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아무생각없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사서 읽다가 머리를 너무 세게 맞아서… 혹시 철학을 입문할때에 독서 순서라는게 있을까요? 시대별로라던지… 학자별로라던데… 예를들어서 순수이성비판을 읽지 않으면 그 다음이 이해가 전혀 되지 않을거라는 글을 몇개 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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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일단 한 번씩만 읽어 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짧은 기간동안 많은 독서 추천.
철갤러 1(14.40)2024-07-19 22:10:00
답글
읽다가 마음에 드는 철학 발견하면 기억해둠.
지치거나 흥미가 떨어질 때쯤 기억해둔 철학으로 돌아가서 재독하고 그 철학자가 인용하는 철학 파보는거 추천
예를 들어 하이데거를 읽다가 하이데거가 까는 데카르트, 칸트에 대해 알아보는 식
하이데거가 후설의 현상학을 빌리는데 그럼 그게 뭘까? 하고 후설을 찾아보는 식으로 ...
근데 아마 하이데거가 마음에 들면 아마 비슷한 실존주의 철학자를 팔거임 그럼 한동안 실존주의를 파면 됨
근데 내 생각에는 하이데거가 기점이면 좋을 거 같음
하이데거 - 실존주의 - 포스트 모더니즘 - 구조주의
철갤러 1(14.40)2024-07-19 22:18:00
답글
끄덕끄덕 좋은 방법입니다. 저도 그렇게 철학서를 읽기 시작해서 나중에 칸트에 눌러앉았습니다. 철학도 문학과 마찬가지로 다독과 이끌림이 우선인 듯합니다. 이끌림과 다독은 항상 공존하죠.
고독사(125.188)2024-07-19 23:24:00
답글
14님, 그런데 정말로 실존주의 또는 실존(적)철학이란 게 존재합니까? 저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가령 하이데거와 사르트르를 어떻게 함께 묶을 수 있으며, 키르케고어와 하이데거를 또 어찌 함께 사유할 수 있나요?
고독사(125.188)2024-07-19 23:55:00
답글
무슨 대답을 드려야 할 지 모르겠네요… 실존주의가 존재하느냐 물으셨으니, 일단 존재하니까 책이 나온게 아닐까요? 라는게 제 대답입니다… 아니면 님 질문의 의도가 실존주의라는 이름 아래에 이 세 명의 철학자가 묶일 수 있냐 라는 건가요?
그러한 의도라면 전혀 무관하진 않다고 봅니다. 하이데거가 자기 본인은 실존주의가 아니라고 했지만 말이죠. 그래도 일단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가 칸트와 데카르트, 고대 철학자들을 거부하면서 내놓는 존재론 자체가 이미 실존적 존재론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연관이 없지 않지요… 이 실존적 존재론은 실존주의의 토대가 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철갤러 1(14.40)2024-07-20 00:33:00
답글
이러한 점을 떼놓고 봐도, 저는 철학 자체가 세상 만물과 묶어서 함께 사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문학은 삶이고 삶은 문학이지요. 또한 문학은 철학과 시의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강한 이성을 밀어 붙여도 시적인 표현이 없으면 읽을 수 없고, 아무리 부드러운 감성으로 보듬어도 이성이 없으면 허황된 말처럼 느껴지지요.
하이데거를 가장 먼저 접하길 바라는 이유는 하이데거의 철학에는 이성만 있는게 아닌 감성이 있습니다. 기존에 이성에 입각하여 실증과학과 변증법적 사유로 삶 바깥에서 말장난처럼 쌓은 철학이 아닌 삶 속으로 들어가서 실존을 찾는 새로운 지평을 연 철학입니다.
철갤러 1(14.40)2024-07-20 00:33:00
답글
논외로 본 작성자님 기준으로 생각해보자면, 존재론을 공부하게 되면 존재론 자체가 엮여있는 개념 (과학적 존재론, 변증법적 존재론, 인식,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비, 플라톤 오성, 아퀴나스의 스콜라 철학) 과 철학자가 많다보니 겸사겸사 많은 공부가 될 수 있을거 같습니다. 또한 삶 속에 몰입하다. (내-존재) 뭐 이런 개념은 니체가 떠오르기도 해서 다른 철학자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좋은 철학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철갤러 1(14.40)2024-07-20 00:35:00
순수이성비판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쇼펜하우어나 헤겔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 마나 한 소리입니다. 정말로 그 말이 맞다면 칸트를 전혀 모르는(모른다고 고백한) 님이 쇼펜하우어를 읽고서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기분을 느낄 수가 없죠.
