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자유에 이르는 길 33"에서 발췌


이 책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책에서 전하는 가르침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인류의 영적인 교사들이 영적인 자유에 이르는 길에 대해 진리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선물입니다. 물론, 자신들도 이러한 진리를 갖고 있으며, 이미 교리로 정해놓았다고 주장하는 종교 및 영적인 조직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그와 같은 여러 조직들은 대개 경직된 교리와 의식(儀式)을 통해, 사람들의 영적인 자유를 구속하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종교가 사람들에게 더 큰 자유를 가져다주기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의 영적인 자유를 종종 줄어들게 만드는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 책은 그 원인을 곰곰이 되짚어보려는 사람들을 위해 쓰인 책입니다. 이 행성에서 종교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작용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세력과 종교가 지닌 당초의 목적을 종종 왜곡시키는 세력들도 이 책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책이 쓰인 목적은 인간이 -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 창조될 당시의 목적대로, 자유롭게 되어, 영적인 존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이 말이 어떠한 가치판단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또한 읽을 준비가 된 사람이라고 해서, 읽을 준비가 안 된 사람들보다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류의 영적인 교사들인 우리는 가치판단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 인간에 대한 평가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며, 그것은 우리가 이원성의 상태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이원성으로 인해, 모든 가치판단과 앞으로 설명하게 될 어떠한 상황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원성으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에, 많은 종교운동들 가운데 일반화되어 있는 척하는 게임(the game of pretending)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느끼고 싶어 하는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영성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내 말은 실제로 어느 정도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람들도 필요한 몇 가지 조치만 취한다면,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최대의 혜택을 얻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모든 진리의 구도자들이 직면하게 되는 근본적인 딜레마

인류를 자세히 살펴보면, 삶의 영적인 측면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물질 우주를 벗어나서, 영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반면, 나머지 사람들도 삶의 영적인 측면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며, 물질세계와 물질세계의 여러 문제들 혹은 즐거움에 온통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관점에 기초해서, 인류의 영적인 교사들이 영성에 대해 외적으로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느냐에 따라, 사람들을 평가한다고 많은 사람들은 추론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외관상 가장 종교적인 사람들을 - 특히 그들이 믿는 종교의 신도들을 -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 책이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사람들을 겨냥한 책이라고 드러내놓고 추론할 것입니다.


사실, 영적인 교사는 겉모습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겉으로 보이는 모든 모습을 벗어나, 우리는 개인의 존재 전체가 지닌 내적인 상황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사람들이 외적인 마음으로 무엇을 믿고, 무엇을 안 믿고 하는 데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는 각 개인이 현재 지니고 있는 믿음과 신념 체계를 벗어난 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 보려고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교사이며, 따라서 우리의 사명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반드시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는, 마땅히 현재 자신들이 지닌 관념의 틀을 뛰어넘는 것들을 보려고 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스스로 종교적 혹은 영적인 사람이라고 여기는 모든 사람들은 영적인 실체에 대해 고차원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있어야 하며, 따라서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불행히도 상황이 항상 이렇게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는, 마땅히 삶의 영적인 측면에 대해, 여러분이 현재의 신념 체계, 즉 현재의 정신적인 상자에 따라 정의된 것보다 알아야 할 것이 더 많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대해 항상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있어야 합니다. 이미 영적인 혹은 종교적인 신념 체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닫아놓고, 자신들의 신념 체계에 의해서 정의된 정신적인 상자에서 벗어나는 지식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솔직히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많은 종교인들이 자신들이 믿고 있는 종교의 공식적인 교리와 모순되거나, 교리에서 벗어나는 개념들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개념들을 깊이 있게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며, 만약 자신들의 신념 체계, 즉 유일한 참된 종교라고 여기는“안전한(safe)" 틀에서 벗어난 어떤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자신들에게 여러 가지 재앙들이 일어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불행한 사실은 종교로 인해, 사람들이 종종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삶에 대한 더 높은 이해를 수용하려고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인류를 끌어올려, 더 높은 이해를 성취할 수 있게 하려는 영적 교사들과도 접촉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직면해 있는 근본적인 딜레마를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삶의 영적인 측면에 대해 이미 어떠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그러한 지식들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외적인 종교나 스승 혹은 가르침들을 통해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지식들은 어떠한 신념 체계, 혹은 정신적인 상자를 만들어내게 되며, 이로 인해 여러분은 어떠한 안전감(a sense of security), 심지어 정체감(a sense of who you are)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지금까지 여러분이 답하지 못했던 영적인 주제들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여러분은 마땅히 자기 스스로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여겨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면에서 진리에 대한 추구는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반드시 내면적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할 것이 더 많이 존재하며, 고차원적인 이해도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여러분의 정신 속에 들어 있는 두 개의 세력들 간의 전투이며, 줄다리기입니다.


+ 여러분에게는 이미 기존에 알고 있는 것에 집착하게 만드는 어떠한 힘이 존재합니다. 이 힘은 안전감, 즉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느낌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으며, 또한 어떠한 외적인 신념 체계를 따름으로써, 구원이 보장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믿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이 힘을 에고라 부를 것이며, 나중에 이 책에서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에고의 소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닌 현재의 신념 체계를 확인하기 위해, 먼저 영성 관련 서적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들은 현재의 신념 체계와 모순되거나, 현재의 신념 체계에서 벗어난 문구를 만나게 되면, 그 책을 잘못된 책으로 판단하게 될 것이며, 또한 하나의 문구를 인용해서 책 전체를 부정하는 구실로 삼고자 할 것입니다. 분명히 말해, 이러한 사람들은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며, 이 책은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쓰인 것도 아닙니다.


+ 한편, 이 세상의 말과 이미지로 표현된 지식에 결코 집착하지 않는 어떠한 힘이 존재합니다. 이 힘은 언제나 여러분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현재의 정신적인 상자 너머를 보게 하며, 여러분의 이해를 증진시키려고 합니다. 이 힘은 여러분의 높은 자아 (High Self), 여러분의 영적 자아의 소리이며, 앞으로 여기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닌 정신적인 상자를 언제나 확장시키려고 하며, 심지어 궁극적인 면에서, 일부의 사람들은 모든 인간 상자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이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결정짓는 요소는 이러한 두 개의 힘 간의 균형이라고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현재의 믿음들에 어느 정도 집착하고 있는지 그리고 현재의 정신적인 상자에서 벗어나, 그 너머의 것을 어느 정도 보려고 하는지?


이것이 모든 인간 진전을 이끌어가는 근본적인 실체가 어떤 것인지를 인식하는데,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제약과 고통 속에 갇혀 있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무지(無知)입니다. 인간 사회가 석기시대를 벗어나, 진보를 이룩하게 된 것도 현대인들이 선사시대의 사람들보다 삶의 모든 측면들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진보를 이루기 위한 열쇠는 삶의 영적인 측면에 대해 이해의 폭을 -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갖고 명철을 얻을 지니라 (잠언 4:7) - 마땅히 넓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해의 폭을 넓힐 수가 있을까요? 어디에서 더 높은 이해를 구할 수 있을까요?

오로지 현재의 믿음, 즉 현재의 정신적인 상자를 뛰어넘어 보고자 할 때에만, 더 높은 이해를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정신적인 상자 내에서 더 높은 이해를 구할 수 있었다면, 벌써 여러분은 그러한 이해를 얻었을 것이며, 의문도 해소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오로지 정신적인 상자 너머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만이 더 높은 이해의 단계로 올라서게 된다는 것은 기본적인 사실입니다.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현재의 정신적인 상자 너머를 보고자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 마구잡이식이 아니라, 분별력을 지니고 -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