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는 시대와 인물에 따라 다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이 둘은 때로는 다정한 부부처럼 서로에게 좋은 반려자가 되어 주었으며, 때로는 칼부림 끝에 갈라선 원수처럼

서로를 파괴하려고 애써 왔다. 그리고 가끔 싸움이 지겨워지면, 서로 간에 등을 돌린 채 딴 살림을 차리곤 하였다.



현대에 이르러 과학이 자신의 우군(友軍)으로 삼은 것은 일반적으로 기독교가 아니라 동양 종교다.


그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프리쵸프 카프라(Fritjof Capra)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오래 동안 소립자(素粒子)를 연구한 물리학 교수였지만,

물리학을 동양 사상과 비교하는 강연과 논문을 많이 발표하였던 물리학자이다.



특히 그가 저술한 "The Tao of Physics"(현대 물리학과 동양 사상, 1979, 범양사출판부)과

"The Turning Point"(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범양사출판부)이라는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며,

구미(歐美)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과학 운동, 새로운 생활 운동, 녹색 운동의 이념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앞의 책은 현대 물리학에서 일어난 새로운 자연관을 상세히 서술하고, 이런 세계관이 동양의 종교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밝혀 내었다. 

즉 물질 세계가 극미(極微)로부터 극대(極大)에 이르기까지 부단한 생성과 소멸의 연속이며,

세계의 각 부분들이 역동적인 상호 의존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밝혀 낸 현대 물리학의 통일적, 유기체적 자연관은

동양적 지혜와 본질적으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뒤의 책은 앞의 책에서 주장한 이론을 근거로 삼아서 현대 문명의 위기를 진단하고, 사조(思潮)와 문명의 전환을 바라본다.

즉 기계론적-분석적-사변적-물질적-개인적-남성적 특징을 갖는 문화는 이제 쇠망해 가고,

그 대신에 종합적-직관적-정신적-여성적 특징을 갖는 문화가 도래하리라는 것이다.


모든 우주적 현상이 상호 연결되어 있고 상호 의존하고 있다는 시스템(System)적 이해는 근본적으로 영적이며,

신비주의적 전통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과학과 신학의 패러다임(Paradigm: 사고 모형)의 전환(轉換)은

5가지의 공통된 특징을 지닌다.



1. 부분에서 전체로


학문 전반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첫 번째 특성은 부분에서 전체로의 전환이다.

한 부분을 묘사하면서 이를 다른 부분으로부터 떼어 내는 순간, 거기서 벌써 오류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심층생태론은 인간을 자연에서 떼어 낼 수 없는 하나의 부분으로, 얼크러진 생명의 그물을 함께 잣는 독특한 실의 가닥으로 간주한다.



2. 구조에서 과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구조'라는 것은 온갖 현상이 빚어내는 밑바탕인 '과정'이 능동적으로 활동을 펼치며 드러내는 규칙일 뿐이다.

생명체는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고 환경에 적응하고 무언가를 터득하면서 새롭게 진화해 간다.


이 모든 단계마다 창조성이 발휘된다. 생명체와 환경(환경도 생명이다)은 서로 정신적 반응을 하면서 함께 진화한다.

그러므로 진화는 어떤 식으로든지 목적을 포함할 수 밖에 없다.




3. 객관적 학문에서 인식론적 학문으로


우리가 무엇을 볼 때, 그 결과는 어떤 관찰 방법을 쓰느냐에 다라서 달라진다. 무엇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주관성은

세상 만물이 서로 얽히고 설킨 관계에 깊숙이 개입된다.

지식은 현실과의 끊임없는 대화의 일종이다. 인간의 의식(意識)도 본질적으로는 사회적 현상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은 나무를 보면서 몇 가지 구조를 따질 것이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은

나무를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는 현상(광합성)으로 본다.



4. 건물에서 그물로


이제 지식의 체계는 벽돌이 차곡차곡 쌓여진 건물 구조라기보다는 서로가 얽히고 설켜 있는 그물 구조와 같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도 세상 저 위에 버티고 앉아서 우리를 굽어보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서로 만나고 통하기 위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 세상은 살아 있는 생명의 존재, 살아 있는 시스템이다.



5. 절대치에서 근사치로


아무리 정밀한 측정이나 평가라고 할지라도 결국은 근사치 밖에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과학도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모든 부분들이 다른 부분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어느 부분도 딱 잘라서 명확하게 그 특성을 설명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세상에 홀로 고립되거나 완전히 독립된 사물은 없다. 그렇게 느끼는 감각은 망상일 뿐이다.

진정한 신비는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 있다.


만물의 상호 연관성, 지속가능한 발전,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책은 영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구한다.




- 신과학과 영성의 시대 -

(프리초프 카프라, D.슈타인들-라스트, T.매터스 지음, 범양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