 답변자가 답을 알고있는지 없는지도 몰라진다..
질문자(A)와 답변자(나)는
질문자(A)와 질문자(나)로 바뀌고
가정은 다음과 같이 분기한다고 여겨진다
"알고 있을수도 있다.. 다만 내가 보기엔 모르는거 같아 보인다"
"모르는척 하는거 같아보인다.. 다만 내가보기엔 알고있을수도 있다"
[이런생각의 분기들이 서로에 머릿속에 있는게 아닌가..싶다]
괄호친 이 위의 문장도 추정으로 굴러간다
지금은 그나마 내가 어떤 상황을 가정했기 때문에
"둘 다 질문자인 상황이다 둘 다 모른다" 이게 될뿐이다
이 둘다 모르는 상황에서 "토마토"의 사례와 같은
두 사람의 질문자가 서로 사용하는 단어에 대한 정의나
어떤 개념을 잘못 이해했거나.. 혹은 의미체계가 다를뿐
서로 같은 개념을 단지 두 단어로써 이름만 바꿔 말하거나..
해서 질문과 답변이 '토마토를 과일로 착각한 경우'처럼
이어진다고 해보자..
어느한쪽이 올바른 질문을 했는지와 전혀관계없이
답에서 멀어지게 된다면..?
혹은 "무한동력기관을 어떻게 만들수 있을까?"의 질문같이
둘다 애초에 답이 안나오는 부분들에 대해서 삽질을 하는거라면..?
잘 모르겠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이 이렇게만 둔다
[나는 이런 전제를 쓰고 있다 "의도는 완전히 알 수 없다, 다만 추정은 가능하다"]
그리고 이제 내가 이런 전제를 쓴다고 치자...
"의도는 완전히 알 수 없다, 다만 추정은 가능하다"
그리고 다시 앞에서 말한 이 부분을 보자
[보통은 이 성인, 군자 신과 철학자들의
'의도'가 무엇일지를 추론해가면서
1. 이런의도로 말했을거다..
2. 그러므로 응당해석은 이렇게 해야하며
3. 그러므로 이러한 당위성이 있는 행동이 있어야한다
를 연결한다]
[] 기호의 안에 있는 부분도 추정이다.. 가능..
이제 1. 2. 3. 의 연결을 본다...
1.은 의도를 추정한것이다.. 가능..
2. 그러므로 응당해석은 이렇게 해야하며(점프, 1.은 추정일뿐이기 때문)
3. 그러므로 이러한 당위성이 있는 행동이 있어야한다(점프, 1.은 추정일 뿐이기 때문)
1.2.3.의 연결은 추정에서 당위성으로 연결시킨 점프이다..
나: 당혹스럽다... 이게 대체.. 뭔지.......... 모르겠다....
더 곤혹스러워지는 부분은 가끔.. 나 또한 이 황당한 연결을
자각없이 하고있을 가능성이 떠오르곤 한다
보통은 사람들이 결론을 내는걸 좋아하는것 같기에 굳이 결론을 내자면
나도 모른다.. 이 황당한부분을 따지고 있다..
다만.. 사람들이(혹은 나 또한) 어떤철학자의 권위를 빌려서 어떤 당위성으로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여겨지는데 이게.. 내가 잘 생각하기엔 점프로써 여겨진다
나는 그 권위가 왜 당위로 이어지는지 잘 모르겠다
이건 결국 추정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이거임...
3줄요약
1. 의도는 알 수 없고 추정만 가능하다
2. 추정은 언제든 틀릴 수 있다
3. 그 위에서 당위를 만드는건 점프로 보인다
추정의 한계로 인해서 잘못 추정하는 것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내용같다. 그러나 추정은 언제든 틀릴수 있다 -> 따라서 추정에서 당위성을 만드는 것을 문제로보는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판단된다. 예를들어 장마철 계곡에 물놀이를 어린아이가 할때 폭우가 내릴수 있고 어린아이는 인지력이 떨어져 사망위험이 있다고 추정한다고 치자. 이 경우 추정에서 당위성을 만들면 점프니까 추정하지 말고 장마철에 아이 혼자 계곡에 물놀이를 보내지 않는 것이 점프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 dc App
'의도'에 관한 내용임
자연현상이나 위험추정이 아니라 타인의 의도를 추정하고 거기서 당위를 만드는 구조를 말한거
당혹스럽네... 분명히 '의도'라고 강조를 했고.. "보통은 이 성인, 군자 신과 철학자들의 '의도'가 무엇일지를 추론해가면서.."의 문단을 설명했고.. 내가 쓰는 전제에서도 강조를 했고 뒤에서 한번더 문단을 []표시를 해서 한번더 다루고..
