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전자담배를 피워봅니다.

들이마실 때 달달한 포도 향과 옅은 잿빛 향이
제 입과 폐를 가득 채웁니다.

코일이 타버렸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담배의 액상이 맛있었던 탓이었을까요,
아니면 전자담배의 외형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고장 났다는 게 나와 같은 처지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모두 다였을까요.

저는 매일 하루 종일 그 전자담배를 계속 피웠습니다.

들이마실 때는 너무나도 달았습니다.

그 후 니코틴이 제 머리를 헤집어 놓고
끊어낼 수 없게 만듭니다.

이번에는 내쉬어 봅니다.

탄 맛과 씁쓸함, 그리고 희미한 포도 향이
입안에 남습니다.

코일을 바꿔보고자 하지만, 코일은 바뀌지 않습니다.
코일만 바뀐다면 좋을 텐데,

더 좋은 향이 날 텐데 옅은 잿빛향도 없어질텐데…

코일을 바꿔보고자 하지만,
손에 닿는 건 늘 같은 상태입니다.

왜일까요.

전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타버린 코일은 바뀌는 게 싫은 건지,
아니면 두려운 건지,
자신이 타버린 코일임을 인정하기 싫은 건지.

어느 순간부터 서늘한 잿빛 향만 느껴집니다.

두렵습니다.

이 코일이 완전히 타버린 건 아닐지.

객기였나 봅니다.
코일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제 생각이.

닿지 못했나 봅니다.
제 진심이.

코일이 저를 떠납니다.

코일에게 비수를 찌르고 또 찌릅니다.

너무나도 예리하고 날카롭게,
그때의 나는 분명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미 쏟아낸 말들은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비수를 다 찌르고 나니,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되려 울어야 할 코일이 아닌
제가 울고 있습니다.

조금만 늦게 말할 수 있었다면,
조금만 덜 상처 주었더라면.

그 생각이,
뒤늦게 목을 조여옵니다.

전자담배를 다시 피워봅니다.

잿빛 향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저 전자담배를 오래 피웠기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그 전자담배를못 잊었기 때문일까요.

아직도 제 입에는 달면서도 씁쓸한 잔향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