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는 친가쪽에 사촌 형이 있고, 외가 쪽에는 큰삼촌이 있는데 두사람 다 참... 막장테크를 타고있어.

사촌형은 4수끝에 울산대 갔고, 나이 마흔된 지금은 여자친구 하나 없이 서울에서 혼자살아. 영업관리자도 아니고 영업뛰면서 -_-
큰삼촌은 60 다되가는데 직장 없고 큰숙모가 집안 겨우겨우 꾸려가고...

어릴 때부터 저 두사람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지... 넌 크면 저리되면 안된다 저리되면 안된다...  아주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어쨌든 그렇게 커서, 중국어 덕분에 서울에 갔었다. 첫월급 120 받으면서 시작해서 230을 받도록 개같이 노력해서 과장까지 달았
지. 그러다가 아버지 실명하시구. 도로 160 받는 직장 구해서 고향으로 내려오구.

그리고 다시 180으로 올라갔지. 근데...

하얀 날개 달고 평화롭게 노래부르는 삶이 성에 안차는 사람이 있는거야. 내가 그렇거든. 난 원래부터 컴퓨터쪽이었고, 서울에
서 몇년간 있으면서도 너 정말 난놈이란 소리도 들었었고.

그런 기분 있잖아. 내가 뭘 해야할지, 내가 뭘하면 잘할지 뻔히 아는데... 아는데, 오라는 곳도 있는데, 그런데도 갈 수가 없는
그런 기분.

그래서 어제 차분하게 얘길 했어.

오라는 곳이 두군데가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는 지금 집에서 10분 걸리는 현대자동차 하청업체고 월급은 주야간 2교대로 160~70에
상여금이 400%고, 하나는 서울이고 SWQA이며, 3200 연봉이에요.

...난 정말 인간적으로, 서울 가라고 할 줄 알았다. 생산직 가라더라. 생산직. 4년동안 배워먹었고 또 그걸로 경력쌓아온 자식놈 앞에
놔두고, 그냥 그것들 다 갖다버리고 생산직 가란다.

생산직... 나쁘지 않다. 생산직이 없으면 사회가 안돌아가겠지. 그래... 안다. 알아. 근데... 모르겠다. 너무나 당당히 생산직 가라는
아버지 앞에서 할말이 없더라.

꼭 그렇게까지 해서 자식을 옆에 붙잡아놓고 싶으신걸까.

어쩌다 토요일 저녁에 게임하는 것도 그렇게 보기가 싫으셔서, 이젠 밤에 컴퓨터 앞에도 앉지 말라고 하시더라.

얘들아.

나도 영업하던 놈이라 남 설득하는데에는 자신이 있었지.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설득을 해야할까.

정말이지, 밤에 잠이 안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