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A, B, C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랐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이어 대학도 모두 고향에 소재한 대학에서 다니게 되었다.
대학은 과가 분할되어 있고 사람이 많기 때문에 고등학생 때처럼 자주 만나서 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비정기적으로 만나서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던지 힘든 일이 있을 땐 진솔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있는 한적한 공원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B가 "사람이 가장 공포스러워할 만한 장소가
어딜까?" 하고 말했다.
실없는 소리였지만 딱히 할 게 없었던 우리는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동원해 폐병원(그것도 정신병원이라면 공포가 배가 될 것이다),
공동묘지 등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냈다.
그리고 또 하나 실 없이 던져진 한 마디, "그럼 우리 한 번 가볼까?"

하지만 폐병원같은 시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많지 않았다기보단, 우리 동네 근처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공동묘지의 경우, 마치 조선시대에 풀만 무성한 벌판에 묘들이 빽빽히 자리잡아있고 칠흑같은 어둠속을 조심조심 걸어다니는 사극 풍의
생각을 했지만 현대의 공동묘지는 밤에도 전등불이 밝혀져 있고 관리자도 있으며 안전을 위해 밤에는 문을 폐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딱 한 가지 희망을 걸고 마지막으로 찾았던 곳은 저수지였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물귀신'을 연상시키는 저수지.
잔뜩 기대하고 랜턴과 텐트를 들고선 비교적 가까이 있는 저수지를 찾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듬성듬성하게 가로등이 박혀있었고
심지어 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실망감을 이루 감출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때의 일은 그렇게 끝이 났고 서 너 달 후 우리는 여행을 가게 됬다.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산간 지방으로 가서 고기도 구워먹고 갑갑한 도시를 빠져나와 산과 들, 강을 보고있으니 무언가에서 해방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산간지방이다보니 슈퍼마켓은 숙소(숙소라고 해봐야 낡은 민박이지만)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각종 술을 사들고
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그런데 길을 잘못들게 되어 차를 세워놓고 이곳 저곳을 살피는데, 저수지 하나가 있었다.
워낙 인구가 희박한 산간이다보니 사람이 있을 리도 없었고 가로등 따위도 없었다. 그야말로 칠흑같은 암흑 속에서 휴대폰 액정에서
나오는 불빛만이 그 곳이 저수지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우리는 숙소에 가는 걸 포기하고 저수지에 앉아 술을 마시고 가기로 했다. 특히 C는 여행 중에 발생하는
돌발상황들이 여행의 묘미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C가 가장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술을 잘 못하는 A는 몇 잔 마시지도 못하고 얼굴이 벌게져서 헤롱거리며 쉬겠다고 술자리를 떠버리고, 우리끼리 재밌는 이야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한참 술을 마시는데, 여러 명이 있어서 그런 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공포'라는 분위기 자체가 아니었다고 해야할까.
오히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휴대폰 불빛에만 의존해서 술을 마시다 보니 귀중한 술을 엎기도 하고,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시기였기에
드문드문 모기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취기가 돌면서 몸에 열이 나니 짜증나는 느낌과 함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에이... 이게 뭐야. 무섭지도 않고, 그냥 숙소 가서 에어컨이나 틀어놓고 더 마시자."
"숙소에 모기약은 있으려나..."
모두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터는데 A가 말했다.
"야... 여기까지 와서 우연히 저수지도 찾았는데 그냥 가면 섭하지ㅋㅋㅋ 수영이라도 하고 가자. 물도 얕아보이네."
"옷은 어떻게 하고."
"민박집에 손님도 우리밖에 없던데 뭐 세탁기 한번만 쓴다고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뭐."

새벽이 다 된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공기가 더웠던데다 술기운에 몸에서는 더욱 열이 나고 있었기에 우리는 팬티 차림으로 저수지에 뛰어들었다.
시원한 청량감. "하- 시원하다!"
얼마나 놀았을까, 문득 주위를 살펴보니 우리는 저수지 중앙에까지 근접해있었다.
분명 가장자리에서 몸만 담그고 있었던 것 같은데 분위기에 취해서 몰랐던건지... 산통을 깨긴 싫었지만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야! 이제 가자!" 하고 소리쳤다.

A는 "야~ 그냥 좀만 더 있다가자ㅋㅋㅋ" 하며 C를 잡아끌었고 B와 C도 그렇게 큰 문제될 것 없다는 듯 보였다.
하지만 뭐랄까, 술이 서서히 깨어가다보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심이 어느정도인지도 정확히 모르는데, 게다가 우리는 취해있다.
쥐라도 나면 어떻게 되는거지?

