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수아라고?”

나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내 눈앞에서 아른거리던, 그저 검은 연기 덩어리들이 하나의 구체로 합쳐진 듯한 미지의 존재를 훑어보며 말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세로로 길쭉한 타원형의 몸체에 뭉툭한 수족이 붙어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고, 오뚜기를 묘사한 픽토그램에 검은색 물감을 입힌다면 지금 내 눈앞에 놓여 있는 것과 비슷한 형상의 존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내 질문에 대한 영혼의 대답이 이어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나는 과연 내 눈앞에 아른거리던 이 미지의 존재가 어떤 방식으로 대답을 하게 될지 궁금해한 것도 사실이었다. 영혼이 손가락의 구분이 없는 그 뭉툭한 막대기와 같은 팔을 흔들어 보일지, 혹은 길쭉한 타원형의 몸뚱아리에 달려 있던 혹과 같은 머리가 까딱하고 움직일지 말이다. 하지만 자신을 수아라고 주장하는 이 정체불명의 영가는 내가 생각한 어느 쪽으로도 의사 표현을 해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것은 일렁이는 영혼의 명암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내 질문에 대한 동의의 표시를 해 보였을 뿐이었다. 갑작스럽게 영혼이 점멸하자 깜짝 놀란 나는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서고 말았지만, 이 광경을 지켜보던 영혼은 그 모습마저 우습다는 것처럼 공중에 부유한 채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고,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치고 나서야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잠깐의 시간 동안 눈앞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영가가 내게 적의를 갖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고, 이에 조금이나마 영혼, 달리 말하자면 귀신을 마주치게 된 것에 안도할 수 있었다.

 

 

 

 

‘...이건 내가 만들어낸 환상일까? 아니면 도올의 사념이 만들어낸...’

녀석의 심상 공간에 진입한 이래, 비교적 멀쩡한 정신 상태에서 초자연적인 존재와 마주치는 것도 모자라 직접적인 대화까지 나누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눈앞에 서 있던 영가에게 처음과 달리 쉽사리 말을 걸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소녀의 영혼이 방방거리며 내 주위를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 멈춰 선 채로 마치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는 제대로 된 얼굴을 갖고 있지 않았고, 따라서 눈, , 입 등 얼굴에서 표정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을만한 표지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나를 주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마치 내가 취할 다음 행동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영가의 태도에 나는 조금이라도 위축되지 않을 수 없던 것이었다. 그러나 수아가 내게 건넨 한 마디는, 방금까지 내가 소녀의 영가에 대해 품었던 생각. 즉 혹시나 그녀가 나를 방심하게 만들었다가 해치려 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어느 정도 사라지게 만들었다. 비록 그녀가 내게 말을 전달하는 방식. 마치 머릿속에 거대한 스피커를 틀어놓은 것 마냥 웅웅거리는 소녀의 목소리는 내게 미약한 두통을 유발했지만 말이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는 단지,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상대를 만나게 되어 흥미로울 뿐이니까요. ...지금까지 이 정원을 거쳐간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당신은 확실히...평범한 축에 속하진 않네요.”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멀쩡...!”
일단 당신의 오른쪽 눈부터가 평범하지 않은걸요?”

“!”

소녀는 태연하게 이 말을 내뱉었지만, 나는 그제서야 내가 오른쪽 눈을 싸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황급히 오른쪽 눈을 가리려 시도했다. 물론 다음 번에 이어진 소녀의 말 덕분에, 나는 더이상 오른쪽 눈을 가리려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감추려 드실 필요 없어요. 어차피 이곳엔 당신을 보는 눈도 없는걸요?”

“...너는 대체...”

 

 

 

 

소녀의 말에 천천히 눈을 가렸던 팔을 내린 나였지만, 나는 여전히 소녀에 대한 경계를 풀 수 없었다. 나이에 맞지 않는 소녀의 침착한 태도, 스산함이 느껴지는 외관에 비해 따뜻한 소녀의 목소리 등은 나를 안심시키기보다는 그녀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킬 뿐이었고, 또 방금 전처럼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듯한 영혼의 시선을 받았을 때에는 의도적으로 그것의 시선을 회피하려고까지 한 나였다. 더군다나 소녀는 내 오른쪽 눈이 달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저 나를 슬쩍 흘겨보는 것만으로도 내 오른쪽 눈의 특이점을 눈치챘다는 것은 내가 소녀를 경계할 만한 충분한 이유를 제공해 준 것이나 다름없기도 했다.

저를 기억하시긴 하는 거죠?”

?”

당신이 너무 소극적인 것 같아서요. 혹 당신은 저를 기억하지 못하는데, 제가 당신에게 먼저 다가간 것이 되려 오해만 불러일으킨게 아닌지 걱정되네요. 저는 아까도 말했지만 당신을 해칠 생각이 없습니다. 만약 당신을 해치려 했다면, 이렇게 당신 앞에 제 정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비록 가짜였을지라도 저의 모습을 한 포식자가 아현 언니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녀의 옆에 있던 사람으로 제가 기억하고 있고...또 당신이라면 제 부탁을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잠깐만, 방금 뭐라고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