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강의] 18. 제 4 장
제 1 절
子曰. 道之不行也, 我知之矣; 知者過之, 愚者不及也.
자왈, 도지불행야, 아지지의; 지자과지, 우자불급야.
1장에서 자사의 대논설을 제외하면, 2장은 '시중', 즉, '때에 맞추는 것'의 중요성, 3장은 '능구', 즉, 그것을 오래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였습니다. 그런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공자는 독특한 캐릭터들을 동원하는 데, 2장에서는 '소인', 3장에서는 '민'이 그렇습니다. 소인은 무기탄, 즉, 때를 가리지 못하고, 민은 오래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때, 우수한 사람보다는 뭔가 모르게 모자란 사람을 예로 들 때 청중들의 몰입도가 더 높습니다. 알게 모르게 청중들은 자신을 우수한 사람보다는 열등한 사람에게 감정이입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은 열등한 곳에서 출발해서 각자의 지위에 올랐으므로, 자신이 우수한 인재인지는 확신할 수 없어도, 적어도 열등했거나 지금도 열등하다는 사실은 확신하고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 중용에서도 우수한 사람은 '군자'정도가 언급되는 반면, 열등한 캐릭터들은 다양하게 제시됩니다. 어쩌면 중용이라는 글은 우수한 사람보다는 못난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한, 어쩌면 당연한 교육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4장에는 네 가지의 캐릭터들이 새로 등장하는 데, 그 첫번째가 4장의 1절에서 제시하는 '지자知者'와 '우자愚者'입니다. 지자는 '많이 아는 사람', 우자는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잘 아는 사람도, 잘 모르는 사람도 모두 '열등한 사람'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우자는 그렇다 쳐도, 지자를 열등한 사람으로 제시하는 것이 공자의 매우 탁월한 수사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지불행道之不行이란 말에서 '도'는 중용의 도인데, '행'은 '실천하다'의 뜻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용의 도란 '때에 맞는 행동을 오래 하는 것'이라고 요약한다면, 그 어렵지 않아 보이는 것이 잘 안되는 원리를 공자가 설파하려는 것입니다.
아지지의我知之矣는 '내가 그 이유를 안다'로 새길 수 있습니다. 어쩌면 불필요해 보일 수도 있는 이 말이 들어간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을 공자만의 특별한 '경험'에 의거하여 대답하려고 하기 때문일 거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객관적 사실보다는 개인적 경험에 의한 것이라고 제시함으로써 우자보다는 '지자'들의 서운함이나 비판을 피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지자 - 우자'의 대립에 있어서 우자들이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그저 자기 주변에서 그치게 마련이니까요. 세상을 시끄럽게하고 사람들을 전반적으로 못살게 구는 사람들은 그래서 '지자'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흔히 많이 안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죠. 법을 전공하는 사람들, 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 각종의 기술자들...사회가 이런 분들에게 의지하는 것도 크지만, 이들이 제대로 된 중용을 실천하지 않아서 생기는 부작용이나 피해도 무시 못할 정도인 것도 사실이고 보면, 공자의 '지자 - 우자' 동시 비판은 타당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권력과 지식을 갖춘 '지자'집단의 반발은 아무리 공자라고 해도 움찔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아지지의'는 '나는 안다'라고 확신했다기 보다는 '내 생각은 이렇다'라고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해서 슬면시 논쟁을 비끼려는 의도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다음시간에는 대체 공자는 지자 - 우자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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