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느낀 불편함의 핵심
처음엔 그냥 “뭔가 거슬린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정리된 핵심은 이거임.
이 제도는 단순히 누굴 뽑을지를 결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어느 정도여야 인정할 것인가”라는 승인 기준까지 유권자에게 적게 만듦. 그런데 막상 그 기준은 개인의 기준으로 남지 않고, 평균값의 재료로 갈려버림. 즉 내 판단이 결과 경쟁에서 패배하는 게 아니라, 내 판단이 내 판단으로서 보존되지 않음. 여기서 네가 말한 주권침해 감각이 생김.
기존 민주주의에서는 내 표가 져도, 적어도 내 판단은 내 판단으로 남아 있음. 나는 누구를 지지했고, 누구를 거부했는지가 그대로 보존된 채 패배하는 거임. 그런데 여기선 내가 100%를 적어도 그건 내 승인 조건으로 남는 게 아니라 사회적 평균선의 일부가 됨. 그러면 나는 참여는 했지만, 내가 행사한 판단은 독립된 판단으로 남지 않음. 이건 단순 패배와 다름.
그래서 네 불편함은 “평균낸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승인 기준을 권리처럼 부여해놓고 실제론 평균 재료로만 처리한다”는 데 있음. 권리로 줬다면 그 권리가 권리로서 보존되어야 하는데, 이 구조에선 그게 안 됨.
- 왜 이게 단순 감정적 거부감이 아닌가
이게 그냥 막연한 거부감이면 “난 싫음”으로 끝나야 함. 그런데 네가 계속 파고든 결과, 문제는 꽤 분명해졌음.
첫째, 표의 동일성 문제가 생김. 형식적으로는 모두 1표씩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각 표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음. 어떤 사람의 표는 자신의 뜻대로 결과 형성에 작동하고, 어떤 사람의 표는 투표했음에도 공동 임계치 때문에 적용 조건 자체가 막힐 수 있음. 그러면 같은 1표라고 보기 어려움.
둘째, 권리의 성격이 바뀜. 개인에게 승인 기준을 정할 권리를 준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그 기준을 평균 재료로만 취급함. 그러면 그건 독립된 승인권이 아니라 공동기준 형성 참여권에 가까움. 즉 부여된 권리의 외형과 실제 작동이 어긋남.
셋째, 비밀투표와도 충돌할 여지가 큼. 임계치 정보가 정치 데이터로 공개되는 순간, 그건 단순한 의견 수집이 아니라 충성도 분포표로 읽힐 가능성이 높음. 그러면 누가 미온적이었는지, 어느 집단이 낮은 수치를 적었는지에 대한 책임공방과 색출 심리가 붙음. 비밀투표는 형식만 남고 실질은 잠식될 수 있음.
즉 이건 새로워서 싫은 게 아니라, 권리 보존, 표 효력의 동일성, 비밀투표 보호라는 민주주의 핵심 부위들을 건드릴 수 있어서 문제인 거임.
- 왜 통치대행이 있는 시스템이 더 위험할 수 있는가
이 부분이 특히 중요함.
처음엔 “후보를 거부하는 것일 뿐이지 통치 자체를 거부하는 건 아니다. 미리 정한 대행 체제가 있으니 괜찮다”는 식으로 말할 수 있음. 겉으로 보면 그럴듯함. 하지만 네가 발견한 진짜 위험은 그 다음임.
부결이 반복되면 결국 국민주권에 의해 직접 선택된 인물이 아니라, 선출 실패 상황을 전제로 미리 정해진 통치계 내부 인물들이 나라를 운영하게 됨. 그러면 선거의 기능이 바뀜. 국민이 통치자를 세우는 절차가 아니라, 후보를 탈락시키는 절차만 남고 실제 통치는 제도 내부 승계 규칙이 보장하게 됨.
이건 왜 위험하냐면, 민주주의의 핵심은 단순히 다수결이 아니라 통치 권력이 국민 선택에서 나온다는 데 있기 때문임. 그런데 통치대행 체제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구조가 되면, 선거는 오히려 정식 통치자를 못 세워도 나라가 굴러가게 만드는 장치가 됨. 그 순간부터 국민은 통치자를 고르는 주체가 아니라, 통치계가 자동으로 살아남는 동안 후보만 떨구는 주체가 될 수 있음.
더 세게 말하면 이거임.
후보 거부권을 강화하는 제도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선출되지 않은 대행 권력을 장기화시킬 위험이 있음. 한두 번의 예외적 대행은 보완장치일 수 있어도, 반복 부결을 전제한 대행 체제는 점점 “정상 정치”를 대체하는 그림이 됨. 그러면 국민주권은 실질 통치자를 만드는 힘을 잃고, 통치계 내부 메커니즘이 더 강해짐.
- 왜 이게 기존 민주주의보다 더 위험할 수 있는가
네가 마지막에 정리한 말이 핵심임.
민주주의를 택한 건 최고의 효율을 위해서라기보다, 최악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였음. 완벽한 통치자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이 한쪽에 고정되거나 제도 전체가 박살나는 위험을 낮추기 위해 선택된 측면이 큼.
그런데 이 구조는 “더 나은 후보만 인정하자”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오히려 민주주의가 줄이려던 리스크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음. 왜냐하면 기존엔 다수가 이겨도 최소한 통치자는 정해졌는데, 여기선 다수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통치 자체를 성립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고, 그 빈자리를 선출되지 않은 대행 체제가 메우게 되니까.
즉 기존 민주주의의 위험은 “내가 원하지 않는 통치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 구조의 위험은 “내가 원하지 않는 통치자를 막는 대신, 정식 통치 없이 통치계 내부 인물들이 나라를 운영할 수 있다”는 데 있음. 전자는 불쾌하지만 통치 정당성의 연결고리는 남아 있음. 후자는 그 연결고리 자체를 끊을 수 있음.
+
“짧은 기간에 다시 뽑으면 되지 않느냐”가 선거 실패의 비용을 없애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실패 비용을 짧은 시간 안에 집중시킨다는 점임. 선거를 반복하면 된다는 발상은 겉보기엔 유연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거체제 자체의 권위와 안정성을 갉아먹을 수 있음. 유권자 입장에선 “또 하냐”는 피로감이 누적되고, 정당과 후보 입장에선 단기 선동과 감정 동원이 더 강해질 가능성이 큼. 게다가 갈등 구조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선거를 치르면,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같은 대립이 더 날것으로 반복될 뿐임. 그 과정에서 비용은 급격히 몰리고, 정당성은 낮아지고, 책임공방과 진영 분열은 더 커질 수 있음. 즉 반복 선거는 공백의 해소가 아니라 공백의 연쇄화일 가능성이 큼.
밥먹고 답글 적어봄
맛저
부정적인 글을 쓴 것과 반대로 난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음. 단지 문제점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어서 말하고 있을 뿐임.
너무 과도한 문제지적이 아니냐 할 수 있지만 모든 사건은 치즈구멍 사이로 날아든다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