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권 대반열반경)
[779 / 10007] 쪽
"세존이시여, 미래에 어떻게 능히 선근을 내나이까?"
"선남자여, 마치 등불이나 해가 비록 나오지 않았더라도, 능히 어둠을 깨뜨릴 수 있는 것처럼, 미래에 나올 것이 능히 중생의 미래의 불성을 내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분별하는 대답이라 하느니라."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 즉 색이 공이요 공이 색이다인데 이것은 전체 불교 설법에서 중간 정도의 단계이고 최종적으로는 위 대반열반경(소승 열반경과 다름) 내용과 같이 바르게 분별하는 것을 최종적인 성불의 단계이자 정각자의 지혜에 해당됨.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성철스님은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기 때문에 "사탄과 부처는 다르지 않다"고 했지만 다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와 같이,
하는 짓이 사탄이면 사탄인 것이고 부처의 행을 하면 부처다 라는 화두에 해당됨. 즉 바르게 분별하는 경지가 부처의 경지이며 불경 8만4천 법문 전체가 옳고 그름을 설법한 분별지임.
불교에서 인간 인식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안이비설신(눈,귀,코,혀,몸조직)을 통한 색성향미촉(빛,소리,향기,맛,촉감)을 색수상행식(형상,느낌,상상,자극반응,지각)하는데 이것을 전5식이라고 하며 반야심경에서 오온이 공하다는 오온을 뜻함. 전5식 다음을 6. 의식, 7, 분별 판단식(말라 식), 8, 감춰진 식(아뢰야 식, 아카식 레코드 또는 무의식 비슷) 9, 여래장 식(아말라 식, 청정한 식. 청정하지만 정각을 깨달은 이후에 나오는 분별식으로 반야의 지혜가 나와야 함) 이라고 함. 이것만 외우고 있어도 불교 인식론은 다 안다고 할 수 있음.
위 불교인식에서 일곱번째 말라식과 아홉번째 아말라식(아마라식)이 모두 분별식 즉 판단식인데 7식은 중생의 분별식 판별식이고 9식 아말라식이 정각 이후에 나오는 바른 분별식 판별식으로 이것이 반야의 지혜에 해당됨. 공사상 자체는 원래 힌두교 업식임.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가하여 처음에 두 명의 브라만 스승으로 부터 공사상까지 깨우쳤으나 이것으로는 고통을 여읠 수 없다고 여겨 스승을 떠난 후 고행 후 보리수 밑에서 9식 아말라식(아마리식)을 깨우치면서 성불함.
낙공외도=공사상에 떨어지면 외도다.
<대반열반경 40권중 36권 내용> 지혜의 성품은 분별하는 것인데 이 사람은 여래가 항상한지 무상한지를 분별하지 못한다. 여래는 이 열반경에서 말하기를 ‘여래가 곧 해탈이며, 해탈이 곧 여래이며, 여래가 곧 열반이며, 열반이 곧 해탈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런 이치를 능히 분별하지 못한다. <비화경 中> "이 도(道)는 잘 선택함이니 반야(般若:지혜) 바라밀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정혜쌍수(定慧雙修)에서 정(定)은 공(空)과 무분별지를 포함하는 방편이고 혜(慧)는 지혜와 분별의 방편임. 정과 혜, 무분별지와 분별지를 다 갖추어 상황에 따라 알맞게 쓸 줄 아는것이 반야바라밀이며, 중도임. 양변을 초월하여 양변을 자재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함.
분별을 강조하는 부분은 공감이 간다. 9식이 어떤 개념인지 직관적으로 이해는 안가지만 무언가 추구해야할 목표나 가치로서 두기는 좋은것 같아보인다. - dc App
이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진리에서 나오는 지혜여만 한다. 그런게 있다.
@유전 흥미로운 개념인것 같네. 생각해볼 좋은 소재를 줘서 고맙다. - dc App
불교는 절대적 진리 (열반, nirvana)에 도달 할수 있다고 믿는 사상임 상대주의 같은 허접한 철학이 아님
그건 어리석은 니 관념이고 절대적 존재에게 있어 미생물이라도 하나 아담과 같이 창조하면 이미 상대적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고 그 절대적 존재도 그 상위의 존재에게는 상대적 미생물에 불과하다.
<금강삼매경> 식을 여의면 모든 법은 공한 것 이러므로 공한 곳을 따라서 말하나니 생기고 없어지는 모든 법을 없애고 언제나 열반에 머묾이여. 대비(大悲 : 대자대비에서 대비 - 중생을 크게 가여워 함)가 빼앗는 바이며 열반은 없어져서 머무르지 않나니 소취와 능취를 변화시켜 여래장에 들어가게 하시네.
