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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화된 사랑 시장, 그리고 계층 고착의 지옥도”





한국의 결혼정보업체를 보면, 실소가 터진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펼쳐지는 이 짝짓기 장터는, 더 이상 인간의 감정이나 진정성을 논할 공간이 아니다. 마치 축산시장에서 1++ 등급 한우를 고르듯, 사람을 ‘가문’, ‘학벌’, ‘연봉’, ‘거주지’, ‘부동산 보유 여부’ 등 몇 가지 숫자로 정량화한 후 등급을 매긴다. 여기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조건의 집합체이며, 거래의 대상이다. 이 ‘사랑 시장’은 냉정하다 못해 잔혹하다.


부모 잘 만난 이들이 물려받은 강남의 수십억 아파트 한 채는, 타인의 수십 년 노동을 무력화시킨다. 그들은 유학을 기본으로 깔고 들어오며, 삼성, 현대,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다닌다. 결혼 상대 조건은 최소 서울대, 의사, 강남 자가 소유. 여기에 한 끗이라도 못 미치면 인간 취급도 안 한다. 이 서열 구조 안에서 “지잡대”는 지워져야 할 오점이고, 지방 거주자는 통계 외의 존재이며, 중산층은 “그냥 그런 사람”, 즉 의미 없는 카테고리로 간주된다.


그들에겐 인간이 아니라 ‘등급’만 보인다. 그리고 자신보다 한 단계 아래는 보지 않는다. 이것은 개인의 태도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산 규모에 따라 삶의 ‘시드머니’를 받는다. 그 시드는 단지 돈이 아니다. 인맥, 문화자본, 정보력, 사고방식까지 포함한 총체적인 출발선이다. 그리고 결혼 시장은 그 시드를 상속받은 자들이 다시 자기 자본을 결혼이라는 방식으로 세습하는 구조다. 애초에 이 시장은 공정하지 않다.



"사랑은 평등하지 않다 — ‘상향 결혼’이라는 신화"



여성의 상향혼 선호는 이제 ‘신화’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 규범이다. 여성은 가능하면 자신보다 학력, 소득,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자를 원한다. 반대로 남성은 자신보다 학력, 소득이 낮거나 비슷한 여성을 원하면서 외모, 나이, 순응성을 중시한다. 이로 인해 결혼 시장에서의 매칭은 극단적으로 어려워진다. 모든 여성이 상위 10%의 남성을 원하고, 상위 10%의 남성은 선택지를 과잉 공급받는다. 결국 상위 10% 남성만 중복으로 선택받고, 나머지 90%는 ‘도태’된다.


문제는 이런 현실이 단지 선택의 문제로 축소되거나, “남자들이 능력이 없어서”라는 식의 비난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건 구조적 실패다. 능력이라는 말 자체가 모호하다. 하루에 단타로 300만 원을 버는 사람은 어떤 능력인가? 누구는 연봉 2억을 받지만, 거대한 조직의 노예로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결혼 시장에서는 연봉 2억이라는 숫자가 ‘좋은 유전자’로 포장되며, 감정적 호감이나 인간적 궁합보다 훨씬 우위의 조건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하향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여성을 오랫동안 착취하고 종속시켜왔기에, 이제 여성들은 결혼을 생존 수단이 아닌 상승 수단으로 본다. 하지만 그 선택은 결국 시장 전체를 왜곡시키고, 필연적으로 대다수 남성과 여성 모두를 외롭게 만든다.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누군가의 ‘스펙 투자’와 ‘조건 상향’을 위한 수단이 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 사회적 투자 상품이 된다.



‘나는 누구와 결혼할 수 있는가?’ — 계층화된 혼인 시장



짜장면 배달을 하는 사람은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본질적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 질문이 현재 한국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과연 이 사회에서 ‘노동’은 존중받고 있는가? 우리는 누구보다 부지런히 살아가는 청소노동자, 배달노동자, 택배기사, 콜센터 상담원, 비정규직 교사들의 삶을 ‘결혼 시장’에서 얼마만큼 가치 있게 여기는가?


사실상 이들은 결혼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다. 그들이 누구와 결혼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조건에 의거해 결혼 상대를 고르는 한, 매우 냉정할 수밖에 없다. 결국 비슷한 계층 내에서만 결혼이 가능하고, 계층을 넘는 혼인은 드물다. 이건 곧 사회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혼은 더 이상 상향이동의 수단이 아니며, 계급의 재생산을 위한 도구로 고착되고 있다.



"왜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인가?"



그럼 이제 이 질문으로 이어진다. 왜 한국은 세계 최저 출산율 국가가 되었는가? 왜 모두가 결혼을 꺼리는가? 대답은 복잡하지 않다. 결혼이 고통이고, 부담이며, 승자 독식 구조의 잔혹한 결말이기 때문이다.


결혼은 이제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계약’이라는 시스템에 더 가깝다. 아파트를 소유한 쪽, 연봉이 높은 쪽, 학벌이 더 좋은 쪽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구조다. 이런 계약은 당연히 실패를 부른다. 사랑이 아니라 ‘조건’으로 시작된 관계는, 그 조건이 흔들릴 때 무너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결혼을 행복의 출발점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조건 경쟁에서 실패했을 때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결혼을 포기한다. 출산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낳아봤자 부모의 계층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걸 모두가 안다. 결국 태어남 자체가 계급이 된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새로운 고통을 만드는 일이다.



"인간의 존엄과 사랑은 숫자 너머에 있다"



이 글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이건 사회 구조에 대한 절규다.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사랑조차 거래의 일부가 되었다. 사랑은 본래 조건을 넘는 감정이었으나, 지금 이 사회에서는 조건이 전제되지 않으면 시작도 되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은 아파트 평수와 연봉 규모에 따라 나뉜다. 사랑의 자격은 졸업한 대학교와 부모의 자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인간은 단지 숫자가 아니다. 당신이 매일 300만 원을 단타로 벌든, 동네에서 카페를 하든, 배달을 하든 —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한 존재이고, 그 존엄은 결혼 시장의 필터로 판단될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바뀌려면, 사랑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사랑은 상품이 아니다. 사람도 등급이 아니다. 결혼은 성과가 아니라 관계이며, 존엄과 존중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는 계속해서 ‘사랑받지 못하는 다수’를 만들어내며, 결국 모두가 불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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