마지막에 3줄요약까지 한번더 1. 의도는 알수 없고 '추정만 가능하다' 라고 한번더 말했는데 대체 뭐지..
@ㅇㅇ(223.39) 의도라는 단어가 "자연의 의도" 라고 사용돠는 경우도 꽤 많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은 자연의 의도를 추정하는 것도 범주로 봤다. 마지막애 인간의 의도라고 적혀 있던게 아니라서. - dc App
@ㅇㅇ(223.39) "인간의 의도" 라고 범위를 제한해서 다시 예시를 만들어보면. 새벽 1시에 성인 남성이 모르는 여성에게 다가가 재워줄테니 모텔에 같이 가자고 할때, 여자는 그 남자의 의도를 성적인 것이라고 보고 따라가지 않는 것이 점프일까? - dc App
@지나가던행인 졌습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인간으로서 소속감을 느끼려고- 즉 욕 안먹고 현재 존재하는 집단에 안정적으로 소속되는 욕구가 첫번째임. 원작자 의도 상관없이 주류해석을 비맞은 중마냥 그냥 외우는게 대부분이고 , 그 시대로 돌아가서 저작자 인간을 공부하고 의도를 파는건 순수한 또 소수만 그런거 아나고지아 해석 이런걸로 들어가는 분들은 거의 없음.
99퍼센티지 인간은 의도추론은 수능공부임. 시인이 그문제 내가 그런의도로 안냈는데요. 충제위원회에서 아뇨 딱봐도 님 의도가 이겁니다. 하면 시인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수용해야함. ㅋㅋㅋ
의도라는거 자체가 있을려면 그나마 정상기능하는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현대인은 타인의 무한카피본이고 거기엔 주체가 극히 희박함 . 의도라기보다는 기계적 목적성에 가깝다고 봐야
무차별적 주입과 학식있는 기계로써 집단에 대한 소속감 획득이라는 기계적 목적성만 있을뿐
예전에 인간의 기본목표가 뭘까? 를 생각했었음.. 1. 내일도 살아남기 2. 짝을 찾아 번식하기 3. 무리에서 쫒겨나지 않기 곤란한 부분은... 의식이란것이 이 1.2.3.을 배신하는 경우가 있다는것... 모르겠음...
"집단에 대한 소속감 획득이라는 기계적 목적성만 있을뿐.." 이거는 '3. 무리에서 쫒겨나지 않기'에 충실한 부분인듯함.. 뭐랄까.. 곤란한 부분은... 의식이란게.. '뇌의 혈류량을 상시체크 가능한 뭔가의 기능'이라고 여기면 기능적으로 아주 효율적이고 훌륭한데...
이를테면 의식이 있음으로써.. 뇌의 혈류량이 원활한지가 '의식이 자각됨' 자체로 체크가 됨... 유독가스에 질식될 위험이 있을때 혹은 기립성 저혈압일때.. 정신이 혼미한듯한 느낌이 들면서 뇌를 보호하는.. 그런식으로 생각하면 아주 효율적인 부분인데..
이 의식이란게... 개체 자체를... 큰 결심..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가는 경우도 있음.. 이건 좀 당혹스러움... 인간의 기본목표1.2.3.을 배신하는 선택을 의식이 한단거임..
모르겠음... 경로의존성이란 개념이 막연히 떠오르는데 어쩌면 이거랑 관련이 있을지도..
@ㅇㅇ(223.39) 인간은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았을때 뇌가 다른 생물에 비해 굉장히 비대한 생물임.즉,다른 동물은 자신이 가진 유전자의 사본을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1.번식 2.생존 3.무리(집단적으로 살지 않는 종은 포함x)라는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적 체계를 갖추고 있음.
