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쓴다. 소설에 대한 명확한 이해에 도달했다는 자신감이 묻어나는 글이었다. 어쩌면 쉬는 기간 틈틈 써온 소설을 퇴고하여 쏟아내듯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근기간의 다작. 또한 중심인물인 사내가 소설가라는 점, 곳곳에 백민석 자신이 투영된 증거가 엿보여 혹 이것은 그의 감춰져있던 지난날의 초상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그러나 나로선 분명 잘 쓴 글이었으나 이런 감성이 통용되는 시기 또한 너무 잘 가버린 옛날 옛적의 그것이란 생각이 듦. 아쉽다.
댓글 4
나는 단편집 사놓고 읽어보진 않았는데 주위 사람들 평가보면 공백기간이 있어도 역시 클래스는 클래스인 것 같다. 읽어본 작품으로는 절필 전에 낸 러셔,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목화밭 엽기전 세권. 나때는 백민석 보다 그로테스크한 작가가 많이 나올 때라 별 감흥 없었는데, 구십년대에 독보적이었다더라. 그 작품관이.
유하(203.226)2014-09-05 21:53:00
서양문화가 우리보다 약간 빠른데 너무 서양의 대중화 속도와 같이 가셨지. 백민석은 특정한 미적 끌림이 있어야 읽히는 작가잖아. 나는 그쪽 취향이 아니라... 박민규는 그래도 가끔 삶과 죽음처럼 절대적 명제를 다루는데 파반느는 아예 감성적이었고. 삽질하는 기분이었어. 곡을 잘 붙인 무의미하고, 무용한 가사의 노래? 물건 빨리 사고 나가라는 마트에서의 막을 수 없는 노래? 같았어. 안보윤, 편혜영도 마찬가지지만 백민석은 스스로 작품 내에서 그로테스크 자체를 의미화했던 적도 없고 아직도 미감을 잘 모르겠어.
ㅁㄴㅇㄹ(14.54)2014-09-06 05:29:00
서양 서사 보면 이미 그로테스크 자체가 작품 내에서 기능화 되고 있거든. 그 정서가 공포를 배가시키고. 한국 일부 그로테스크 작품 보며 아, 이걸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읽었을까, 하는 생각이 안 들어. 그러고 보면 한국문학은 집요한 데가 있어. 시류 중에 작가 한 사람 혹하면 그 흐름이 이후에 어디로 갔건 말건 계속 같은 짓. 발전이 없어. 왜 계속 눈 뜨고 있지 않은 건지.
ㅁㄴㅇㄹ(14.54)2014-09-06 05:35:00
한국의 그로테스크... 특정 작가 보며 좀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었거든. 작품 내에서 의미가 되지 못한 그로테스크는 결국 원죄가 되니까. 모방범죄 양산밖에 더 하겠어.
나는 단편집 사놓고 읽어보진 않았는데 주위 사람들 평가보면 공백기간이 있어도 역시 클래스는 클래스인 것 같다. 읽어본 작품으로는 절필 전에 낸 러셔,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목화밭 엽기전 세권. 나때는 백민석 보다 그로테스크한 작가가 많이 나올 때라 별 감흥 없었는데, 구십년대에 독보적이었다더라. 그 작품관이.
서양문화가 우리보다 약간 빠른데 너무 서양의 대중화 속도와 같이 가셨지. 백민석은 특정한 미적 끌림이 있어야 읽히는 작가잖아. 나는 그쪽 취향이 아니라... 박민규는 그래도 가끔 삶과 죽음처럼 절대적 명제를 다루는데 파반느는 아예 감성적이었고. 삽질하는 기분이었어. 곡을 잘 붙인 무의미하고, 무용한 가사의 노래? 물건 빨리 사고 나가라는 마트에서의 막을 수 없는 노래? 같았어. 안보윤, 편혜영도 마찬가지지만 백민석은 스스로 작품 내에서 그로테스크 자체를 의미화했던 적도 없고 아직도 미감을 잘 모르겠어.
서양 서사 보면 이미 그로테스크 자체가 작품 내에서 기능화 되고 있거든. 그 정서가 공포를 배가시키고. 한국 일부 그로테스크 작품 보며 아, 이걸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읽었을까, 하는 생각이 안 들어. 그러고 보면 한국문학은 집요한 데가 있어. 시류 중에 작가 한 사람 혹하면 그 흐름이 이후에 어디로 갔건 말건 계속 같은 짓. 발전이 없어. 왜 계속 눈 뜨고 있지 않은 건지.
한국의 그로테스크... 특정 작가 보며 좀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었거든. 작품 내에서 의미가 되지 못한 그로테스크는 결국 원죄가 되니까. 모방범죄 양산밖에 더 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