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내렸다



하늘이 지루했는지 잠깐 노했다
쪼맨한 비를 내릴 줄 알았는데 버럭 버럭 내린다


나는 곧 문자를 만지작 거렸다
동네 친구가 연애를 마치고 전철 타고 온다나.


마침 비도 오고 친구도 오는데
우산을 마련해 주자 싶어 허름하고 긴 우산을 들고 나갔다


'맞아도 되는 비는 아니었나 봐'
녀석은 비를 맞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가끔은 아끼는 세미 정장에 빗물이 묻어도 나름 괜찮을 텐데'

'배관 설계사에게도 낭만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준비한 우산은 달랑 한 자루 뿐, 단 한 자루만 들고 나갔다

하나를 흔쾌히 내주고 나는 모른 척
내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녀석이 나를 멈춰 세우고 아이스크림을 사준다나
떡볶이 집이 열었다면 오뎅이나 얻어 먹었겠지

추석은 분식집을 쉬게 했다 사흘씩이나.


착한 일 가볍게 짓고 나니 우산이 아깝지는 않았다

사실 옆 집 사는 여자애가 우산을 활짝 펴서
우리집 앞에다 놓아 둔 모양인데
거저 준 거 같아서 낼름 가져왔던 물건이다


얼결에 나도 거저 받았으니 나 또한 친구에게 거저 준 거 같았다

비는 내리고 가을도 함빡 내리는 막차 시각
지금은 저녁 열두 시-
비는 내리고 어둠도 몽땅 내려 앉았다
녀석이 집에 도착한 후에야 나는

비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