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별을 뿌린 듯 모래알들이 빛을 내는 록펠 마을 앞 모래사장, 그 위에서 서로 마주하고 있는 이들 탓에 여름임에도 서늘함이 느껴졌다.

 바닷가 쪽에는 고양이 인어상을 뱃머리에 달고 있는 배가 있었는데, 이를 배경으로 여러 고양이가 두발로 선 채로 육지 쪽을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저마다 검을 한 자루씩 들고 있었고, 그 모양이 커틀라스라고 하는 검과 같이 보통의 검에 비해 검신의 폭이 넓고 그 끝이 뾰족한데 길이는 짧았다.
 검을 잡고 있는 자세나, 간격을 일정하게 하고 있는 것이 꽤 훈련은 받은 집단이었다.
 가끔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면 짧고 긴 털들이 따라 움직여 몸에 불길이 일렁이는 듯했다.

 반대로, 해안가에서 육지로 통하는 낮은 언덕에는 낫이며 흙이 묻은 쇠붙이 같은,  농사에 쓰이는 장비로 무장한 인간들이 있었다.
 제각각인 자세와 상기된 얼굴로 띄엄띄엄 서 있는 것이 훈련이라고는 전혀 받아보지 않은 듯했다.

 이곳엔 간간이 마른 목에 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을 뿐 언제 일이 터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 누구 하나 소리를 내서 주의를 흐트러지게 하지 못했다.

 -우적우적

 이 한사람 빼고는 말이다.

 -우적우적 꿀꺽

 록펠 마을 자경단들과 그리 떨어져 있지 않은 나무 둥치에 앉은 이방인은 자기 머리만 한 빵을 뜯어 먹고 있었다. 흡사 극이라도 한편 관람하는 듯, 퍽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자경단 청년들은 앞엣것들과의 기 싸움을 벌이던 것도 멈춘 체 그 이방인을 쏘아보기 시작했다.

 "어이"

 그들 중 누군가가 볼멘소리로 불렀다. 어금니도 꽉 깨물고 있는 것이 아마 기분이 썩 좋지 않은 듯했다. 이방인은 입안에 들어있던 빵 덩어리들을 볼 한쪽으로 밀어 넣으며 답했다.

 "네? 왜 그러세요?"
 "거기 자네는 이 상황이 지금 이해가 안 되는 건가?"

 오히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이방인은 눈을 크게 뜬 체 살짝 눈썹을 올렸다.
 정말 모르는듯한 표정이다.

 "아니, 무슨 구경 났다고 거기서 그러고 있느냐는 말이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지금 우리를 놀리는 건가? 같은 인간이면 오히려 편을 들어줘도 모자를 판에."

 점점 더 언성이 높아지는 것이 손에 들고 있는 도리깨로 후려칠 기세다.
 한 손에 빵을 들고서 볼 안 가득 밀어 넣던 이방인은 '인간'이라는 말에 움찔하는 듯했다. 볼에 있던 것들을 억지로 목에 밀어 넣고서는 당황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 네, 당연히 그래야죠! 같은 인간인데!"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던 이방인은 뒷목을 한번 긁적이더니 언덕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에 오히려 당황하는 자경단 일행이었다.


 "두목, 저기 누가 옵니다. 아무래도 저쪽의 대장인가 봅니다."

 디고는 승선용 계단 꼭대기에 앉아 있던 네모에게 귓속말을 했다. 네모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협상할 준비가 되었나 보군"

 네모는 모자를 들어 앞으로 걸어 나오는 이를 한번 슥 보더니 일어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소금끼 머금은 나무계단이 제법 시원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인간이면' 응당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따위의 말에 일단 반사적으로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뒤에 있는 자경단 사람들도 이걸 원한 건 아니었던지 당혹감이 얼굴에 묻어 나왔다.
 고개를 돌려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던 이방인은 누군가의 강렬한 시선을 느끼고는 다시 정면을 보았다.
 그곳엔 검은 해적모를 쓴 회색 털의 고양이가 있었다. 푸른 눈과 안대를 한 반대쪽 눈. 그는 축축한 모래를 밟고 서서 이방인을 잠시 바라보았다

 -저벅저벅

 네모는 천천히 걸어 나와 이방인과 3걸음 정도를 사이에 두고 멈춰 섰다. 그리고는 팔짱을 낀 체 이방인의 행동을 기다렸다.
 이방인과 네모가 바라보기 시작한 지 몇 분이 지났을까, 이방인은 무언가를 결심했는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번엔 꼭 성공하리라'

 그리고 춤인지 뭔지, 행위예술인지 뭔지, 아무튼 뜻 모를 움직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고 대뜸 앉았다 일어섰다 하더니 두 눈을 가리고 뒤로 눕기도 하고 갑자기 이리저리 손뼉을 치기도 했다.
 이에 네모는 무표정인 체로 계속 바라보기만 했다. 입술 하나도 흔들리지 않는 완전한 포커페이스, 얼음살처럼 푸른 안광이 상대를 기죽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이미 이방인은 자신만의 세계를 항해하고 있었다.

