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전혀 시도하지 않지만 저는 자각몽을 여러 차례 꿔보았습니다
처음 자각몽을 시도하게 된 것은 웹서핑 중 우연히 자각몽에 대한 글을 본 날이었어요
몇 시간 동안 이것저것 알아보며 당일 바로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자각몽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짤막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자각몽이란 수면 중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상태에서 잘 컨트롤 하면 꿈 속에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됩니다

자각몽을 잘 꾸기 위해선 꿈 일기라는 걸 작성합니다
꿈을 꾸고서 얼마 안 지났는데 금방 꿈에 대한 기억을 잊은 경우를 많이들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꿈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잠에서 깬 직후 꿈에 대한 내용을 기록하는 게 꿈 일기입니다

자각하게 된 직후에는 무조건 rc를 합니다
reality check의 준말로 현실인지 꿈인지를 구분하는 기술입니다
꿈 속이라면 손가락이 길게 늘어나는 일은 없겠죠?
한번 길게 늘여보았을 때 길게 늘어나는,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난다면 꿈 속이라는 얘기가 되죠
rc는 이렇게 현실과 혼동하는 불상사를 막는 방지책입니다

여러 지식을 습득하고 자각몽을 꾸기 위해 노력해보지만 잘 성공하지 못 합니다
수 차례 시도하던 어느 날, 늦게 잠들게 된 날이었습니다
피곤해서 그랬던 건지 자각몽에 최초로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이라 그런지 꿈을 오래 유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자각몽이라는 확신에 차서 rc도 하지 않은 채 방문을 열고 제 방에서 뛰쳐 나가던 중 꿈에서 깨게 됩니다
'피곤한 상태에서 성공률이 올라가나 보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좀 더 계획적으로 자각몽을 시도하게 됩니다

제 예상이 적중했던 것인지 자각몽에 대한 성공률이 높아지고 꿈도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다만 제 진짜 목적을 이루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사실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자각몽을 꾼 것이었거든요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할수록 꿈에서 깰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곧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흥분한 상태가 되어 꿈에서 깼던 것 같더군요
저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일단 꿈 속 생활에 익숙해지기로 했습니다
방식은 현실에서의 일상을 똑같이 실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손가락을 늘이는 rc를 했었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난 제 자신이 확인되면 현실이든 꿈 속이든 일단 손가락부터 늘여보았습니다
꿈에선 손가락이 쭈우욱 늘어나고 현실에서는 당연히 아무렇지 않았죠
그리고 처음으로 문제가 생긴 그 날도 손가락을 늘여보았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현실이구나'
저는 씻고 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잠에서 깼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잠깐 의아했는데요
어쨌든 잠에서 깨서 침대에 누워있으니 방금 그건 꿈이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차 싶었습니다
rc를 이중, 삼중으로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씻고 등굣길에 올랐습니다
버스에 탑승해서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잠에서 깼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게 느껴지며 벌떡 일어나 rc를 했습니다
손가락은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귀도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늘이는 것만 해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어 다리를 관절 반대 방향으로 꺾어보려 했습니다
꺾이지 않았습니다
이불을 확 제껴버리고는 안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열려있는 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어머니께서 양치를 하시며 "밥 줄까?"하고 물어보시더군요
저는 항상 집에서 아침을 안 먹고 나갔거든요
갑자기 와서는 쳐다보니까 물어보셨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하고 씻으러 가는데 한 마디 더 하시더라고요
"진수야, 또 속니?"

그리고 잠에서 깼습니다
저는 이걸 미리 알았어야 됐어요
'왜 항상 불길한 예감은 현실로 다가올까'라는 머피의 법칙은 자각몽 속에서 더 강력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요
제가 은연 중에 상상하는 모든 불쾌한 시나리오는 꿈 속에서 그대로 실현되더군요
제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더라도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상상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는 그대로 실행되었습니다
나중에 가서 들었던 생각인데요
아마 너무 피곤해서 자각몽과 가위가 합쳐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3번의 자각몽을 더 경험하게 돼요

1.
제게 또 속냐고 물어보는 어머니의 말씀에 고개를 뒤로 돌리는 순간 잠에서 깼습니다
고개를 뒤로 돌리면서 잠에서 깨서 그런지 목이 돌아간 채로 깨어있더라고요
침대에 앉아 왼쪽을 보면 바로 거울이 있거든요
이미 고개가 돌아가 있어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이 거울을 봤더니 고개가 돌아간 게 아니라 얼굴이 2개가 되어있었습니다
측면에 붙은 게 제 얼굴이더라고요
그럼 정면에 있는 건 누구 얼굴일까 궁금하면서도 고개를 돌리기 싫었습니다
근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제 의지와는 관계 없이 고개가 돌아갔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될까요
정면에 붙은 얼굴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의문의 얼굴이 제 몸을 완전히 지배한 것인지 제 의지대로 몸이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느낀 순간 이 의문의 얼굴은 책상으로 뛰쳐가듯 가서는 컴퍼스를 들고 측면에 있는 얼굴인 제 눈을 찔렀습니다

2.
저는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깼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무슨 일이냐고 묻더라고요
어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오실 때조차 소스라치게 놀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리는 제가 걱정되셨는지 제 침대에 앉으셔서 괜찮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제서야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냥 악몽을 꿔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도 무슨 일이냐며 안방에서부터 제 방으로 오시더라고요
근데 아버지가 아니라 이전 꿈에서 봤던 의문의 얼굴이었습니다
손에는 컴퍼스를 들고 있더라고요
어머니도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셨는데 그 얼굴이 붙어있었습니다
그 둘이 동시에 달려들어 제 양쪽 눈을 컴퍼스로 찔렀습니다

3.
그리고 잠에서 깼습니다
저는 누운 채로 즉시 rc를 했습니다
손가락이 늘어나더라고요
이 놈의 꿈은 언제 끝나는 건가 한숨을 쉬며 이마에 손을 얹고 눈을 꼭 감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또 방에 누가 오더라고요
노크하고 문을 연 건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가 아직도 자냐, 지각하겠다고 하시더군요
보나마나 아까 그 의문의 얼굴일 텐데 저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어요
"제 눈을 찌르는 건 좋은데요 도대체 누구세요?"
그랬더니 놀란 토끼 눈을 하며 "그게 무슨 소리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짜증이 나서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침대에서 나와 책상에 있던 컴퍼스를 집어 들이밀며 "뭐하세요? 안 찌르고?" 했더니 잠이 덜 깼냐면서 제 팔을 때리더라고요
근데 너무 생생한 거예요
직감적으로 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 속에서 통증은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물론 그렇게 아프진 않았지만, 이전과는 달리 통증이 느껴졌거든요
저는 그래서 잠이 덜 깨서 그렇다며 얼버무렸습니다
어머니가 괜찮은 거 맞냐면서 걱정을 너무 하시길래 사실대로 꿈 속의 꿈을 여러 차례 꾸는 악몽 때문에 혼란스러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정신과까지 가자고 하시길래 이제는 괜찮다고 말하고 씻으러 들어갔습니다

이건 현실이었습니다
씻으면서 '왜 rc 했을 때 손가락이 늘어났던 걸까?'라고 생각해 보았는데 그 짧은 순간만 꿈이었고, 어머니가 노크를 하실 때 잠에서 깼던 것 같았습니다
이 이후로는 절대 자각몽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꿈을 꿀 당시에는 조금 힘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없으니 다시 시도해볼 법도 했지만...
저는 마지막 꿈을 꿀 때 '이번에도 못 깨면 투신해서라도 깨야지'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