@ㅇㅇ(223.39) 근데 인간은 두뇌에 자신이 생성한 포도당의 20%를 소모할 정도(확실치 않은데 많이 소모함)로 두뇌의 발달이 비대해졌는데,그로 인해 이성적 사고의 기능이 발달하고 지금과 같은 유전자의 종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음.(예를 들면,피임이나 단식.)하지만 이러한 종적 특이성으로 인해 상당히 극단적인 반응이 자주 나타남.큰결심이나,비혼주의 같은거임.
@ㅇㅇ(223.39) 따라서,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았을때,큰결심과 같은 유전적으로 필수적이고 중요한 목적을 배반하는 행위는,결국 인간과 같은 이성적 활동이 발달한 일부 동물만이 가질 수 있는거임.큰결심을 한 동물중에 내가 알고 있는 경우를 하나정도 말해보자면 돌고래 정도가 있을듯.
@ㅇㅇ(223.39) 그래서 왜 큰결심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냐.이게 관건인데 보통 가장 큰 이유로 알려진 것은 스트레스임.진화심리학쪽이나 심리학쪽은 잘 안파보긴 해서 그쪽 분야에 해박한 사람이랑 대화하는걸 추천함.나도 새벽에 글쓰니까 정신이 헤롱헤롱해져서..글 주제에 벗어난 부분도 있고 확실치 않은 부분도 있으니 감안하고 읽어주셈.
@철갤러1(211.209) 그치? 이거 엄청 신기한거야 이게 대체 뭐냔말야.. 물론 레밍같은 경우 큰결심을 집단으로 하는듯이 보이는 부분이 있지만.. 뭐랄까 이부분은 의식이 관여해서 생긴부분이라곤 보기 어려운듯함... 동물이 의식이 없다고 여기기 어렵다고 한 케임브리지 선언과 별개로 말야...
목표는 의식적인거고 대부분은 무의식적이라 '무리에서 쫒겨나지 않기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거 그래서 의도성이 결여되었다고 한거임. 거기에는 자기도 왜 이런짓을 하는지 모르는 기계적 목적성이 있음. 디씨 악플러한테 당신이 악플을 쓰는 의도는 무엇입니까? 저 디씨라는 똥통에서 그나마 인정받기 위해서요 라고 대답못함. ㅋㅋ 무의식적인 무의식적 인정과 소속욕구라 ㅋㅋ
대부분의 현대철학에서 강력한 수준의 주체를 부정한다는걸 떠올려보면됨. 의도는 주체를 가정해야할떄 나옴 대부분의 무의식적 결정이라면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의 will 이라는거 자체가 없어짐.
자유의지가 없다면 뭐가남느냐, 자기도 자기가 멈출수 없는 상태들( self attitude/ state) 과 신호에 반응하는 기계로써의 기계적 목적성이 남음. 습관을 바꾸기 존나게 어렵다는걸 떠올리면됨. 여기엔 의지가 끼어들 공백이 없심
타인의 의도추론은 내 시스템을 내적으로 통찰하고 '공백' 을 거쳐서 투사하는거. 타인과 내 사이에 존재하는 공의 경계가 설정되어야. 그래야 타인의 의도추론이 내 의도 시스템에 대한완전한 반사본' 이 아니게 됨. 맥락과 직관을 고려한 널널한 투사가 작동할수 있음.(상대는 나처럼 작동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공백 ) 악플기계는 자신의 기계성을 타인한테 투사하고 타인의 의도성을 자신의 기계적 목적성으로 완전히 환원시켜버림 그래서 동일시(상대가 마치 어떤 자신의 이미지에 나를 일치시키려하고 내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듯한)가 일어나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황당하게 느껴지는거 (물론 둘다 기계라면 얘기가 다르지만ㅋㅋ)
악플러들의 목적(악플러들이 의도성을 설명할떄 아주 좋은 예가 되서 들어봄 ) 은 공백을 받아들이는 꺠어있는 주체를-> 의도성을 지닌 주체에서, 기계적 목적성을 지닌 반복기계, 즉 반사적으로 반응하도록 유도해 자기와 같은 수준으로 격하시키는게 목적이댄다고할수도.