고독사(125.188)2024-07-19 23:29:00
답글
칸트가 흄(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을 읽은 뒤 뇌내 깊이 타격을 입고 순수이성비판을 써내려 갔듯, 또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 세계)를 읽은 니체의 뇌내 충격으로 인해 현대의 신생철학이 촉발되듯, 철학사의 변곡점은 정통(곧 강단철학)에서보다 오히려 변방의 우연들에서 만들어집니다. 이오니아에 맞선 엘레아로부터 플라톤이라는 인류사의 큰 봉우리가 솟아났죠.
일단 한 번씩만 읽어 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짧은 기간동안 많은 독서 추천.
읽다가 마음에 드는 철학 발견하면 기억해둠. 지치거나 흥미가 떨어질 때쯤 기억해둔 철학으로 돌아가서 재독하고 그 철학자가 인용하는 철학 파보는거 추천 예를 들어 하이데거를 읽다가 하이데거가 까는 데카르트, 칸트에 대해 알아보는 식 하이데거가 후설의 현상학을 빌리는데 그럼 그게 뭘까? 하고 후설을 찾아보는 식으로 ... 근데 아마 하이데거가 마음에 들면 아마 비슷한 실존주의 철학자를 팔거임 그럼 한동안 실존주의를 파면 됨 근데 내 생각에는 하이데거가 기점이면 좋을 거 같음 하이데거 - 실존주의 - 포스트 모더니즘 - 구조주의
끄덕끄덕 좋은 방법입니다. 저도 그렇게 철학서를 읽기 시작해서 나중에 칸트에 눌러앉았습니다. 철학도 문학과 마찬가지로 다독과 이끌림이 우선인 듯합니다. 이끌림과 다독은 항상 공존하죠.
14님, 그런데 정말로 실존주의 또는 실존(적)철학이란 게 존재합니까? 저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가령 하이데거와 사르트르를 어떻게 함께 묶을 수 있으며, 키르케고어와 하이데거를 또 어찌 함께 사유할 수 있나요?
무슨 대답을 드려야 할 지 모르겠네요… 실존주의가 존재하느냐 물으셨으니, 일단 존재하니까 책이 나온게 아닐까요? 라는게 제 대답입니다… 아니면 님 질문의 의도가 실존주의라는 이름 아래에 이 세 명의 철학자가 묶일 수 있냐 라는 건가요? 그러한 의도라면 전혀 무관하진 않다고 봅니다. 하이데거가 자기 본인은 실존주의가 아니라고 했지만 말이죠. 그래도 일단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가 칸트와 데카르트, 고대 철학자들을 거부하면서 내놓는 존재론 자체가 이미 실존적 존재론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연관이 없지 않지요… 이 실존적 존재론은 실존주의의 토대가 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을 떼놓고 봐도, 저는 철학 자체가 세상 만물과 묶어서 함께 사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문학은 삶이고 삶은 문학이지요. 또한 문학은 철학과 시의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강한 이성을 밀어 붙여도 시적인 표현이 없으면 읽을 수 없고, 아무리 부드러운 감성으로 보듬어도 이성이 없으면 허황된 말처럼 느껴지지요. 하이데거를 가장 먼저 접하길 바라는 이유는 하이데거의 철학에는 이성만 있는게 아닌 감성이 있습니다. 기존에 이성에 입각하여 실증과학과 변증법적 사유로 삶 바깥에서 말장난처럼 쌓은 철학이 아닌 삶 속으로 들어가서 실존을 찾는 새로운 지평을 연 철학입니다.
논외로 본 작성자님 기준으로 생각해보자면, 존재론을 공부하게 되면 존재론 자체가 엮여있는 개념 (과학적 존재론, 변증법적 존재론, 인식,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비, 플라톤 오성, 아퀴나스의 스콜라 철학) 과 철학자가 많다보니 겸사겸사 많은 공부가 될 수 있을거 같습니다. 또한 삶 속에 몰입하다. (내-존재) 뭐 이런 개념은 니체가 떠오르기도 해서 다른 철학자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좋은 철학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순수이성비판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쇼펜하우어나 헤겔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 마나 한 소리입니다. 정말로 그 말이 맞다면 칸트를 전혀 모르는(모른다고 고백한) 님이 쇼펜하우어를 읽고서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기분을 느낄 수가 없죠.
칸트가 흄(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을 읽은 뒤 뇌내 깊이 타격을 입고 순수이성비판을 써내려 갔듯, 또 쇼펜하우어(의지와 표상으로서 세계)를 읽은 니체의 뇌내 충격으로 인해 현대의 신생철학이 촉발되듯, 철학사의 변곡점은 정통(곧 강단철학)에서보다 오히려 변방의 우연들에서 만들어집니다. 이오니아에 맞선 엘레아로부터 플라톤이라는 인류사의 큰 봉우리가 솟아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