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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한 구절만으로는 그 완전한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건은 서로 연관된 두 개 이상의 기록이 함께 놓일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또렷해집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중요한 내용은 두 번 이상 반복되어 기록되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더욱 견고히 하십니다.


흥미로운 점은, 반복된 기록들이 서로 똑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분은 조금 다르고, 어떤 부분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서술됩니다. 이 차이를 두고 오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에 달린 죄수들에 대한 기록이 그렇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두 죄수가 모두 예수님을 욕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 (마 27:44)

"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님을 욕하더라 " (막 15:32)


그러나 누가복음에는 한 죄수는 비방했지만, 다른 한 죄수는 예수님을 꾸짖는 자를 책망하며 구원을 구했다고 기록합니다.


"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님이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 (눅 23"39-42)


그렇다면 두 죄수가 모두 끝까지 욕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한 사람만 그러했을까요?


이 기록은 서로 모순이라기보다 관점과 시간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두 사람 모두 군중의 분위기에 휩쓸려 비난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동안 한 사람의 마음이 변화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멀리서 본 사람에게는 둘 다 욕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가까이에서 그들의 말을 들은 사람은 그 변화의 순간을 정확히 기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좌우에 달린 두 죄수는 구원받는 자와 구원받지 못하는 자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죽을때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은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부분적인 차이가 오히려 사건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합니다. 단편만 붙잡고 오류라고 단정하기보다, 여러 기록을 종합해 보면 오해에서 비롯된 주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무엇이 왜곡된 해석이며 무엇이 진리에 가까운지 분별하게 됩니다.


창세기 32장에는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를 문자 그대로만 읽으면 하나님과 육체적으로 씨름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호세아 12장 4절은 그 대상이 천사였음을 밝혀 줍니다. 한 기록만 보면 오해할 수 있지만, 다른 말씀이 그 의미를 보완해 주는 것입니다.


"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 (신 19:15)


중요한 판단을 할 때 어리석은 사람은 한 사람의 말만 듣고 결론을 내리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여러 증언을 비교하고 신중히 판단합니다. 성경 역시 그러한 원리 안에서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말씀을 왜곡시켜 거짓과 혼란을 퍼뜨릴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사건들을 반복하여 기록하게 하시고, 서로 다른 관점에서 증언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혼란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쉽게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며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읽는 사람은, 겉으로는 차이처럼 보이는 말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일관된 뜻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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