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바람이 내 몸의 모든 틈새를 비집었다.

 

그저 내 전신의 털들이 바람이 지나간다는 것을 속삭일 뿐.

 

'나는 곧 있으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작별을 고한다.' 그 곧이라는 때는 나는 당연히 모른다. 신도 모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10톤 덤프트럭이 닌자같은 속도로 나를 조용히 치고 갔음에도 저승사자를 보내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피는 바닥에 흥건히 고였다. 심지어 비릿한 냄새도 난다. 난 당연히 내가 현재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대자로 누워있었다.

 

의식의 종말. 쌔까만 밤하늘은 무정하게도 마지막 햇빛을 허락지 않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그믐달의 여명이라도 잡아보려 손을 뻗었다. 나는 순간 눈 뜨고 내 눈을 의심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아니, 식물인간도 되지 않았다. 다른 손을 들어보았다. 오른손과 똑같이 생긴 손이 스르륵 눈앞을 가렸다.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허무한 행복. 천천히 몸을 일으키니 온 몸이 찌릿하고 아려왔다.

 

하지만 이것은 고통이 아니다. 자위한 뒤의 쾌감과 비슷한 아림이다. 마약한 듯이 눈을 부르르 떨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해명이 안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속도로를 종종걸음으로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