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줄여서 하기. 젠장이다. 오늘부터는 말도 짧게 해야겠어. 합평을 막 하고 문장이 길다는 지적을 받은 후였다. 그러니까 나는 방금 동인지 합평에서 불편한 비평을 들었다. 그 쓴소리란. 그것들을 줄이자면 바로 이러이러하다. 내 언어들은 나열된 것이 꼭 의미 없이 복잡하기만 한 부적 무늬 같다. 의미가 중구난방하다. 쓸데없이 물 찬 문장은 읽기에 불편하고 말만 어렵다. 물론 작정하고 읽어낸다면 모를 것 같진 않지만, 굳이 알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꼭, 필요한 말 같지도 않다.
나는 무기력했다. 자꾸 아이쿠 싶었다. 그들을 은밀히 씹어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앞에선 겸손하고 진지한 척했었지만, 잠깐 혼자 떨어지자마자 이렇게 씹어대다니. 내 가식이 새삼스러웠다. 밖으로 나와 짧게 바람을 쐬고, 이런 때는 보통 담배라도 한 대 꺼낸다는데, 싫어서 피지 않는 담배가 문득 그리웠다. 담배로 만든 시 같은, 내 마음을 식힐 물건이 필요했다. 난 눈앞 풍경에 집중했다. 담배 대신이었다. 할머니, 이제 곧 노을처럼 춥게 저물지도 모를, 나무, 조락, 나뭇잎, 립스틱의 빨간 신호, 필리핀 여행, 한자 학원, 하루에 다섯자씩만 암기하면, 페로몬 같은 사거리, 단단한 바닥...... 단어들을 마구잡이식으로 나열했다. 승용차, 사나운 외제차의 앞부분, 인파, 원조 떡볶이, 웬수 같은 패션.......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이냐, 곧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사람들은 내 앞으로 걸어갔다. 처음에는 한 사람씩 따로따로 보며 '늙은, 젊은'부터 시작해서 '부드러운, 단단한, 조잡스러운' 등의 구체적인 형용사를 떠올렸다. 내 나름의 섬세한 관찰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곧 그것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보았다. 그것들은 내가 아니다. 철저히 타인이다. 이런 생각. 점점 그것들은 각각에서 하나로, 흙더미처럼 뭉쳐졌다. 그것들은 '나 아님'으로 얽히고설켜서 거대한 눈뭉치 같은 모종의 형태를 띠었다. 아니, 그것들은 차갑고 단단하게 떠다니는 유빙 같기도 했다. 바다는 이제 얼어서 더이상 바다가 아니다. 철저한 타인, 나를 압도하는 자연.
나는 나무처럼 답답했다. 우두커니 서서 이게 무슨 짓이람. 보도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앞만 바라보고 있다. 그 꼴은 마치 그것 같은, 멍청이. 눈앞에 길게 펼쳐진 타인의 경계로 들어가고 싶었다. 지금 내가 떠나 온 고향 같은 합평회를 등뒤로 내려놓고, 눈앞에 펼쳐진 타인 속으로 스미고 싶었다. 그 속에서 나는 부드러워지고 어색해지고, 나는 내가 아니게 되는 것. 나를 타인처럼 여기자. 온화하거나 관대하지 않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타인으로 뭉친 얼음덩어리는 시원하게 녹아내렸다. 물줄기가 힘차게 흘러내렸다. 내 생각은 대륙처럼 역동적이고 거대했다. 나는 곧 '부드러운, 단단한, 조잡스러운'보다 더 사적이고 구체적인 것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20대 후반, 백수, 대학교 졸어, 남자, 소득 없음, 알바 없음, 군대 제대, 여친 없음, 문청, 몸무게 62...... 나의 사적인 부분들. 하, 한숨이 저절로다. 멍청이. 물줄기는 내 한숨 속에서 녹은 걸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타인은 모두 내 한숨에서 비롯된 것이지 않는가? 조급했다. 어서 뭐라도 되야 될 텐데. 내 얼굴이 떠올랐다. 올해도 나뭇잎이 떨어졌다.
하 'ㅜ' 중이병ㅇ.
가운데 2문단은 왜 쓰인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합평(합동평가인가요?합동비평인가?)에서 까이고 난 화자의 혼란스러운 심리상태 묘사인지, 길을 걸어다니면서도 나는 명사와 형용사를 조물조물해서 글을 쓴다구 하는 자아도취인지 잘 모르겠네요
몰라 적당한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