"야! 그냥 나가자고 좀 병신들아! 쥐라도 나면 뒤진다니까."
그때 A가 날 바라봤다. 무표정으로 바라보는건데도 왠지 모를 엄청난 차가운 느낌...
무언가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너무나도 원망스럽다는 느낌...
A는 내가 자기를 못볼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미 어둠에 적응한 눈은 표정까지 어렴풋이 분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A는 무표정으로 신나는 듯한 말을 했다. 표정은 아무것도 없는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ㅋㅋㅋㅋㅋㅋ야ㅋㅋㅋ
아 왜그래ㅋㅋㅋㅋ 그냥 좀 놀다가자고ㅋㅋㅋㅋ쫌ㅋㅋㅋ"

...
뭘까 이 괴리감은. 표정과 말이 너무 다르다. A인데, A가 아닌 것 같은 느낌.
본능이 앞섰다. 위험해...

나는 나와 가까이 있었던 B와 C의 어깨를 억지로 잡아끌며 뭍쪽으로 이동했다.
"병신들아 일단 나와. 나와."
저수지 깊은 중앙으로 헤엄치던 A는 뒤를 휙 돌아보더니 악에 받친 괴성을 질러댔다.
"왜 가냐고! 너! 너! 너! 너! 너만 아니었으면! 개새끼야! 너만 아니었으면! 다! 된건데! 너!!!!! 씨발놈아!!!"

다들 어안이 벙벙한데다 그제서야 모두가 뭔가 위험하다는걸 직감적으로 알아채고 빠져나오는데, A가 안보였다.
아직도 저수지 안에 있는건지... 나는 지금도 글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의 본능적 위협에 무조건 친구들을 잡아끌고 옷가지들을 주워들고
차로 이동했다.

"야 씨발 A 아직 안에있는데 데려가야지!"
"아... 알았으니까 일단 차에 먼저 가자..."

차에 갔더니, A가 차 밑에 드러누워있었다. 술에 잔뜩 취해가지곤...

"아.. 이새끼 뭐야. 그렇게 수영하자더니 지가 제일먼저와있네."
"ㅋㅋㅋ 이새끼 어렸을때부터 겁만 많아가지고ㅋㅋㅋ 애들 다 가니까 쫄아서 지가 제일먼저 나온거다ㅋㅋㅋ"

나도 원인모를 불길함이 느껴지던 저수지에서 빠져나왔고, 친구들도 정상이라는 것에 안도를 느껴 웃으며 몸을 닦고 옷을 입는데
A가 시끄러운 소리에 술이 깼는 지 "야 차 문좀 열어봐... 아 머리아퍼 좀 눕자..." 하고 말했다.

"야 새끼야 수영했으면 좀 닦고 들어가야지"
A "..? 뭘 닦어 임마. 수영은 또 무슨소리야"

그러고보니 A, 옷을 입고 있다.

"응? 너 옷은 언제입었냐. 하여튼 빠르네"
A "옷을 언제 입긴 언제 입어. 이새끼 취한거 아니야?ㅋㅋ"

무언가에 홀린듯이 A가 입고있는 바지를 벗겼다. 팬티도 입고있다. 팬티도 전혀 젖지 않았다.



A " 아 이새끼들 왜이래?ㅋㅋㅋ 나 놀리냐? "
" 아니 병신아. 너 왜 팬티가 안젖었냐고. "
A " 미친놈아 내가 무슨 오줌싼것도 아니고 팬티가 왜젖는데ㅋㅋㅋ"
" 수영할 때 젖었을거 아니냐고 "
A " 아 진짜 이 병신 뭐라는거야. 수영을 왜 해. 어디서 해 수영을 병신아. "
" 그럼 너 뭐했는데 지금까지 "
A "미친놈아 내가 아까 취해서 들어간다 그랬잖아. 차까지 비틀비틀 오니까 씨발 차키가 C한테 있었네.ㅋㅋㅋ
    저수지까지 돌아가기 귀찮아서 그냥 차옆에서 자고있었지.ㅋㅋㅋ 뭔소리해ㅋㅋㅋ"

...
그래...

술을 잘 못하는 A는 몇 잔 마시지도 못하고 얼굴이 벌게져서 헤롱거리며 쉬겠다고 술자리를 떠버리고, 우리끼리 재밌는 이야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한참 술을 마시는데, 여러 명이 있어서 그런 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공포'라는 분위기 자체가 아니었다고 해야할까.
오히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휴대폰 불빛에만 의존해서 술을 마시다 보니 귀중한 술을 엎기도 하고,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시기였기에
드문드문 모기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취기가 돌면서 몸에 열이 나니 짜증나는 느낌과 함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에이... 이게 뭐야. 무섭지도 않고, 그냥 숙소 가서 에어컨이나 틀어놓고 더 마시자."
"숙소에 모기약은 있으려나..."
모두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터는데 A가 말했다.
....

그래... A가 거기에 왜 있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