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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투와 고인돌을 연관짓기 전에, 그 분포도와 연대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먼저, 일본열도에 존재하는 고인돌의 대부분은 기반식(바둑판식) 고인돌로서,

그 원류로는 한반도 전역, 그리고, 특히 (당시에는 섬이었던) 서~남부 지방을 꼽을 수 있다.


북방식 고인돌보다는 기반식 고인돌이 상대적으로, 열도 선주민에 가깝다는 사실을 도출해 낼 수 있고,


한반도 고인돌의 연대를 살펴보자면,

그 대부분은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까지 만들어진 것이고, 최대 12세기까지 연대가 올라감.


이로부터, 지석묘 집단이 인구를 불린 지역은 남해안이 아닌, 한반도 북부~중부 내륙지방이었으며,

남해안 지방, 그저, 열도로 건너가기 전에 거친, 환승역에 불과했었다는 점을 도출해 낼 수 있음.


특히, 47z의 표지유물인 민무늬토기가 출토된 지역들과 얼마나 겹치는지도 봐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