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괴롭히는 생각이 있다면 하루정도 그대로 그 사고가 올라올때까지 기다려라
그 사고에 저항하지말고 그렇다고 해서 그 사고에 함몰되지도 말아야 한다.
내가 거부하는것은 거부하는 생각을 만들고 또 다시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되어 지속적으로 그 사고에 함몰당하게 된다.
반대로 좋다고 그 사고에 빠져서도 곤란하다. 긍정을 가하는 순간 또다시 그 사고에 함몰되어 버린다.
거부하는것도 긍정하는것도 결국 그 사고로 인한 매트릭스에 갇히게 된다.
그대로 대기하다가 자신을 괴롭히는 사고가 올라온다면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하고 그대로 그 사고에 모든것을 맡기고 사고가 시키는대로 아무생각없이 하면 결국 그 사고는 금방 힘을 잃게 된다. 이때 너 자신은 사고를 관찰하는 관찰자가 되며 모든건 그저 흐르는대로 흘러가도록 놓아주면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다는걸 알수있다.
이게 명상의 기본자세인데 지금의 불교는 “성스러운 구함” 같은걸 외치며 매일같이 자기 소원이나 비는게 99.9% 이상의 명상이다. 진짜 명상은 구하지 않는법을 아는것이고 모든 잡생각은 그대로 흘려보내는게 참된 명상이다. 명상에 대해 내가 글을 적지 않았던건 계속해서 외부적인 즉, 눈에 보이는것만 집착해서 엄두가 안났다.
생사여부가 갈린 문제라고 한들 결국 그것은 사고였고 그것에 빠져들거나 저항하기에 고통스러울뿐이다.
인간의 수준이 한꺼풀 벗겨질때마다 극심한 생활고, 병 등에 시달리며 결국 외부 어디에서 기댈곳이 없어질때야 비로소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게 되어 조금씩 성장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죽음과 가까워 지는것이고 죽음과 가까워졌을때 비로소 세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된다. 살기위해서 욕심을 부리는거고 이 욕심으로 수 많은 좌절과 박탈감으로 고통받는것이다.
네가 해야할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무엇이 되는지 바라보는게 삶이다.
고요해져라. 그리고 네가 신임을 알라.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저 고요해지라고 자신에게 명령해라 아무것도 저항하거나 빠져들 필요가 없다. 그저 지켜만 보고 바라만 보는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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