공에 들어서 열반에 머무는것도 대자대비심으로 여의어야 열반과 열반아님, 공과 색, 진제와 속제 양변에서 자재한 쌍차쌍조(양변을 여의고 양변을 비춤)의 중도임.
위 금강삼매경에 "열반은 없어져서 머무르지 않나니" 열반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열반 자체가 환상이야.
@유전 틀렸음, 열반이 곧 절대적 진리고 부처는 일반인보다 더 깨우친 존재임 더 깨우치다 vs 덜 깨우치다 이 구분 자체가 상대성을 거부함 또한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다' --> 틀리게 분별하는 상태도 존재한다는 것임 모든게 다 동등한 관점이나 상태가 아니라는 것임
@유전 그럼 부처하고 중생하고 아무런 차이가 없겠네? 차이가 존재하냐?
@ㅇㅇ(221.165) 위 금강삼매경에 차이를 소취와 능취라고 했잖아. 소취는 중생 능취는 부처의 여래장 권능. "소취와 능취를 변화시켜 여래장에 들어가게 하시네."
@유전 그러니까 그말이 그말이잔아 불교도 어떤 특정 진리나 더 "상위차원" 에 도달함을 믿는 사상이라고 너가 반박할 필요도 없는걸 반박해서 그런것임
@유전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 더 깨달은 상태가 있다는거지 이것도 부정하는 인간들이 있으니까
@ㅇㅇ(221.165) "더 깨우치다 vs 덜 깨우치다 이 구분 자체가 상대성을 거부함" 이건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지 왜 거부함이냐? 그리고 니가 하는 말이 횡설수설이라 질문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
@유전 됐으니까 그냥 잠이나 쳐자라
@ㅇㅇ(221.165) 설레발 치더니 정확히 질문 하라고 하니까 꼬리내리네.. ㅄ
@유전 너 철학에서 말하는 상대성이 뭔지나 아냐?
@유전 뭔 ㅅㅂ 기본도 안돼 있는 새끼가 주둥아리만 살아서 나불대노
@유전 내가 보기엔 너도 상대주의자가 아니라고 근데 왜 ㅄ같이 반박하고 자빠짐
@ㅇㅇ(221.165) 야 ㅄ아. 내가 수 많은 철학 게시판과 철학 카톡방에서 절대계 상대계에 대해 수 없이 이야기 했어도 니 같은 ㄱㅅㄹ는 처음 듣는다 절대성 상대성이 말 그대로지 무슨 니만이 고집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라는 거냐? ㅁㅊㅅㄲ네
@ㅇㅇ(221.165) 니가 지금 처음에 절대적 진리에 대해서 말한 거잖아. 그에 비해 상대적 하위 진리에 대한 것이고. 이거 말고 뭐?
이 댓글은 게시물 작성자가 삭제하였습니다.
니가 정확히 알고 싶은게 뭔지 다시 간단 정확하게 말해봐라. 기다려 주지.
이 글의 제목 "불교의 최종 결론은 바르게 분별하는 것임. 무분별지는 힌두교" 내가 지금 불경에 나와 있는대로 바르게 분별하여 행하고 있는 것인데, ㅄ들에게는 욕을 하라고 나와 있다.
ㅇㅇ(59.31)불교는 절대적 진리 (열반, nirvana)에 도달 할수 있다고 믿는 사상임상대주의 같은 허접한 철학이 아님04.17 20:21:21-유전그건 어리석은 니 관념이고 절대적 존재에게 있어 미생물(에 해당되는)이라도 하나, 아담과 같이 창조하면 이미 상대적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고 그 절대적 존재도 그 상위의 존재에게는 상대적 미생물에 불과하다.04.17 20:31:27
어제 위 두 개의 댓글이 절대와 상대 논쟁의 처음 시작된 부분이다. 불교 자체는 미숙한 중생이 깨달음을 얻더 부처의 경지에 드는 것으로, 어떤 세계의 처음 시작에 해당되는 절대적세계관이나 절대적존재의 창조를 설법한 적이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헤아릴 수 없는 과거세 부터 중생으로 시작하여 깨달음을 증득하여 부처가 된 것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은 본인 외에, 이미 다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가 어디에 어떤 부처님으로 또 어디에 어떤 부처님으로 등등 그 각각의 불국토 세계의 이름과 해당 부처 고유의 이름을 언급하여 설법해 놓았다.
