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해리 S. 포병장교가 되다.
해리는 12년간 농부생활을 한 천진난만한 청년이었다.
그는 농부생활보다는 더욱 괜찮은 보수를 받고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은 마음에 군대에 육군 일반포병으로
입대를 하게되었다. 나의 여친 베스가 나의 멋진 군복을 입은 늠름한 모습을 쳐다볼걸 상상하니 몹시 설레이기만 했다.
처음에 군입대를 지원할때는 여친이 울면서 급구 말렸다.
총들고 전방에나가서 싸우면 바로 죽는거 아니냐고
다른 걸 생각하면 안되겠냐고.
해리는 베스의 말에 힌트를 얻어 수색대 소총수 보다는
약간 후방에도 전투를 치를수 있는 포병을 지원하게 되었다. 물론 전쟁나면 죽는건 매 한가지겠지만 그래도 상식적으로 앞에 나서서 작렬하게 전사하는것 보단 약간 후방에서 포를 쏘는것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베스를 안심시키며 군생활을 임했다.
그는 1905년에 육군 포병 사단 사병 으로 시작했다.
수류탄도 던져보고 대포도 쏘아보고 쥐포도 쏘아보고
육포도 쏘아보고.. 아무튼 포라는 포는 종류별로 다 쏘아서 훈련에 임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얻는다고
어느덧 일년이 지나자 이젠 어떤 폭탄을 사용하면 사거리가 나오고 명중률이 높으며 폭발력이 어느정도인지 포탄 생긴것만 봐도 어림잡아보면 알거같았다.
그의 포격술은 프로토스 질럿이 처들어 왔을때 순식간에 대공모드를 해제하고 가까이서 포를쏴서 상대를 제압할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자 일등병으로 승진하였다.
작대기 한개에서 두개를 달고나와 베스를 만나자
베스는 남친이 한단계씩 승진하고 있는모습이 마냥
뿌듯하기만 하였다.
어느덧 시간이 5년이나 흘러 전역할 시간이 다가왔다.
해리는 포가 떨어지는 소리만 들어도 이게 포탄인지
비비탄인지 실탄인지 원자탄인지 핵폭탄인지 눈으로
보지않고도 척척 맞추는 신급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포사격 점수 100점 만점에 99.9점을 맡게된 해리는
대대장으로 부터 표창장과 장교시험을 보는게 어떤가
하고 추천을 받게된다. 그래서 해리는 장교시험을 치뤘지만 신체검사에 시력이 결과에 좋지 못해서 불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베스는 그런 해리를 괜찮다며 다음에 또 보면 되지하며 위로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1910년 대 동유럽엔 아주 큰변화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 러시아와 오스만은 서로 양대 제국으로
엄청나게 큰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스만은
지는해라 그런지 더이상 러시아제국의 압박에 견디질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동유럽은 프로이센,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같은 슬라브계, 그리스계, 오스트리아계,
훈족계, 여러민족들이 갈기갈기 찢기게 되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그의 기득권세력들은 기득권을 그대로
차지하기위해 혈통계를 계승받으려고 서로 오스만에
대한 전통성을 부여하려 하고 있었다.
이때 세르비아라는 왕국은 오스만에 독립하여 러시아
하고도 대립에 있어서 독립에 성공하게 된다.
사실 비극은 세르비아라는 나라가 다른 나라들을
집어 삼켜들려 함으로서 각국의 나라들은 그들의 위협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특히 세르비아 인들은 슬라브인을
중심으로 오스트리아 헝가리 마저도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헝가리 들 중에 오스트리아는
독일계통중의 게르만족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었다.
독일의 게르만족들은 예전부터 서유럽 영국이나 프랑스
등의 강대국에게 멸시를 받고있던 터였다.
지금으로 치자면 선박이나 자동차를 만드는데 게르만인들한테는 싼값에 부품이나 만들어서 납품하라고 하고
부품을 수입하면 조립완성해서 비싸게 파는것이 영국과 프랑스였다. 돈은 비싸게 영국이나 프랑스가 내다팔고
새빠지게 밤새도록 고생해서 부품이나 파니깐 독일의
민생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러하니
독일도 영국이나 프랑스등을 본받아 식민지를 개척해서
핍박받아왔던 영국과 프랑스같은 악질사업자 나라에게
크나큰 복수를 하고싶은 심정이었다.
또한 독일은 힘을 키워서 더이상 영국이나 프랑스선박이
마구 자기입맛대로 무역을 못하도록 보호무역을 치기 시작했다. 따지고보면 비싼제품을 못사들이게 보호무역을
먼저 친 나라는 영국과 프랑스였다. 독일은 경제도 점점 안좋아지고 배가 아파서 미칠것만 같았다.
