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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씀은 흔히 복수를 정당화할 때 가장 먼저 인용되곤 합니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면서도 “성경에도 기록된 원칙이 아니냐”며 자신의 증오를 정당한 심판으로 포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복수의 근거가 아닌, 전혀 다른 차원으로 해석해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며 율법의 문자를 넘어선 새로운 깨달음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마태복음 5:38-39,44)
구약의 전쟁이 때로 물리적인 정복으로 나타났다면, 이제 우리는 그 전쟁이 상징하던 바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눈앞의 사람이 아닌 그 배후에 있는 악의 세력입니다.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
(에베소서 6:12)
만약 누군가 복수를 다짐하며 증오에 찬 목소리로 상대를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법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귀의 도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에 대해 반드시 그 대가를 물으시는 공평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직접 복수의 칼을 휘두르는 것은 하나님의 재판권을 가로채는 오만일 뿐입니다.
"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 (로마서 12:19)
하나님의 법은 엄중합니다. “생명에는 생명”이라는 원칙 또한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됩니다.
" 생명은 생명으로 갚을찌니라 " (출애굽기 21:23)
그리스도께서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며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것도, 아담의 범죄로 잃어버린 인류의 생명을 되찾기 위해 ‘생명에는 생명’이라는 공의를 몸소 완성하신 사랑의 증거였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씀은 죄에는 반드시 그만큼의 형벌이 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지은 모든 죄에 대한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며 죽음에 이르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회개와 용서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공의로운 심판을 믿는다면, 증오의 굴레에 스스로를 묶어둘 필요가 없습니다. 복수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오직 사랑할 책임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증오로 자기를 버리는 자가 되기보다, 용서로 자신을 지키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건 없이 용서하셨듯, 우리 또한 미움의 칼을 내려놓고 평화의 손을 내밀 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마음속에서 비로소 시작될 것입니다.
"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 (에베소서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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