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선족 애미년이랑 장애인 한국애비 사이에 태어났다. 둘은 나 낳기 이전에 가졌던 아이를 낙태했고 강원도 산골짜기에살다가 이혼했다. 거의 다쓰러져가는 집에서 나의 유년기를 보네다 애비는 지가 키우기 귀찮다고 나를 친척에게 떠념겼고 거기서 10년간 지옥생활을 겪었다. 지금생각해도 남들 좆같아 하는 군대가 그때보다 10배는 나았다. 22살때 이 지랄맞은 인간 쓰레기들과 더는 같이 있기 싫어서 연을끊고 돈을모아 3000만원을 모았다. 그리고 대학교를 갔다. 아마 내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이 9개월이 전부일것이다. 하지만 술에 만취한 어느날밤 난 보이스 피싱을 당했고 부랴부랴 경찰에 달려갔다. 제발 내돈을 찾아달라고 사정했지만 결국 못찾고 경찰은 1개월 만에 수사중지를 요청했다 학업을 중단하고 무작정 서울로 갔다. 생활이 잘 될리가 난 월 10만원 짜리 고시원이 있는 대전으로 갔고 수면장애로 정신병원에서 약물처방을 받았다. 일자리나 알바도 못찾고 하루하루 편히 죽기만을 바랬다.  개같은 인생에서 편안한 죽음이라도 내가 누릴 권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게 쉬울리가. 돈이 다 떨어져서 난 숙식제공이 있다는 조선소 알바를 시작했다. 뭐 열악함 그 자체 였다. 하지만 1년간 버텨서 얻은 결과가 1200만원이였다. 난 목표를 잡았다. 해사대학에 진학하자고, 가서 졸업하고 면허따서 죽을때까지 이 개같은 땅을 떠나 배타고 살자고,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아주 잔혹하게 가증스러운 인간들에게 복수하자고. 길거리 보면 애국을 떠드는자, 가족을 두둔하는자, 내가 꿈꾸던 평범한 생활을 하는자, 아주 많다. 볼때마다 증오스럽지만 내게는 힘이없다.  더러운 중국인의 피가 나한테 있어서 자기 혐오도 들지만 그렇다고 내 국적이 대한민국이라는것에 자부심이 들지도 않는다. 국군상태야 두말하면 잔소리고, 경찰은 그저 견찰이고,그렇다고 내가 복지혜택을 받기라도 했나. 이 개같은 현실에 난 내일도 출근을 해야한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