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주의 구조>를 읽고 있는데 알쏭달쏭 괴상망측하지만 희한하게 매력적인 내용이 있어서..내 방식으로 요약하고 내 생각을 덧댄 글을 올려봅니다.
저기 테이블에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의 원고가 제본되지 않은 채 놓여 있다. 열린 창문으로 거센 바람이 몰아치자 대부분의 원고는 방바닥에 떨어진다. 톨스토이가 원래 쓴 순서대로 떨어졌을 리 만무하다. 질서정연하게 페이지 순으로 놓여 있던 <전쟁과 평화>의 원고가 한 순간에 무질서한 쓰레기로 돌변한 것이다.
나는 여기 테이블에 앉아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얼음과 섞은 잭 다니엘을 마시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쟁과 평화>의 원고가 톨스토이가 쓴 순서대로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을 당시 내 술잔에는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정사각형의 얼음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고 창문으로 들이닥친 돌풍이 원고를 어지럽히고 난 다음 들여다 본 내 술잔에는 적당히 녹아서 둥글어진 얼음이 남았다. 질서정연했던 얼음의 결정이 풀어져 원래의 물과 얼음이었던 성분이 어지럽게 섞인 것이다.
"모든 물리계는 고(高)엔트로피 상태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선언하는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르면 이 두 사례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제본되지 않은 원고가 섞이고 상온에 노출된 얼음이 녹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란 얘기다. 자연현상이란 원래 저(低)엔트로피 상태에서 고엔트로피 상태로 변하길 좋아한다.
이 말은 시간이 일정한 방향성을 띤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다. 질서정연한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 죄다 엉망진창으로 뒤섞이는 방향성. 엉망진창으로 뒤섞이지 않는다 해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테이블 위에 원고 대신 계란이 놓여 있었다고 하자. 열린 창문으로 거센 바람이 불면 계란은 굴러 떨어져 깨질 것이다. 이것은 물론 엉망진창으로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걸 의미한다. 시간이 지나도, 바람이 불어도 계란이 깨지지 않는다면 어떨까. 보통의 경우라면 계란은 썪어문드러지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역시 '원고가 방바닥을 어지럽히는 쓰레기로 돌변'한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계란이 부화한다면? 계란 껍질이 깨지면서(여기까지는 굴러떨어져 엉망진창이 된 것과 같다) 병아리가 태어난다면 어떨까. 계란이 병아리로 바뀐 것은 오히려 질서의 정도가 더 늘어난 것, 즉 저엔트로피로 바뀐 것이 아닌가?
계란이라는 대상만 놓고 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아니, 틀렸다. 우리는 무슨 수를 써도 '계란이라는 대상만' 놓고 볼 수는 없다. 계란이 부화하기 위해서는 '열'이라는 외부 에너지가 개입해야만 한다. 이 열은 어디서 왔을까. 내가 앉은 이 방은 성능 좋은 보일러가 작동하는 곳이다. 그렇다. '열'은 보일러에서 비롯되었으므로, 결과적으로는 화석연료에서 온 것이다. 화석연료란 원래 땅 밑 깊숙한 곳에 있었다. '자연적'으로 지하에 있던 것을 '인위적'으로 뽑아 올린 것이다.
즉, 무질서가 증가했다. 엔트로피가 높아진 것이다. 계란이 병아리로 바뀌는 과정 역시 시간의 흐름이라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고엔트로피 상태로 이동하는 경향의 사례에 해당한다는 얘기.
그런데 어젯밤, 위의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들려주던 브라이언 그린은 난데 없이 이렇게 선언했다.
"미래로 진행되는 물리계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듯이 과거로 진행되는 물리계에도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위의 사례들에서 보았듯이, 그리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례들이 그렇듯이 시간이 흐르는 방향 쪽으로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엔트로피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지. 안 그래? 안 그런 사례가 있어?
원칙적으로, 안 그렇다고 한다. 젠장. 엔트로피는 미래를 향해서는 물론이고 과거를 향해서도 증가한댄다. 그러니까 내 술잔 속 얼음은 지금보다 30분 전에 더 녹아 있었다고 믿어야 한댄다. 왜냐하면 엔트로피에 관한 수학적 계산의 결과가 그렇기 때문이라고...내가 중1 때 수학을 포기한 건 오늘을 예견한 때문이었으리라.
내가 경험한 것(30분 전에 사각형 얼음이던 것이 녹으면서 둥근 모양으로 바뀐 것)은 과학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가끔 일어나는 통계적 요동"에 의해 형성되었다. 즉 확률적으로 지극히 희박한 현상을 아주 예외적으로 내가 봤던 것이며, 내가 본 현상을 포함해서 그 현상과 직접적 관계가 있는 물리계 전체의 엔트로피는 현재보다 과거의 경우가 더 높았다는 얘기다. 통계적으로 볼 때 내 술잔 안의 얼음이 사각형 모양으로 물과 완전히 구분돼 있었을 확률보다는 원래 물이었던 게 '반쯤 녹은 얼음'으로 변했을 확률이 아주 어마어마하게 더 높다고 한다.
