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는 찢어질수록 낯선 지문을 남긴다

촘촘한 유기물의 화음이 그렇게 질긴 것이라니


하나의 문서의 문단의 문장의 단어의 어떤 의미도 남지 않도록

검은 빛과 흰 빛이 순수한 물질이 되도록


설원의 발자국을 지워가는 초식동물들은 가늘게 울고

살아남은 낱말들은 기생할 문장의 줄기를 잃어

가볍게 흩날린다


침묵을 생산하는 공정은 이렇게도 소란스럽고

밀집된 소음은 서로 쓰다듬으며 서로를 포갠다


너는 '친애'라는 단어를 놓쳐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자음과 모음을 모아 일기를 쓰려 한다


잘게 다져진 음절들이 상자 속에 쏟아지고

상자속에는 내가 평생을 다해도 하지 못할 말들이 담겨있다


상자를 흔들어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만들면

너는 낯선 편지를 쓰는 것을 그만둔다


잘게 다져지고 몽실몽실 부푼 글자들이 내린다

어깨위 나무 가지위에 몇줌씩 쌓이는 글자들


나의 머리 위로 '별'과'돌' 이 내려앉았다

가벼운 것들은 어느새 날아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