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요?
어째서 나는 읽지도 않을 만화책, 좋아하지도 않는 캐릭터의 피규어, 봐도 봐도 재미없는 애니메이션을 억지로 즐기려 했을까? 어째서 나는 인터넷 공간에서 악플을 달고 익명성의 방패 뒤에 숨어 비겁한 짓을 일삼는 인터넷 공간의 무뢰한들의 방종을 그토록 동경하며 스스로를 현실에서도 가상에서도 겁쟁이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거세되어버린 공격성을 그리워한 것일까?
아마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일 거다. 나는 그런 일들을 내심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나 자신은 다르다는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런 한심한 일들을 스스로가 하게 된다면 스스로를 견딜 수가 없었기에 묶여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나는 특별하다.’ 평생에 걸쳐 가지고 있던 생각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남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것도 내가 모난 돌이었기 때문이야. 언젠가는 내 모난 부분이 개성이 되어 빛을 발할 날이 올 거야.“ 정도의 생각일 것이다. 이 생각이 처참할 정도로 산산조각 난 건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린 뒤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도, 익히지도, 쌓아 올린 것조차도 없었다. 그저 근거 없는 자신감의 잔재만이 점차 재가 되어가는 것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남들보다 뛰어나고 우월해야 하는데.”
”이상적인 ‘나’가 아니면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거야?“
거북이에게 추월당한 토끼의 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나는 공포에 휩싸여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몇 번이고 이상적인 ‘나’가 되기 위해 성장통이라는 명목으로 강박에 가깝게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자해하였다. 그것이 굳은살이 박이는 과정이라 믿으며. 그러나 박차만을 가하기만 한다면 말은 멀리 달리지 못한다. 내면의 나와의 교감 없이 스스로에게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실망해 체벌을 가한 끝에 나는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반항심리랄까, 나는 ‘나’가 요구했던 것과 정반대가 되고 싶어졌다. 한심하고 비겁하고 지질한 생활을 구가하고, 그런 자신의 역겨움을 가상 공간에서 숨김없이 방출하는 그런 인간이. 그러나 ‘나’는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부끄러워서 포장조차 뜯을 수 없었던 라이트 노벨 표지가 더 이상 내가 서 있을 곳이 없음을 고하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가상에서도.
나는 나누어지고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한 마리 쓸모없는 해충과 점차 ‘나’의 원형에서 멀어져 가며 아름다운 껍질을 뒤집어쓴 채 달콤한 환상을 제공하는 망령으로. 망령이 된 ‘나’는 더 이상 나를 채찍질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해충인 채로 내가 망령인지, 망령이 나인지 모를 꿈속에서 비로소 안식을 얻을 수 있었다.그러나 망령이 보여주는 허상은 마약과 같은 것이어서 영원히 마음의 구멍을 채워줄 수는 없었다. 내가 정신이 아닌 육체에 칼을 들이댈 때 즈음 망령은 완전히 내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가 보여주는 허상 없이는 나는 현실의 결함에서 비롯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망령이 보여주는 허상이 끝나고 나서는 그 배의 고통이 밀려왔다. 그리고 더 이상 망령이 나를 위로해 주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바닥에는 선홍색의 피가 흩뿌려졌다.
-2장: 유년기의 끝
생각해보면 내가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한데에 구체적인 근거나 확신같은 것이 동봉되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저 남들과 달라보이기 위해 폼을 잡고 다니며 수박겉핥기로 배운 지식으로 자신을 치장하다가 나 또한 스스로에게 속아넘어간게 화의 근원이었다.
“마치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공작의 깃털을 꽂은 까마귀같아. 이런 걸 지적 허영심이라고 부르는 거겠지. 바보같아. 병아리가 알을 깨고 부화하길 바라면서 속이 텅 빈 장난감 알을 품고있는 바보 어미 닭, 그게 내 진짜 모습이야. 어째서 모든게 끝난 뒤에 깨닫는 걸까.”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아. 이대로 아무것도 쌓아올리지 못한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채 모두에게서 잊혀지고 싶지않아. 만약 이대로 끝나버린다면, 나는 태어나지 않은 거나 다름없으니까.”
나는 아직 나의 길이 이어지고 있음을 믿고 싶었다. 하얀 머리의 소년이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그래... 너무 오래 쉬었어. 이젠 가야해. 이 놀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뒷골목의 타일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직후에, 평생에 걸쳐 축적된 에너지가 폭발하듯 축복이자 저주와도 같은 황홀함이 몰려왔다. 나의 유년기는 그제서야 끝이 났다.
-3장: 태양을 짊어진 시지프스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때의 황홀함이 나 자신마저 불살라버리는 통제 할 수 없는 불꽃이였음을 잘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평생을 거짓으로 꾸미며 살아온 나는 내가 어느 정도 그릇의 장작인지는커녕, 자신의 몸에 불이 붙은 줄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스스로에 대해 무지했다. 순간의 황홀하고도 폭발적인 의욕과 영감은 나를 비로소 ‘나’로 있게 해주었지만, ‘나’는 너무나도 빠르게 나에게서 분리되어 나가버렸고, 혼자 남은 초라한 나를 채찍질하고 비난해댔다. 나는 나여서는 안되었다. ‘나’였어야 했다. 나는 저물어가는 태양을 온 몸이 타들어가면서 푸른 하늘에 붙잡아두려 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태양은 아득한 수평선 너머로 달아나버렸고, 나는 다시 해가 뜰 날만을 기다리며 홀로 추위 속에서 화상투성이의 몸을 추위에 던져놓는 미친 짓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다시 태양이 뜨는 날 태양을, ‘나’를 푸른 하늘에 완전히 붙잡아 놓기 위해 그 어느 불꽃에도 녹아내리지 않을 강철과도 같은 몸을 단련하기 위하여.
