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고대 학파를 능가하는 보혜사 성령의 능력

 

보혜사 성령은 주예수그리스도님께서 십자가 대속 및 부활을 통해 전세계에 상속된 삼위일체 위격(휘포스타시스) 중에 보혜사 역할을 하시는 거룩한 영이시다. 성령께서는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통해 박해 속에서 우리를 보호 및 변호하신다.

그렇다면, 보혜사 성령이 있기 전에는 어떠했는가? 헤겔은 이오니아 학파가 일자에 대하여 단순히 존재론을 넘어 인식화하고 그러한 일자(一子)를 추상화했다는데에 의의를 둔다. 문제는 객관적으로 검토했을 경우에 이오니아 학파 및 엘레아 학파를 비롯한 고대 헬라철학에 있어서 왜 박해가 있었는가?

초기에 아낙사고라스는 누스라는 개념을 상정한다. 만물의 동작과 질서를 부여하는 우주적 정신이나 마음을 의미하는데, 사물에 내재된 다수의 종자를 분리하고 조직하여 우주에 부여하는 원리이며 이러한 혼합 하에서 누스라는 우주적 정신의 작용으로 회전 및 운동이 야기되어 만물이 생성되고 변화하며 누스는 제 생명체를 운동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때, 각 개물에는 종자가 내재되었는데, 운동을 통해서 종자가 분리되어 만물이 생성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아낙사고라스의 누스는 추상적 사고의 특성상 각 개물애 내재된 종자를 사상화(捨象化)하여 우주의 보편적 운동에 추상적 사고로서 일반화한 추상물이다.

운동이라는 것마저 누스를 통한 정신적 원리가 작용하였는데, 정작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상 창조주의 거룩한 목적을 지닌 창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의 형상대로 그 형상을 조성할 질료대로 구성되고 창조되어 초기 창조부터 거룩성이 있어야 한다. , 죄성이 아니라 거룩이 필요하다. , 보혜사 성령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보편적 민족의 복음전파 이전에 이스라엘에 복음이 개별적으로 국한되었던 시기에, 소크라테스를 보라.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지정한 신을 불신한데다가 신에게 불경건했다는 혐의로 처형을 당하였다. 소크라테스는 변론에서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도 있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이 상속된 시기에는 더 이상 박해가 없다. 왜냐하면, 첫째로 주예수님은 청년에 공생애를 하셨고, 30세에 대속 및 부활하시지 않았는가? , 주예수님부터가 청년이어서 박해를 할 근거가 없고, 청년들을 만나지 말라고 할 근거가 없다.

둘째, 신에게 불경건했다는 부분마저, 주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것이나 섬김을 한 것은 초기에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비난했어도, 정작 지금은 일요일에 응급실도 그렇고 병원은 365일을 해야 한다.

셋째,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보라!! 복음 전파의 역사를 보라!! 이제 중국마저 바이두에 성경 강해 영상도 있고, 보수 개신교가 장악한 한국도 주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함부로 박해를 못한다. 그러니, 국가가 지정한 신을 믿지 않았다느니, 만인 제사장 시대에 바리새인이 무슨 자격으로 이러냐고 주예수님에게 따져 물은 건 더 이상 할 수 없다.

이러한 구변과 지혜는 보혜사 성령님께서 주시는 구변과 지혜이시다. 특히, 보혜사 성령님께서는 정죄보다도 상담까지 해 주신다, 경건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해도 인본주의 상담에서는 타인에게 해 안되면 계속 하라고 할 때에, 보혜사 성령님께서는 괜찮다고 하시면서도 계속 경건을 부어주신다고 하셔서 위로와 실질적으로 더 경건해지게 조성해주신다.

따라서, 보혜사 성령님은 자연철학에서 세계를 일자로 일반 및 추상, 사상화한 것을 능가하는데다가, 그러한 성령님은 박해로부터 우리를 방어해주셔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은 물론, 실수해도 정죄가 아니라 위로와 더불어 대안과 인도를 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