또한 영국과 형제국인 미국선박마저도 독일 영해에 들어
오는것을 금기시했다. 상선인데도 오지말라고 완강히 거부했다. 미국은 잘 알겠다며 독일에 경제 간섭안하겠다며
독트린 먼로 라는 계약을 체결한다. 그런데 영국은
범선을 진화하여 기관선 들을 운항하고있었다.
독일은 너무 열이 받친나머지 미국은 영국이나 유럽
도버해협은 아예 얼씬도 하지말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데 미국은 너희 영해도 아닌데 왜그러냐며
입을 삐죽내밀었다. 결국 사고는 터지고 말았다.
독일은 잠수함을 마구 건조해 미국상선이나 영국상선들을 보이는대로 마구잡이로 격침하기 시작했다.
조약을 위반했다는 명분이었다. 미국은 참 어이가 없었다.
거기다 독일 게르만인들이 지지하는 오스트리아제국의
황태자가 세르비아 왕국에 황제의 계통을 이어받겠다는
뜻으로 군사퍼레이드쇼에 참석했는데 독일 오스트리아인들은 환호를 하였지만 세르비아쪽 사람들은 지배를 받는듯 하여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이날 마침내 오스트리아 황태자는 세르비아 왕국의 청년에게 암살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은 참을대로 참아서
영국과 프랑스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세르비아왕국
그와 엮인 러시아제국에게도 선전포고를 하게된다.
세르비아를 키우게 된 원인은 러시아에게 있다는것을
독일은 확신하였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많은 죄없는 상선들이 침몰하였기에 경제적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미국도 독일에 선전포고를 안할수 없는 입지에 놓인 것이었다.
이렇게 세계 1차대전이 일어나게 되고..
세계 1차대전이 1914년에 일어나게 된 후 1917년
미국은 육군보병이 부족했던 나머지 추가로 군대를
모집했다. 더군다나 포병은 병력자체가 많이 충원되지
않아서 장교도 급히 뽑아야되는 실정에 온것이었다.
해리는 이때다 싶어 육군포병 장교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는 이때까지 5년넘게 군생활을 견뎌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포가 화력이 좋고 사거리가 좋으며 명중률이 높은지 남들보다 탁월한 실력으로 장교 소위에 합격하였다.
베스는 그소식을 듣고 한편으로는 뛸듯이 기뻣으나
한편으로는 슬퍼서 울기도 했다.
해리는 반드시 승리해서 돌아올거니 걱정하지말라고
위로하였다.
"아이비 백"
그는 그렇게 베스 에게 한마디
남겨두고 미국을 떠났다.
해리는 12년간 농부생활을 한 천진난만한 청년이었다.
그는 농부생활보다는 더욱 괜찮은 보수를 받고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은 마음에 군대에 육군 일반포병으로
입대를 하게되었다. 나의 여친 베스가 나의 멋진 군복을 입은 늠름한 모습을 쳐다볼걸 상상하니 몹시 설레이기만 했다.
처음에 군입대를 지원할때는 여친이 울면서 급구 말렸다.
총들고 전방에나가서 싸우면 바로 죽는거 아니냐고
다른 걸 생각하면 안되겠냐고.
해리는 베스의 말에 힌트를 얻어 수색대 소총수 보다는
약간 후방에도 전투를 치를수 있는 포병을 지원하게 되었다. 물론 전쟁나면 죽는건 매 한가지겠지만 그래도 상식적으로 앞에 나서서 작렬하게 전사하는것 보단 약간 후방에서 포를 쏘는것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베스를 안심시키며 군생활을 임했다.
그는 1905년에 육군 포병 사단 사병 으로 시작했다.
수류탄도 던져보고 대포도 쏘아보고 쥐포도 쏘아보고
육포도 쏘아보고.. 아무튼 포라는 포는 종류별로 다 쏘아서 훈련에 임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얻는다고
어느덧 일년이 지나자 이젠 어떤 폭탄을 사용하면 사거리가 나오고 명중률이 높으며 폭발력이 어느정도인지 포탄 생긴것만 봐도 어림잡아보면 알거같았다.
그의 포격술은 프로토스 질럿이 처들어 왔을때 순식간에 대공모드를 해제하고 가까이서 포를쏴서 상대를 제압할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자 일등병으로 승진하였다.
작대기 한개에서 두개를 달고나와 베스를 만나자
베스는 남친이 한단계씩 승진하고 있는모습이 마냥
뿌듯하기만 하였다.
어느덧 시간이 5년이나 흘러 전역할 시간이 다가왔다.
해리는 포가 떨어지는 소리만 들어도 이게 포탄인지
비비탄인지 실탄인지 원자탄인지 핵폭탄인지 눈으로
보지않고도 척척 맞추는 신급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포사격 점수 100점 만점에 99.9점을 맡게된 해리는
대대장으로 부터 표창장과 장교시험을 보는게 어떤가
하고 추천을 받게된다. 그래서 해리는 장교시험을 치뤘지만 신체검사에 시력이 결과에 좋지 못해서 불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베스는 그런 해리를 괜찮다며 다음에 또 보면 되지하며 위로하였다.
