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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 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 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 (누가복음 18:9-14)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의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늘나라의 소망을 얻게 됩니다.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로마서 3:23)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에베소서 2:8)
하나님께 반역한 이후,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내어 주심으로 다시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교만을 버리지 못한 채 스스로를 높이고, 때로는 자신을 하나님이라 하거나 그리스도라 칭합니다. 이러한 자들을 따르는 길은 결국 멸망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회개의 기회를 주시며, 사람들이 돌이켜 생명의 길로 나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베드로호서 3:9)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들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악한 행실을 버리지 않고 은혜를 거부하는 자들은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를 높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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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스도를 주로영접하십시오 ㅋㅋ 천국 구원
누가복음 제18장 제14절에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하는 부분 예수의 설교는 받아들일 논점이 그게 아닙니다. 누구라도 어떻게라도 자기를 낮추면 즉 예컨대 비관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우울하고 머리에 흙을 뿌리면 높아지겠습니까. 반면에 엘로힘 여호와(=알라=비슈누=창힐)라도 실제 그대로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겠습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해당 부분의 유의미한 차이는 마음가짐입니다. 특히 세태의 횡행하는 기준을 가지고 안심하는지 여호와의 분별하는 기준을 가지고 참회하는지 차이입니다. 예컨대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어찌하여 밭을 판 돈 얼마는 따로 감추어 두었냐고 꾸짖었는데, 그것도 토색이긴 하니까 불량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성령에 전일하게 귀의하지 않고 여러 방면에 다리 걸치려 하는 아나니아의 태도를 베드로는 질책한 겁니다.
예수는 바리사인들을 눈 먼 자들이라고 지적하면서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자기나 세인들이 생각하는 덧붙이는 감안하는 기준을 따르며 안심하지 말고 여호와의 기준을 보고 따르며 안심하라고. 세태의 관념에는 금욕적인 어려운 길의 수행자들로 여겨져도, 여호와의 관념에는 부정확하고 부자연스러운 오개념 횡행시켜 공의 수호 문란케 하며 세태 최고 양심 세력을 오히려 모욕하고 훼방하고 미혹하려는 패악자들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