바람에 흩어진 <사랑과 평화>의 원고로 돌아가 보자. 바닥에 흩어져 있는 원고를 주워모아 다시 던졌을 때 원래 원고의 순서대로 떨어질 확률보다는 뒤죽박죽으로 떨어질 확률이 엄청나게 더 높다. 계란이 굴러떨어져 박살이 날 확률과, 깨져서 곤죽이 돼 있던 계란이 원래의 계란으로 되돌아갈 확률 중 전자가 엄청나게 더 높은 것과 같은 이치다. 이처럼 우리 우주는 엔트로피가 더 높아지는 경우가 앞도적으로 더 많다. 즉 높은 엔트로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낮은 엔트로피가 아주 예외적이며 말 그대로 기적이라 부를 만한 현상이다. 그래서 확률적으로 내가 본 것은 '기적적 예외'이며 더 자연스러운 설명은 원래 물이었던 게 적당히 녹은 얼음으로 변했다는 거다.
만약 그렇지 않다는 걸, 즉 내 기억이 맞다는 걸 설명하려면 어떡해야 되나. 내가 비디오 카메라로 그 장면을 찍어서 여러분에게 보여준다고 하자. 앗, 비디오 카메라의 작동...엔트로피가 높아졌다. 과거에 찍은 그 영상을 통해 과거로 가려면 엔트로피가 높아진다. 그런 장치 없이 내 신용도만으로 설득하려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나는 내 기억을 두뇌에서 꺼내야 할 게다. 헛, 그렇담 내가 그 장면을 두뇌에 저장해 두었단 얘기가 된다. 아뿔사...이건 비디오로 화면을 저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남은 설명은...얼음이 물로 변한 걸 봤을 확률보다는, (통계적 요동에 의해) 잔에 담겨 있던 물이 저엔트로피 상태로 이동해서는 부분적으로 녹은 얼음이 되었는데 그게 마침 내 눈에 띄었다는 거다. 솔직히...내가 난독증에 걸려서 괴상하게 이해한 게 아닌가 지금도 반쯤은 의심된다.
아무튼..이 우주란 게 원래 그렇다고 한다. (우리의 상식처럼) 현재에서 미래로 갈수록 엔트로피가 높아지고,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현재에서 과거로 갈수록 엔트로피는 역시 높아진다. 얼음과 물의 사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우주의 역사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된다. 우리의 현재는 훨씬 더 질서정연했던 과거로부터 무질서하게 변해온 것인가? 그럴 리 없다. 지금의 인간과 6억년 전의 단세포 생물 중 무질서의 정도가 높은 쪽, 즉 엔트로피가 높은 쪽은 단세포 생물이다. 우리의 뇌는 고도로 진화한 결과물이다. <전쟁과 평화>의 원고를 던져서 순서대로 떨어질 확률보다 인간의 뇌가 만들어질 확률이 훨씬 낮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빅뱅 초창기를 떠올려 보자. 최초의 거대한 팽창 직후 우주는 기체들이 균일하게 퍼져 있던 상태, 즉 무질서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중력의 작용으로 기체들은 덩어리를 형성하며 군데군데로 뭉치게 된다. 즉 무질서(최초)에서 질서(얼마 후)로 이동했다. 이 둘 사이에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역시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균일하게 퍼져 있던 기체가 한군데로 뭉치기 시작하면 스스로의 중력에 의해 더욱 작게 뭉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 과정에는 엄청난 열이 발생해 엔트로피가 커진다. 즉 과거에서 미래로, 시간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엔트로피가 증가한 것이다. 결국 엔트로피는 미래로 갈수록 커지기도 하고 과거로 갈수록 커지기도 한다.
한쪽 방향으로 진행할 때 질서의 정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 현상은 결국엔 또 다른 무질서를 낳게 마련이다. 이쯤 오니 내 술잔 속의 얼음을 이해하는 방식에 조금 참고가 된다. 그러나...아직은 잘 모르겠다...
오, 재미있음. 물리를 문학과 술잔으로 시작하니 술술 읽히네요.
돗개, 너의 마음은? 고 엔트로피로의 일방 통행인가? 그나저나 무엇의 온 더 록인가 궁금하네.
v / 비유하자면.. 질서를 잡아가려고 노력하지만 뭔가를 알아갈수록 본질 자체가 무질서에 가깝단 걸 깨닫게 된다고 할까요..
테디봄터치 / 브라이언 그린이 교양서 발간뿐만 아니라 이론물리학 계에서도 나름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단 얘길 들었지만..일반 독자를 상대로 하는 교양서 발간에 힘을 기울이는 건 확실하고..그러다 보니, 즉 일반 독자를 상대하려다 보니 물리학 본연에서 약간 동떨어진 비유도 자주 만들어내는 건지도 모르죠.
내용 중 일부에서 제가 엉뚱하게 이해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전체적인 내용 자체는 책 내용을 요약한 겁니다. 수십 장 분량을 줄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제 생각이 들어갔고 거기서 에러가 발생했을 수도 있겠죠..어렵긴 무지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