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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란 개념은 각각의 나라마다의 신앙에 따라 그 컨셉이 다르지만, 공통적인 부분은 우주를 존재케 한 창조주적인 개념이 있다는 것이죠.


또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이런식의 자신의 근원에 대한 접근은 언어적인 능력을 갖출 경우 누구나가 해볼 수 있는 사유였기


때문에 무한히 계속되는 원인이 있다고 할 경우 결국 최초의 원인은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만약 우주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 절대의 무의 상태를 가정할 수 있다고 할 경우 최초의 원인이란게 가능해지죠.


원인의 무한 회귀가 최초의 원인을 가정함으로써 사라지게 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제 1원인론처럼 그 최초의 원인에


신적 개념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절대의 무의 상태에서 유란 것이 생길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의 답은 불가능하다고 해야하겠지만


그래서 초월적인 개념을 끌어쓰게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절대의 무를 가정하면 신마저도 새롭게 존재하게 된 것이 되버립니다.


즉, '신도 시작이 있었다?' 가 됩니다. 물론 원인없이 새롭게 존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차별성과 특별성을 가지게 되죠..


결국 당신이 만약 절대의 무의 상태에서 지금의 우주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유신론자에 가깝습니다.



그럼 절대의 무와 반대의 개념인 절대의 유란 개념은 어떤 개념일까요? 사실은 제가 느끼기엔 절대의 유가 더욱 신적인 개념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절대의 유를 만약 시작이 없이 존재하고 있던 어떤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말이죠. 그러니까 시작이 없이 존재하던


어떤 것에 의해 우주가 존재의 시작을 가지게 되었다거나(전자), 또는 우주가 바로 그런 절대적 유라고 할 경우 우주의 시작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죠(후자). 전자의 경우는 절대의 무와 마찬가지로 자체로 초월적이지만, 후자의 경우 우주를 신으로 보는 범신론적인


개념이며 범신론의 경우 무신론적인 개념으로 취급되는데, 제 생각에 범신론은 종교성 또는 인격성이 없는 신적 개념입니다.


즉, 중력 법칙에 기도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범신론을 믿을 경우가 그나마 무신론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절대의 유나 절대의 무와 같은 개념이 불가능하다고 가정할 경우 현상을 설명하는데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유와 무의 동시성입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유와 무의 동시성이란 것도 자체로 이해하기 힘들죠.


절대적 무란 개념과 절대적 유란 개념보다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물론 인간은 사실 세가지 모두 초월적이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절대의 유나 절대의 무, 유와 무의 동시성 모두 이해할 수 없으니


따라서 사실상 모두 불가지론적으로 받아들여야 옳은 결론입니다. 쉽게 말해서 공리를 어떤 것으로 해도 다 불능같다는 것이죠.


 유와 무의 동시성(상대성)을 통해서 그 세가지의 경우가 왜 불가지론적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유나 무의 개념은 서로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라 독립적인 절대의 무나 절대의 유는 불능이 되며, 유와 무의 동시성도 자체적 모순이라


불능이므로 결국 셋 다 불능으로 볼 경우 스스로를 불가지론자로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위의 설명과는 별개로 논리적으로는 유에서는 유만 나올 수 있고, 무에서는 무만 나올 수 있고,


유와 무의 동시성에서는 유와 무의 동시성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인 결론입니다.


물론 이러한 설명도 어렵긴 마찬가지죠. 저는 사실 무신론자의 입장이 철학적으로 가장 무지한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월적인 가정을 끌어다 쓰지 않고 우주를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따라서 그 초월적 가정에서 종교적인 색체를 얼마나


제거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보는 겁니다.



아래는 질량의 상대성을 쉽게 이해해보는 사고실험입니다.


먼저 질량이 100kg인 물체와 질량이 1000kg인 물체가 동시에 불연속으로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죠.


그 둘은 동시에 존재했다가 존재하지 않았다가 존재했다가 존재하지 않았다가가 반복된다는 겁니다.