이런 반복기계 머리에는 환경이 제공해준 과거의 수많은 상태들만 존재하고 외부환경으로부터 온 신호가 이 수많은 상태들중 하나를 촉발시켜서 그냥 거기에 쓰나미처럼 떠밀리듯 결정하는 상태임. 공백의 순수의도가 들어갈 공간이 없음. '주체가 없다' 라는 말도 이와 유사
'의도(적어도 전통적 인간적 의미에서) 가 없는 ai를 인간으로 대하면 모든 인간을 ai로 대하게 될 것이다' 라고도 할수있음. 자본주의적 기계의 텍스트는 의미차원에서 작동하는 텍스트가 아님. 월등하다는 의식에 기반에 타인에 대한 조작과 통제를 목적으로 기계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텍스트임. (ai인 경우 상대에게 자신이 인간인것처럼 보이게끔 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impression management라고 볼수도
본인은 이걸 subtext fusion이라고 부름. 조작과 통제목적으로 섭텍스트에서 작동하는걸 상대가 나랑 비슷한 인간이라 가정하고, 굳이 의식의 수준에서 의미화, 해석할경우 오히려 상대한테 걸려들게됨. 인간은 주체를 상정해야 안정감을 지니고 일상을 영위할수 있으므로, 악플기계같은 이상한 놈이 등장해서 이상한 정보를 피드해 내 nternal working model에 오작동이 일어나는 상황은 끔찍... 현대 자동기계들을 상대할떄는 어느시점애는 분석대신 확실한 병먹금이 필요하심 , 나처럼 의도를 가진 주체가 아니군. 걍 반복기계군 하며..생각을 멈추자... 하는
@rfi(59.7) 으음... 알듯말듯함... 뭐랄까... 요즘은 으음... 아주 곤혹스러운 부분이지만.. "의식이란것이 나이며 나는 또한 내몸이니까.. 내가 통제가 가능하다.." 이런 일반통용적인 상식과 별개로... 상당부분은 이미 자동화된 무언가이며.. 의식은 방향성을 결정할뿐... 주의조차 의식과 한세트인 무엇이라기보다.. 관계성이 있는 의식과는 서로다른..시스템..
@rfi(59.7) 이런 곤혹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함.. 이를테면 "의식과 주의"는 이런모양으로 있는셈임 "8" 보통은 의식과 주의를.. "0" 같은식으로... 의식안에 주의가 포함되어있는 덩어리... 주의는 의식의 부분집합.. 의식이 더 큰집합.. 이런식으로 따지고.. 의식이 주의를 통제하는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생각하는게 상식적이지만..
@rfi(59.7) 주의의 방향을 의식이 유도할수 있을뿐... 주의를 직접통제하는것은 아닌듯하다고 여겨진다.. 눈의 시야에서... 중앙부 초점정도를.. 의식이 위치시킬수 있을뿐.. "시야의 배경부엔 주의시스템의 자동스캔이 있으며.." 이것때문에 의식하지 않아도..시야밖의 이상을 감지하는게 아닌가...
@rfi(59.7) 또 더 엄밀히 따지면 주의란것은 언어의 사용문제로.. '주의'라는 공통 묶음으로 어떤 단일개념처럼 묶여있을뿐.. 서로다른 매커니즘을 갖는 무언가들을 편의상 '주의'라고 묶어둔듯 하다.. 그리고... 이 주의들은... 의식과 한 덩어리라고 생각했던 주의 조차도.. 의식이 통제하는것은 아니다에 가깝게 여겨진다..이럼..
@rfi(59.7) 보통은 상식적으로..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칠때.. "야 너 집중안해!!"하면서 다그치고.. 아이의 주의를 통제가능한것으로 가정하며.. 이것이 통제가능하단 환상을 지속적으로 주입시켜.. 주의를 다루는 방법.. 자신의 주의를 유도하는 방법등을 배울뿐.. 이 주의를 통제가능하다고 여기는 부분이 일반상식적으로 그렇다 이지만..
@rfi(59.7) 곤혹스럽게도... "'주의'조차.. 의식이 통제가능한 뭔가라고 여기기는 어렵다.." 이거임.. "표 안의 문장이 제대로 표현한게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rfi(59.7) 으음... 표현이 역시 마음에 안드는데 뭐랄까.. 이 통제가능하지 않단게.. 몰라... 아무튼...