 거진 10분쯤 지났을까. 이방인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쯤 하면 알아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방인은 네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번의 작은 바람 소리

 -피식

 한쪽만 올라간 입꼬리. 멀리 있었기에 소리는 듣지 못한 자경단 무리였지만, 그 표정만 봐도 네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무시당했군"
 "무시당했네"
 "고양이한테 무시당했네"

 열심히 몸을 움직이던 이방인의 얼굴이 대장간의 가마에서 갓 뽑아낸 쇠뭉치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건데!'

 물론 아무도 시킨 적은 없다. 하지만 이미 머리에 피가 몰리기 시작했는지 이방인은 바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모욕감을 주다니.
 그녀가 제 성질에 못 이겨 허리춤에 있는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린 그 순간, 네모는 한쪽 무릎을 굽혀 허리를 숙이더니, 긴 발톱을 하나 내어 모래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난 뒤 해 질 무렵,
 태양이 수평선에 반쯤 고개를 내민체 안녕을 고하고 있다. 붉은 노을과 함께 편대 비행을 하던 철새떼들 아래로 '헤엄치는 고양이호'가 빛무리를 가르며 지나간다.

 언덕에 서서 그 광경을 보던 자경단 일원들은 들고왔던 농기구를 챙겨 들곤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갔다. 언덕에 앉아서 멍하니 노을을 보던 윌리엄은 입을 열었다.

 "녀석들이 고양이라는 건 알았지만..."

 내심 힘이 빠지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개다래 열매라니..."


 네모는 모래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양이 주제에 꽤 잘 그리는 그림이다. 그림을 다 그린 네모는 앞발을 들어 자신이 타고 온 배를 가리켰다.
 나뭇가지에 달린 늙은 호박의 모양의 열매와 챙 달린 모자를 쓴 고양이의 모습.
 
 몇 시간 후, 그들은 코코와 개다래 열매를 싣고는 록펠마을을 떠나갔다.


 "두목"

 뱃머리에서 수평선을 보고 있던 네모는 대답 대신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저기에 그 열매가 있는 것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해를 바라보고 있던 네모의 눈에서 푸른 해가 지고 노을이 피었다. 잠시 선수상에 앉은 갈매기를 보던 네모는 입을 열었다.

 "내가 예전에 벌거숭이 꼬마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지"

 물론 기억하고 있다. 네모 두목이 젊었을 때 겪었다는 일. 난파된 체 해변에 떠내려왔을 때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

 "아하. 여기가 그곳인가요?"

 그러고선 다시 한 번 물었다

 "한번 찾아보시지 그러셨습니까?"

 네모의 눈에 피던 노을이 붉게 물든 모래밭으로 변하였다

 큰 인간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울고 있던 붉은 머리의 꼬마 인간, 그리고 그들을 뒤로 한 체 작은 배에 노를 젓는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의 한쪽 눈에선 피가 흐르고 있고, 작은 인간은 뺨을 내리 맞으면서도 큰 인간들을 놓지 않았다. 노를 젓던 고양이는 작은 인간을 여러 번 쳐다보고는 계속 노를 저었다.

 네모는 고개를 한번 저은 후, 모자를 눌러 눈을 가리며 답했다.

 "찾지 말아야 할 추억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네모는 방향타에 몸을 기댄 체 작은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물어보니 벌거숭이들의 노래라 했다. 디고는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음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콧수염 남은 역시나 미소를 띠고 있다.

 "20닢입니다. 손님"

 이방인은 갈색 주머니 안에 손을 넣어 한참을 꼼지락거리더니 그제야 동전을 꺼내었다. 잠깐 동전을 보고 눈을 또르르 위로 한번 굴리고는

 "괜찮을까."

 라고 하며 콧수염 남자의 손에 동전을 털어 주었다. 먼지가 한 움큼 떨어지는 것을 보니 어디 깊숙한 곳에라도 박아 뒀던 것 같았다.

 "2층에서 창가 쪽 제일 끝방입니다,

 이방인이 올라가는 것을 끝까지 보고서야 표정을 푼 콧수염 남은 동전에 붙은 먼지를 털기 위해 램프를 가까이했다. 한참을 걸레로 먼지를 털던 콧수염 남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동전 앞면에는 작은 글씨로 '352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후아아-"

 문 맞은편에 나 있는 네모난 창 하나, 조금 낡았지만 짚을 많이 넣어 편안해 보이는 침대, 그리고 모서리 끝이 둥그스름하게 마무리된 붙박이장. 제법 안락함이 느껴지는 방이었다.
 
 이방인은 후드를 벗어 문 옆에 있는 옷걸이에 걸고 침대에 쓰러졌다. 자주색 실로 수 놓인 하얀색의 튜닉과 갈색의 짧은 바지, 그리고 하늘색의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한 쌍의 길쭉하고 뾰족한 귀.
 잠시 뒤척이던 그녀의 베게사이로 코고는 소리가 세어 나오기 시작했다.

 -드르렁드르렁, 퓨우.

 에렐의 일과는 그렇게 끝이 났다.

 

 

 

 

봐주신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