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 전이다. 내가 입대신청한지 얼마 안 돼서 컨테이너로 찾아갔다. 사나이로 태어났기에, 해병대로 가기 위해 컨테이너 쪽에서 일단 전차를 내려야 했다. 컨테이너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전우애를 파는 노인이 있었다. 후장을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고작 전우애에 돈을 아끼나? 비싸거든 육군이나 가라 기열새끼야!"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해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박을 만큼 박아야 해병이 되지, 후장이 재촉한다고 명기가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박힐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서 깎아라 . 난 안 하겠네."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해병이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만들다가 놓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깎던 것을 잠시 두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피우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손을 넣고 이리저리 휘저어 보더니 다 됐다고 말한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후장이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황근출 해병님 사진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남자다워 보였다. 단단한 꼭지와 와 큰 포신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해병대에 들어가서 후장을 내놨더니 '박기' 범 해병님이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전에 아쎄이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해병님의 설명을 들어 보니, 속이 너무 좁으면 전우애를 다듬다가 사정을 빨리 하고 같은 포신이라도 힘이 들며, 돌기가 너무 없으면 전우애가 펴지지 않고 지치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꼭지는 함몰이면 쪽 빨아대고 손가락으로 돌리고 곧 손으로 당기면 다시 튀어나와서서 좀체로 후퇴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꼭지는 남자답지 못해서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꼭지를 꼬집을 때, 혀로 잘 녹여서 흠뻑 칠한 뒤에 볕에 쪼여 말린다. 이렇게 하기를 1000 번 한 뒤에 비로소 단단해진다. 물론 날짜가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스패너를 써서 직접 뽑는다. 금방 튀어나온다. 그러나 견고하지가 못하다.
크림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올챙이 크림을 사면 보통 것은 얼마, 윗질은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아쎄이의 것은 세 배 이상 비싸다. 눈으로 보아서는 아쎄이의 것인지 기열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전우애를 해서 뽑아낼 이유가 없고, 또 그것을 믿고 세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해병들은 악기바리는 악기바리요 꼭지 돌리기는 꼭지 돌리기지만, 전우애을 나누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해병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자랑스런 해병을 만들어 냈다.
이 후장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기열새끼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황근출 해병님의 올챙이 크림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첫 휴가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후에 알게됐는데 지나가던 땅개에게 전우애를 알려주다 복상사 하셨다고 한다.
오늘 컨테이너에 들어갔더니 '박기' 범 해병님이 새로 들어온 향우회 해병을먹고 있었다. 전에 덕강,건철이를 포신으로 쿵쿵 박아대서 먹던 생각이 난다. 아쎄이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악기바리 하는 모습도 볼 수가 없다.
악기를 자아내던 그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10년 전 후장깎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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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알게됐는데 지나가던 땅개에게 전우애를 알려주다 복상사 하셨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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