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는 절대 공존할 수 없는 영역처럼 보인다. 태생적으로 한없이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이미 과학과 종교 사이의 논쟁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수없이 벌어져 왔고, 양측의 토론은 항상 도돌이표처럼 제자리를 맴돌다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과학자 레너드 믈로디노프와 영성철학자 디팩 초프라가 중량감 있는 대결을 펼친다.
두 사람은 우주의 탄생, 생명의 기원 등 인류의 가장 근원적인 물음들을 둘러싸고 묵직하고 치열한 논리 대결을 이어 간다.
명확히 말하자면 '과학 대 종교'라기보다는 '과학 대 영성'의 논쟁이다.
과학과 영성, 양측이 기초적인 물리학적 진실들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각 진영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두 사람은 우주, 생명, 마음과 뇌, 신이라는 네 가지 주제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인다.
각 주제 아래에는 다섯 가지 정도의 세부 논쟁거리를 둬 다양한 층위에서 심도 깊은 논쟁을 주고받을 수 있게 했다.
물리학자 레너드는 세계가 빅뱅 이후 자연선택을 통해 형성됐고, 마음은 뇌 작용에 의한 것이며, 철저히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우주와 생명을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면 영성철학자 디팩은 우주를 창조한 존재가 분명히 있고, 생명은 모든 물리적 과정 너머의 초월적 영역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레너드는 예상대로 철저한 과학적 논증을 기반으로 우주와 생명 등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
의외인 것은 디팩의 입장이다. 먼저 그는 기성 조직종교가 부처, 예수, 노자 같은 영적 스승들이 전해준 깨우침과
초월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자신이 대변하는 '영성'은 과학 못지않게 이성적 사고로 만물을 바라본다고 말한다.
합리적 이성을 외면하는 조직종교들을 꼬집으며 보다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자세에서 과학 진영과 논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시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신은 착각일까' 등의 주제를 거쳐 가는 두 저자의 논쟁은 얼핏 상호 비방으로도 비치지만,
다양한 논쟁거리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상세히 알아 가며 부분적으로나마 같은 지점을 바라보는 모습을 속속 보여준다.
서로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두 세계관이지만, 저자들은 논쟁이 끝나는 지점까지 자신의 세계관을 차근차근 설명해낸다.
과학과 영성, 어느 쪽을 선택하든 독자들은 지적 만족감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 세계관의 전쟁
디팩 초프라, 레너드 믈로디노프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447쪽
사탄도 열심히 사는구나 때에 맞춰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