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2대 대선 당시 조봉암의 선거 캠프에는 김성주도 참가했는데 좌익과 빨갱이는 사탄이니 모두 죽여야 한다고 외치며 백색테러를 일삼던 반공 단체인 서북청년단의 간부 출신이었다. 평화주의자인 조봉암의 성향을 본다면 전혀 맞지 않는 인물인데 왜 이런 사람을 선거 캠프에 받아주느냐고 조봉암 캠프 내에서도 의문이 많았는데 조봉암 본인이 정략적인 의도로 일부러 김성주의 참가를 허락했을 거라는 분석이 있다. 이승만으로부터 빨갱이라고 하도 공격을 받다보니 그런 정치적 공격에 대한 방패로 삼고자 일부러 반공 단체인 서북청년단 출신 김성주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김성주 개인의 원한도 있었는데 원래 서북청년단 간부인 김성주는 한 때 이승만의 심복이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서북청년단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점차 자신에게 맞서려고 하자 서북청년단을 재빨리 해체시켜 버렸고 이에 김성주는 이승만에게 깊은 원한을 갖게 되었다. 1950년 10월경 6.25 전쟁 때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을 하여 평양을 점령하자 김성주는 재빨리 유엔에 붙어서 유엔의 힘을 등에 업고 평안남도 지사가 되었다. 그 후 이승만이 평양에 보낸 관리들은 모두 김성주가 쫓아냈고 이승만이 평양에 가서 평양 시민들 앞에 연설을 하는 자리에 김성주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이승만이 몹시 분노하였다는 일화도 있다. 헌데 중공군이 쳐들어오면서 김성주는 몸을 피해 남쪽으로 달아났으나 이미 이승만의 미움을 산 터라 처신이 몹시 어려웠는데 마침 이승만의 정적이던 조봉암이 떠오르자 그에게 붙어서 이승만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역사는 개인적 미시사가 가장 중요해. "거대 사건 위주 담론 역사학적 시각도, 불변의 사회변화 원리를 강조하는 사회학적시각도 현실 펙트와는 부합 안되고, 미시적 개인사를 중시하는 문화인류학적 시각이 중요하다."→에릭 홉스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