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1~20세까지 자아를 키웁니다.(경험치를 쌓아가며 레벨업을 합니다.)

 

이유는 부모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양육'의 미명하에 교육으로서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번에 경찰서에 택시 요금 안내서 붙들려 간적이 있는데 비행청소년들이 보이더군요.

'양육' '교육'으로도 못고치는 이 경찰의 담배를 보자니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20~30대까지 자아를 프로즌시킵니다. (자아를 얼립니다.)

 

자아를 얼린다는 것은 사회의 차가움을 알고 나도 사회의 차가움을 알아야겠다 라고 하는 것

(필기체, 싸인, 감사합니다 어디어디입니다, 밥 한번 먹자, 네네(예예) (여보세요 할 때 전화에서 네네 하는 것))

이런 것들이 모여서 프로즌 에고가 완성됩니다.

 

30대이상을 말하지 않은 이유는 1~30대까지가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받아들이면서 살길래 30대까지 거의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찌질이처럼 살아야합니까?

저도 왕따 당하기 전에는 찌질이처럼 살았을테지요.

고려대의 자퇴하는 여자분이 남긴 글을 보면

프로즌 에고와 자아가 느껴집니다.

하긴 sky에 드니까 그런 글을 쓰는 거라고 느끼지만

그 사람의 자아에는 무엇을 해야 잘할까 하는 두려움이 내재되어있다는 것은

그 사람도 부정할 수 없을겁니다.

 

또, 중요한건 복합적 자아를 내재시켰다는 것입니다(시스템에)

상황상황마다 자아를 표현하는 계기가 다이나믹합니다.

(노래방에서 자기가 잘 부르는 노래 따라 부르는 것 같이)

 

제가 매우 무식하다고 해도 자아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있으니까요

(제 자아 렙이 ?50이라면 하나님은 1250, 보통 사람들의 자아 렙은 350미만입니다.)

 

에고와 자아, 같은 말인데도 프로즌 에고와 그냥 자아를 비교하면 차이점이 생기는건 신기한 일입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