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했던 나의 생애들"에서 발췌
오케이, 또 다시 옆길로 샜습니다. 내 말의 요지는 예수를 알아보았던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던 직관력을 어느 정도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드로가 단지 외적인 기적(奇蹟)에만 반응했던 것은 아니며, 비록 다른 제자들처럼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도 어떤 직관적인 자극(prompting)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마태복음 16장의 다음의 문구들을 살펴봅시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중요한 말은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는 구절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직관에 대한 참조 틀입니다. “혈육(Flesh and blood)”은 분석적이고, 외적인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며, “아버지(Father)”는 아이앰 현존(I AM Presence)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정말로 말하고 있었던 것은 베드로가 어느 정도의 직관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며, 이러한 이유로, 베드로가 예수를 살아 있는 그리스도라고 인식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다른 형태를 살펴봅시다.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또다시, 예수는 특별히 베드로에 대해, 혹은 베드로에게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직관적인 재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석이 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직관적인 재능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원성이라는 상반되고, 상대적인 주장들이 난무하는 혼란 속에서도 서 있을 수 있는 튼튼한 공간을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이러한 직관력이기 때문입니다. 우화를 통해, 모래 위에(이원성 의식) 집을 짓는 것과 단단한 바위 위에(그리스도 의식) 집을 짓는 것에 대해, 예수가 이야기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직관력입니다.
예수가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던 진정한 생각은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직관력을 이용하여, 상승한 영역(상승 마스터로서, 예수 자신을 통해)으로부터 계속해서 지시(지도)를 받고 있는 한, 지옥의 문(추락한 존재들과 이원성 의식을 의미함)이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운동을(예수는 “교회”라는 단어를 결코 사용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추락한 존재들이 고의적으로 추가한 것임) 결코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는 추종자들이 직관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추락한 의식에 의해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운동이 빠르게 왜곡될 거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왜곡을 부추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이 베드로와 동일한 의식수준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예수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예수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직관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지속되며, 결코 끝나지 않는 그리스도임에 이르는 길에서 예수를 끝까지 따를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직관력이 충분히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대변했던 의식이 지니고 있던 문제점은 마태복음 16장에 다음의 구절을 살펴봄으로써,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기이한 것은 가톨릭교회가 베드로의 토대 위에 설립되었으며, 따라서 예수를 대변한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항상 이전의 문구들을 언급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예수가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불렀던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더 깊은 진실은 가톨릭교회가 베드로의 의식에 기초하고 있지만, 진정한 문제는 17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교회가 이러한 의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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