-4장: 인간 실격, 그리고 쓰레기 실격
“그만하고 싶어. 정말 정신이 찢어지는 것 같아.”
“너는 남들보다 우월해야해, ‘나’처럼 이상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넌 대체 뭘 위해 존재하는 거야?”
“세상에 나보다 더 못한 사람도 많잖아, 그러니까 제발, 제발... 나를 용서해줘...”
“개들은 쓰레기나 다름없어! 너도 그들처럼 평생 방구석에서 틀어박혀 사회의 쓰레기인채로 부모님 등골이나 빨아먹고 싶다면 그렇게 하던가!”
“그렇게 해서라도 이 고통에서 벗어나 안식을 취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어!”
나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한다함은, 역으로 말하면 남을 열등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나는 남을 혐오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죽도록 미워하고 되고 싶어하지 않은 인간상. 냄새나는 오타쿠, 멍청한 SNS 중독자, 열등감에 찌든 악플러. 나는 그들을 멀리서 관망하고 그들과는 다른 행동을 하며 그들과는 다른 스스로에 대해서 우월감을 느꼈던 게 아닐까? 나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내가 내 의지로 그런 존재가 되길 바라리라고는...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나는 용서받고 싶었다. 원초적인 행복을 누리며 마음에 한 점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뻔뻔한 인간을 동경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알게 무엇인가? 당시 나는 ‘나’에게서 벗어나 행복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만 있을 것 같았다.
오글거리는 긴 제목의 라노벨, 원색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이 난무한 저질 만화들을 나는 생필품 마냥 수집하기 시작했다. 알바를 통해 번 돈은 전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를 사는게 들이부어버렸다. 변태적인 복장의 피규어는 나에게 이제 같은 값의 두꺼운 전공 도서보다 유의미한 소비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제 나는 드디어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나야말로 오늘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기대와 희망에 가득차 라노벨의 1권을 집어들었다. 그 때 느낀 감정은 아직 생생하다. 내 몸 안에 피와 살이 아닌 기계장치와 기름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에서 작위적인 거부반응이 기계적으로 나타나며 나는 라노벨의 껍질조차 뜯지 못한 채 그대로 다시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나’의 그림자를 쫓아가며 스스로 정신에 대못을 박는 정신나간 생활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5장: 변신
그리하여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는 뒤틀리고 녹아내려 원형조차 알아볼 수 없는 벌레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즈음, ‘나’ 또한 점점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나’...였던 무언가는 이제 아름다운 외모와 우월한 능력의, 현실에서도 볼 수 없는 내가 그리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개화하여 내가 쫓아 갈 수 없는 먼 곳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더 이상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나를 보듬어주었다. 그는 현실에서 벗어난 존재답게, 나에게 환상을 보여주었다. 그가 보여주는 환상의 나라에서 나는 비행기 조종사가, 용감한 전사가,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나의 내면에 잠재된 어리숙하고 유치한 심지어는 뒤틀리기까지한 욕망을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었다.
아직 미완성임
님 그거 앎? 사람들은 생각보다 노력하며 살지 않고 많이 변화하지 않아요. 제가 정석이의 가능성을 높게 본건 엄청난 노력량이 보였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정석이에게 변화의 계기만 준다면 정석이는 저 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한 거죠.
절 아시는 것 같은데 그쪽이 뉘신지는 저는 잘 모르겠어요;; 헷갈리네요 - dc App
십년아 약 잘 챙겨 먹으라고 내가 널 어케 알아. 그냥 니 글 보면 보이잖아. 존나게 노력했다는 게.
글은 거짓말을 안해.
네 - dc App
그리고 제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한 단편 소설을 2년 동안 써왔어요. 그래서 합평받으러 가니까 소름 끼치는 소설이라고 하더라고요. 솔직히 말해서 멘탈이 많이 나갔어요. 하지만 그제야 저는 저를 가두고 있던 알을 다시 한번 깰 수 있었어요. 그다음의 이야기가 제가 문예 갤러리에서 했던 일들이죠. 솔직히 말해서 노력만 한다고 사람이 특별해 지지는 않아요.
하지만 노력하며 끝임없이 변화하는 자는 결국 특별해 질 수 밖에 없어요.
왠지 아세요? 그들은 끊임없이 성장하거든요. 그러니 당신이 행복해질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하고 끊임없이 변화하세요. 그럼 결국에는 도달하게 될 거에요.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나의 세계에 말이죠.
너도 내가 등단하면 찾아와라. 약은 잘 챙겨 먹고.
근데 님 철학 쪽으로 가면 개쩔긴 했을 듯.
아 그리고 내 이야기 아니였다면 미안.
자폐적이긴 한데 (지 얘기밖에 안하냐) 자폐적이면서도 뭐가 재밌네 결말이 어케 날지 궁금함
자기 이야기 하고 세상 이야기도 있었으면 - dc App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시 쓰려니까 주인공은 알 속에서 꿈을 꾸다가 알 밖의 현실을 자각하고 알을 깨려다가 절망해 다시 꿈에 빠져들고 있으니까, 알 밖의 외적 이야기보다 내면의 자아에 집중하는게 나을것 같아서 이렇게 쓴거임. 안 그러고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를 자세하게 적으면 내면의 자아에 대한 독자들의 몰입이 깨질 것 같기도 하더라고 - dc App
자기 이야기 끝나고 뒷부분에 이어 적는 부분에서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