에너지 보존법칙이 성립하려면 질량이 가진 에너지가 질량이 아닌 상태로 바뀌었다가 다시 질량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 경우 질량이 공간화가 된다고 했었죠.


그럼 그 경우 질량이 서로 다른 물체가 '동시'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100kg의 질량의 에너지가 만든 공간이 질량화가 되는 것보다 1000kg의 질량의 에너지가 만든 공간이 질량화가 되는 것이 더 빨라야 합니다.


이렇게 아주 간단하게 상대론에서 설명하는 중력가속도가 설명되죠.


즉, 서로 다른 질량을 가진 물체가 불연속으로 동시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질량이 더 큰쪽의 공간의 질량화가 더 빨라야 하고


그것이 중력가속도의 차이로 연결된다는 겁니다. 이런 간단한 사고 실험조차도 못하고 제 설명이 틀렸다고 하는 것들은


과연 사고력을 가진 것들인가 아니면 그냥 돌덩이인가 혼란스러울 정도입니다. 똑똑한 척은 다하면서 말이죠.


그게 이곳 물갤의 전공자들의 수준이란게 참 불쌍하고 말이죠. 적극적으로 제 설명을 비난만하는 것이 아닌 침묵하는 부류도 마찬가지고 말이죠.


다시 말하지만 제 주장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 질량이 상대적이다이고 그게 틀렸다고 하려면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 질량이 상대적이 아닌 절대적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보면 되는 겁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고력만 있다면 제 설명이 옳다는 것을 쉽게 알수있다고 누누히 이야기 했지만


결국 제 설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변화가 불연속이라는 그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인것이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면 과학을 하지 말길 바랍니다. 저도 사실 제 이론을 감정적으로는 굉장히 싫어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증명이 끝났기 때문에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고 있을 뿐입니다.


어떤 이론이던 그 이론의 공리하에서는 현상과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옳습니다.


수학이 현상과 상관없이 공리안에서 옳은 것 처럼 말이죠. 그런데 물리학이란 현상과 일치하는 이론이 옳은 이론인 것이고 말이죠.



빛이 절대속도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기준이 달라져도 항상 같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런 불변(절대성)을 가진 것이 공리에 새롭게 추가될수록 '(에너지의) 대칭성'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기존에 불변인줄 알았던 것 중 하나가 가변이 되어야 합니다.


즉, 상대속도를 가질줄 알았던 빛이 절대속도라면 기존에 불변이라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가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게 상대론에서의 길이의 (수축)가변입니다. 그런데 저는 변화가 불연속이라고 했고 그로인해 시간이 불변이 되면


마찬가지로 기존에 기준이 바뀌어도 불변이라 여겼던 것중 하나가 가변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질량의 상대성이죠. 그리고 이를 시각적으로 자명하게 보여주는 영상이 있습니다.




위의 영상처럼 매순간 모든 것이 정지해있다고 가정된 상황에서 포커스(기준)의 변화에 따라 물체의 크기는 크게보이거나


작게보이게 되는데 결국 상호작용이 임의의 기준과의 거리에 따라 상대적이게 될 경우 그 상호작용의 상대성으로 인한 어떤 현상이


발생해야합니다. 그게 바로 질량의 상대성이란 것이죠. 즉, 기준에 따라 질량이 다르다는 것이 질량의 상대성의 의미란 것이죠.


즉, 초등학생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제 이론입니다. 또 뉴턴역학과 상대론도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했고 말이죠.


그럼 이곳의 사이비는 중학교 수준의 대우도 모르는 걸 보면 초등학교 수준도 안되는 인간들이라는 걸까요?



https://drive.google.com/file/d/1Ns4wdYS-DHVyPmwSW54km3DHw6W43_04/view?usp=sharing

완전론요약&현대자연철학&푸앵카레추측증명.pdf

완전론요약&현대자연철학&푸앵카레추측증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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