때는 바야흐로 1910년 대 동유럽엔 아주 큰변화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 러시아와 오스만은 서로 양대 제국으로
엄청나게 큰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스만은
지는해라 그런지 더이상 러시아제국의 압박에 견디질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동유럽은 프로이센,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같은 슬라브계, 그리스계, 오스트리아계,
훈족계, 여러민족들이 갈기갈기 찢기게 되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그의 기득권세력들은 기득권을 그대로
차지하기위해 혈통계를 계승받으려고 서로 오스만에
대한 전통성을 부여하려 하고 있었다.
이때 세르비아라는 왕국은 오스만에 독립하여 러시아
하고도 대립에 있어서 독립에 성공하게 된다.
사실 비극은 세르비아라는 나라가 다른 나라들을
집어 삼켜들려 함으로서 각국의 나라들은 그들의 위협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특히 세르비아 인들은 슬라브인을
중심으로 오스트리아 헝가리 마저도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헝가리 들 중에 오스트리아는
독일계통중의 게르만족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었다.
독일의 게르만족들은 예전부터 서유럽 영국이나 프랑스
등의 강대국에게 멸시를 받고있던 터였다.
지금으로 치자면 선박이나 자동차를 만드는데 게르만인들한테는 싼값에 부품이나 만들어서 납품하라고 하고
부품을 수입하면 조립완성해서 비싸게 파는것이 영국과 프랑스였다. 돈은 비싸게 영국이나 프랑스가 내다팔고
새빠지게 밤새도록 고생해서 부품이나 파니깐 독일의
민생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러하니
독일도 영국이나 프랑스등을 본받아 식민지를 개척해서
핍박받아왔던 영국과 프랑스같은 악질사업자 나라에게
크나큰 복수를 하고싶은 심정이었다.
또한 독일은 힘을 키워서 더이상 영국이나 프랑스선박이
마구 자기입맛대로 무역을 못하도록 보호무역을 치기 시작했다. 따지고보면 비싼제품을 못사들이게 보호무역을
먼저 친 나라는 영국과 프랑스였다. 독일은 경제도 점점 안좋아지고 배가 아파서 미칠것만 같았다.
또한 영국과 형제국인 미국선박마저도 독일 영해에 들어
오는것을 금기시했다. 상선인데도 오지말라고 완강히 거부했다. 미국은 잘 알겠다며 독일에 경제 간섭안하겠다며
독트린 먼로 라는 계약을 체결한다. 그런데 영국은
범선을 진화하여 기관선 들을 운항하고있었다.
독일은 너무 열이 받친나머지 미국은 영국이나 유럽
도버해협은 아예 얼씬도 하지말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데 미국은 너희 영해도 아닌데 왜그러냐며
입을 삐죽내밀었다. 결국 사고는 터지고 말았다.
독일은 잠수함을 마구 건조해 미국상선이나 영국상선들을 보이는대로 마구잡이로 격침하기 시작했다.
조약을 위반했다는 명분이었다. 미국은 참 어이가 없었다.
거기다 독일 게르만인들이 지지하는 오스트리아제국의
황태자가 세르비아 왕국에 황제의 계통을 이어받겠다는
뜻으로 군사퍼레이드쇼에 참석했는데 독일 오스트리아인들은 환호를 하였지만 세르비아쪽 사람들은 지배를 받는듯 하여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이날 마침내 오스트리아 황태자는 세르비아 왕국의 청년에게 암살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은 참을대로 참아서
영국과 프랑스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세르비아왕국
그와 엮인 러시아제국에게도 선전포고를 하게된다.
세르비아를 키우게 된 원인은 러시아에게 있다는것을
독일은 확신하였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많은 죄없는 상선들이 침몰하였기에 경제적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미국도 독일에 선전포고를 안할수 없는 입지에 놓인 것이었다.
이렇게 세계 1차대전이 일어나게 되고..
세계 1차대전이 1914년에 일어나게 된 후 1917년
미국은 육군보병이 부족했던 나머지 추가로 군대를
모집했다. 더군다나 포병은 병력자체가 많이 충원되지
않아서 장교도 급히 뽑아야되는 실정에 온것이었다.
해리는 이때다 싶어 육군포병 장교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는 이때까지 5년넘게 군생활을 견뎌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포가 화력이 좋고 사거리가 좋으며 명중률이 높은지 남들보다 탁월한 실력으로 장교 소위에 합격하였다.
베스는 그소식을 듣고 한편으로는 뛸듯이 기뻣으나
한편으로는 슬퍼서 울기도 했다.
해리는 반드시 승리해서 돌아올거니 걱정하지말라고
위로하였다.
"아이비 백"
그는 그렇게 베스 에게 한마디
남겨두고 미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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