따라서 지구의 인간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다고 해도 절대적 진리가 아닌 모든 다른 부처와의 상대적 진리 세계관에 머물게 된다. 이것은 최초의 부처라 여겨지고 있는 화엄경의 비로자나불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 가지 더 일반인들은 열반을 하면 윤회가 끊어지면서 어떤 절대적 세계에 있거나 다시는 인간과 교류를 하지 않는다고 착각을 대부분 하는데 강제적 윤회가 없을 뿐이지, 화신이나 분신을 통하여 교류를 하는데 이것을 "일대사인연"이라고 한다. 어제 심연님이 중간에 올렸던 "금강삼매경" 구절도 그러한 맥락이며, "불가지론" 또한 창조에 대해 말할 수 없음을 뜻한다.
힌두교의 창조주로 여겨지는 브라만이 세계를 창조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브라만 창조신도 중생이라고 (장아함경 중 세기경) 12) 세본연품(世本緣品)에 매우 자세하게 설법되어 있다. 철학갤에서 '엘로힘'이라는 필자가 마치 자신이 힌두교 브라만이라도 된다는 듯이 수 많은 글을 올리고 있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에 불과하다.
(위키백과 "불가지론")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은 몇몇 명제(대부분 신의 존재에 대한 신학적 명제)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다고 보는 철학적 관점, 또는 사물의 본질은 인간에게 있어서 인식 불가능하다는 철학적 관점이다.[1] 이 관점은 철학적 의심이 바탕이 되어 성립되었다. 절대적 진실은 부정확하다는 관점을 취한다. 불가지론의 원래의 의미는 절대적이며 완벽한 진실이 존재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는 교조주의(敎條主義)의 반대 개념이다.
불가지론자들 중 사물의 본질은 인간에게 있어서 인식 불가능하다는 철학적 입장에 있는 이들은 인간이 감각을 통해서 인식하는 것은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본질의 거짓 모습인 현상에 불과하다고 본다.[1] 이 경우 본질적 실재는 완전히 불가지(不可知)라는 데이비드 흄의 설과, 그것은 신앙의 영역에 관한 문제라 하여 남겨 놓는 칸트의 설도 있다. 감각이나 표상은 본질적 실재가 자기를 인간에게 제시하기 위한 상형문자(象形文字), 혹은 기호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프레하노프 등의 상형문자설도 불가지론의 일종이다.
국어사전 일대사 인연 (一大事因緣)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부처가 인연을 맺어 세상에 나타나서 교화하는 일.
(장아함경 중 세기경) 12) 세본연품(世本緣品)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화재(火災)가 지나가고 이 세상 천지가 다시 성립되려고 할 때 다른 어떤 중생이 복이 다하고 행이 다하고 목숨이 다해 광음천에서 목숨을 마치고 공범처(空梵處)에 태어난다. 그는 그 곳에 대해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이 생겨 그곳을 사랑하고 좋아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중생들도 함께 그 곳에 태어났으면 하고 바란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자 다시 다른 중생들도 복과 행과 목숨이 다해 광음천에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공범처에 태어난다. 그 때 먼 저 태어난 범천은 곧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범왕이요 대범천왕이다. 나를 만든 자는 없다. 나는 저절로 있게 되었고 이어 받은 것도 없다. 1천 세계에 있어 가장 자재롭고 모든 이치를 잘 알며 부유하고 풍족하며 능히 만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나는 곧 일체 중생의 부모이다.' 그 뒤에 온 모든 범천의 신들도 또 스스로 생각한다. '저 먼저 온 범천이 곧 범왕이요 대범천왕이다. 그는 저절로 있게 되었고 그를 만든 자는 없다. 1천 세계에 있어 가장 높고 제일가는 이로서 이어 받은 것이 없다. 그는 모든 이치를 잘 알고 부유하고 풍족하며 능히 만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는 중생의 부모요 나는 그로 인해 생겨나게 되었다.'
저 범천왕은 얼굴 모습이 항상 동자(童子)와 같다. 그래서 범왕의 이름을 동자라 한다. 혹 이 세간이 도로 성립되었을 때 세간의 중생들은 광음천에 나는 자가 많았다. 그들은 저절로 화생(化生)하여 기쁨[歡喜]으로 음식을 삼았다. 몸에서 나오는 광명이 제 자신을 비추고 신족(神足)으로 허공을 날며 안락하고 걸림이 없어 수명은 아주 길었다. 그 뒤에 이 세간은 변하여 큰 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 때 이 천하는 아주 깜깜해서 해ㆍ달ㆍ별과 밤낮이 없었고 또 세월과 4계절도 없었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