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영주는 군 장교의 진급 심사에도 참견했는데 나름대로는 자기 기준선에서 불온분자 소탕에 적극적이었는지 해당 장교의 소양보다는 당사자나 가족의 사상 관계를 캐묻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태클 걸렸던 사람이 아이러니하게도 김익렬과 박정희. 김익렬은 4.3 사건 당시 무분별한 경찰의 진압에 회의를 느끼고 빨치산과 일시 휴전을 맺은 탓에 공개 석상에서 면박당하고 끌려나갔으며 결국 1950년대 내내 찬밥 신세였다. 박정희는 형 박상희가 사회주의자라는게 문제가 되어 군에서 쫓겨날 뻔 하다가[8] 김정렬 당시 국방부 장관과 백선엽이 도와주어 가까스로 진급되었다.[9]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혁명재판이 벌어지자 다시 체포되었는데 묘하게도 같은 혐의로 같이 체포된 홍진기+와 유충렬[11]이 사형 선고 후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으로 감형된 것과 달리 곽영주는 그대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결국 곽영주는 최인규, 이정재, 임화수, 신정식과 나란히 1961년 교수형을 당했다. 당연히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과거 곽영주와 박정희의 갈등을 지적하며 곽영주가 박정희의 원한을 사서 사형을 당했다는 말도 나왔으나 이걸 빼더라도 4.19 혁명 당시 경무대 앞 발포 명령, 장충단 집회 방해 사건 은폐 등 사형 당해도 마땅한 사고들이 차고 넘쳤으며, 애초에 시비를 먼저 건 쪽은 곽영주 쪽이었다.
[8] 그 외에도 박정희의 이혼 경력을 문제삼는 등 개인사까지 들춰냈다고 한다.
베리야는 온갖 악행으로 대중, 군부, 당 내부 거의 다수에게 고루 미움을 산 상태였다. 여기에 베리야가 직접 공격할 명분까지 쥐어주니 이때만큼은 흐루쇼프, 몰로토프, 주코프 등 스탈린 사후 1인자의 자리를 노리던 경쟁자들이 모두 합심해 베리야 제거에 나선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베리야의 실책은 정보기관을 이용해 유력 지휘관을 사찰하고, 스탈린에게 고자질하는 등의 짓거리를 하여 군부의 전반적인 원한을 샀다는 점이다. 사실상 2차대전 이후 많은 소련 유력지휘관의 좌천이나 체포에는 그가 맡고 있던 정보기관이 개입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주코프의 "비리" 혐의라는 것도 베리야가 스탈린에게 일러바친 것이라고. 주코프가 직접 나서서 그를 체포한 것이나, 주코프와는 매우 사이가 안 좋았던 코네프조차 이 점에서는 한뜻으로 군사재판에서 베리야에게 사형을 언도했을 정도면 그가 얼마나 군부 인사들에게 원한을 깊이 샀는지 짐작 가능하다. 흐루쇼프는 주코프에게 베리야 체포 임무를 맡기면서 "베리야가 귀관에게 한 짓을 생각해본다면 귀관을 믿을 수 있다고 봅니다."라고 특별히 덧붙일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결국 1953년 6월 26일 각료회의 확대회의로 위장한 정치국 회의에서 흐루쇼프가 갑자기 베리야가 제국주의의 요원이며 전직 영국 간첩이라고 고발하기 시작했다. 경악한 베리야는 흐루쇼프의 손을 붙들고 "니키타, 이게 무슨 짓이오?"라고 울부짖기 시작했지만 말렌코프가 숨어있던 게오르기 주코프와 모스크바 군관구 사령관 키릴 모스칼렌코를 호출하였고, 두 장군이 직접 베리야를 체포했다. 덩치 큰 베리야는 힘이 셌고 무장을 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주코프는 신속하게 베리야의 가방을 빼앗아 테이블 위로 던진 다음에 그의 양손을 붙잡고 "베리야, 너는 체포됐다."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베리야는 무장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며 너무 충격을 받아 하얗게 질려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다가 무력하게 끌려나갔다.#
베리야는 무고한 사람을 많이 죽였고, 테러 활동을 통하여 미제와 서방에 협력하였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14] 감방에 들어간 베리야는 자신을 몇년만 살려둔다면 큰 쓸모가 있을 것이라면서 정치국원들에게 아부하는 편지를 썼지만 흐루쇼프는 베리야의 종이와 연필을 압수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유죄가 확정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되었다. 매국 행위와 서방 스파이 혐의는 날조된 것이었고 대서방 유화책에 대한 지도부의 반발이 반영된 혐의일 것이다.
사형이 선고되자 베리야는 재판장 코네프에게 무릎으로 기면서 제발 살려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간청했고 사형장에 끌려갈 때도 이성을 잃고 통곡하며 목숨을 구걸했다. 죽을 때는 하도 살려달라고 울부짖어서 재갈을 물리고 총살형으로 집행했다고 한다. 결국 처형장까지 가지도 못하고 지하 처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위에서 뒤통수를 쏴 죽였다. 물론 이 자가 그동안 죽인 사람들을 생각하면 할 말 없는 죽음이다.[15] 주코프는 회고록에서 죽을 때도 최악의 겁쟁이처럼 더럽게 죽었다고 베리야에 대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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