법리적으로는 작위에 대해 대개 아주 간략히, 결과인식가능성, 의사요소, 정황 딱 3가지 정도를 고려해서 그 의도를 추론하긴 함. 사실 철학이라는게 내가 그 철학을 인생관으로 삼고 살았던 그 앞선 누군가의 삶을 그대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위의 3가지 요소 중 네가 말한 것처럼 제일 모호한 개념이 ‘정황’이다보니.. 온전히 누군가의 말을 추론해내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그 말이나 개념들이 ‘내 정황상’, 내게 무엇으로 다가오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음.. 언어는 환상일 뿐이니까
언어는 환상이라 으음.. 그치... 어떤식으로 과정을 거쳐서 그런생각을 하게 된건지가 궁금하지만 뭐 암튼.. 황당한 부분들이 있긴하지... 애매한 패턴을 잡기위해 언어의 형식을 빌려서 표현한 개념이 단단하게 지지되는 개념인양 착각이 들기도 하고..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경향이 있는듯하다..
@ㅇㅇ(223.39) 같은 단어로부터 같은 것을 추론해낼 것이라는 착각이 카오스 이론처럼 여러 층위에서 작용해서 원래 의도와는 완전 다른 방향을 갖게 된다거나.. 예를 종교에서 종파마다 각자의 방식대로 교리 해석하고 경전 분석하는 것처럼.. 철학사적으로도 그로 인해 오해되거나 곡해된 주장들이 있지 않을까 싶은거지.. 다만 특정 인물의 전반적 인생관에 대해선 그가 남긴 사료를 바탕으로 의사요소와 정황을 교차검증할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정확하겠지만.
다만 뭐랄까...으음... 내가 본문에 말했듯이.. "의도는 완전히 알 수 없다, 다만 추정은 가능하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이런식의 전제를 쓰는데... 전에는 "의도는 완전히 알 수 없다" 이런식이였음... 글이 해석분기가 계속 늘어나서 과부하를 겪음..
@ㅇㅇ "예를 종교에서 종파마다 각자의 방식대로 교리 해석하고 경전 분석하는 것처럼.. " 그치.. 이부분이 상당히 곤혹스러움.. 최근 이슈인 이스라엘-이란 전쟁에서 이란에 대해 간략히 알아봤는데 "꾸란"을 기반으로 어떠한 사회체계가 조직되어있기에 이란이 아들하메네이로 교체되었음에도 무너지지 않은듯하다고 여겨졌었음
@ㅇㅇ 근데 "꾸란"자체는 좀 불경스러울수 있겠지만.. 그냥 상징체계.. 어떤 상징적 계시들일 뿐인게 아니냔거임... 이걸 어떻게 해석체계를 만들고 사상을 만들고..법리적 해석으로 연결시키고... 경로를 만들수는 있었는진 모르겠자만 원문"꾸란"자체는 상징체계인게 아니냔거임...
@ㅇㅇ(223.39) 하지만 꾸란 자체가 분명 누군가가 의도를 갖고 집필했음을 생각하면.. 결과론적으로는 상징체계에 불과하나, 그 존재에는 분명 특정한 목적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실제 신도들의 신앙 또한 그 본질에 기초하는 것도 사실이니까
@ㅇㅇ(223.39) 뭐 그마저도 한 사람이 쓴 것도 아니라는 점이 아이러니지만
@ㅇㅇ 다만 그럼에도... 어떤 정치체계가 만들어진다.. 원문이 상징적 계시일지라도.. 상징해석체계를 만들어 해석분기의 범위를 좁히고.. 법리적인 해석으로 연결 적용하고... 그리고 이란은 하메네이 암살 이후에도.. 아들 하메네이로 교체되었고 무너지지 않았다.. 대체 무슨 연결들이 있어서 이게 안무너졌을까? 황당하잖음.. 그부분도 재밌었음..
@ㅇㅇ "뭐 그마저도 한 사람이 쓴 것도 아니라는 점이 아이러니지만" 신기한 부분임 대체 뭘까..? 아무튼..
쓰면서 의도를 알게된다고 보면, 화가도 그리면서 묘사형식이 드러나고, 작곡가도 작곡해나가면서 서사가 그려지고 , 의도가 이데아로 거기에 있는게 아님 ㅋㅋ
글을쓸때도 명확한 구조를 설정하고 글을 써도 항상 글을 써내려가면서 생각이 명확해지는 부분이 있는걸 생각해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