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 준비."

소대장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긴장감과 회의감, 무력감이 가득했다. 이길 수 없는 자연재해 급의 전쟁에, 인명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정부의 발악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줄이야. 소대원 모두가 초점을 잃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침략을 받았을 땐, 늘 내리던 일상적인 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4개월 내내 비가 오고, 세상 모든 것이 점점 칙칙한 푸른빛을 띠게 되는 모습은 인류를 패닉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시작은 식물이었다. 그 다음에는 가축이, 그 다음에는 건물이... 결국 X-2에 있던, 인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꿀럭대는 하나의 점성이 약한 검푸른 액체 덩어리가 되었다. 거주민들은 운이 좋게도 동화를 피해 갔으나, 덩어리에 닿는 순간 접촉 부위부터 피부가 투명하게 얼어붙기 시작해 5분 내로 살아있는 듯한 활발한 뇌 활동을 제외한 모든 신체적 기능이 정지했다. 나중에 연구를 위해 회수한 소수의 거주민들은 마치 유리 조각상에 못을 박으려고 하여 온 몸에 금이 간 듯한 몰골이었다.

 이번엔 X-4였다. 성계 내에서 가장 거주 규모가 큰 행성. 이전의 X-3은 그 무엇도 건질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그리고 X-4도 행성의 90% 이상이 잠식당했다. 살아있는 인간은 극소수고, 소대원들은 그들을 구출하는 임무를 맡았다. 안전 지대에 미리 보내놓은 셔틀에 태우기만 하면 되는 나름 간단한 임무였다.


 "강하!"

 소대장의 신호에 맞춰 그들은 모두 레버를 내렸다. 순식간에 60개 가량의 포드가 빛을 발하며 대기권 안으로 진입했다. 점점 행성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이 강해졌다. 멀리서만 봐도 X-4는 이미 인류 문명의 흔적이 사라져 있었다. 그런데 저런 곳에서 어떻게든 희망을 찾으라고 그들이 보내진 것이었다. 말 그대로 자살 특공대나 다름 없었다.

 착륙 장소는 지구의 뉴욕과 비슷하게 생긴 도시였다. 칙칙하고 폭우가 쏟아지는, 꿈틀거리는 뉴욕. 총소리, 화약 냄새, 비린내, 비명과 신음, 울음. 벌써 그의 주변엔 전우들의 조각상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는 앞에서 다른 무리를 인솔중이던 소대원 4명이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거대한 덩어리에 통째로 집어삼켜지는 꼴을 보았다. 얼어붙기 시작한 소대원들의 절망적인 외침이 들렸다. 이 모든 자극들은 그의 정신을 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는 자신이 인솔해야 할 몫을 임무 막바지에 겨우 완료했다. 이제 셔틀에 타기만 하면 된다.

 그는 자신이 웅덩이를 밟기 전까지 자신의 장화에 조그마한 구멍이 뚫려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웅덩이를 밟고 나서 발이 움직이지 않을 때 까지도,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반신이 전부 움직이지 않을 때, 그는 절망감에 가득 차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온 힘을 다해 소리칠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상반신이 남아있다고. 여기 자신이 살아있다고. 치료를 받으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의 말을 듣고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같은 소대원들조차 무표정으로 대기중이던 셔틀에 모두 탑승했다. 그리고 그의 눈 앞에서, 셔틀은 우주 공간으로 사라져버렸다. 야속하게도.


 남겨진 그는 필사적으로 온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하며 빙결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소용 없었다.


 걸치고 있던 옷의 감각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겨우 이딴 죽음을 위해 25년을 바쳤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입에서 단 맛이 나지 않을 때, 그는 분노했다. 자신을 데려가주지 않은 소대원들과 셔틀 운전사들을 향한 증오를 내비쳤다.

 셔틀이 워프하며 남기고 간 오존 냄새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 그는 믿지도 않던 신에게 기도를 했다. 기적이 일어나 자신이 살아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쉴 새 없이 쏟아지며 지표면과 자신을 때리던 빗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을 때,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더 이상 꿈도 희망도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의 시야가 얼음이 깨지듯 박살이 났다. 동시에 그 중앙에 붉은색의 거대한 눈이 등장했다.

 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시간과 자신의 몸에 갇혀 억겁의 세월을 보낼 운명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꿈에서 봤던 장면에다가 살 좀 더 붙여서 써봤음 이런 식의 쓰기 경험이 처음이라 좀 어색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