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평평론의 참/거짓과 같은
지구의 물리적 성질을 묻는 문제는,
물리적인 관찰을 통해 그 객관적 실재성을 입증할 수 있는
이론적 대상 즉 물리적/경험과학적 대상이지만,
자유의지 존재의 참/거짓 문제는
하늘이 두 쪽 나지 않는 이상 그 진위를
영원히 알 수 없는 불가지론에 가깝다.
한마디로, 자유의지는
앎/이론/인식론적/경험적인 대상이 아니라,
생각/희망/믿음/실천/도덕/인간적 대상이다.
이처럼 칸트는 이론적으로 자유의지 및 신/영혼 존재의
참/거짓을 증명하려는 이신론/스콜라주의적인
모든 시도들이 인식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기에,
그런 시도들이 증명 불가능하며 불필요하다고
비판하는 대신에,
도덕적 행위의 가능성을 마련하고
인간평등 사상에 기초한 인간성(존엄성)을 언명하기 위해,
자유의지의 현존을 선천(선험/초월)적으로
이미 전제된 사실로서 받아들일 것을 요청했다.
"나는 신앙(믿음)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지식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칸트의 이 말과
"그(칸트)는 신을 앞문으로 내쫓고
뒷문으로 들여보냈다."라는 세간의 평가는
칸트 사유 체계의 핵심인 두 축의 종합적인 연결, 즉
순수이성비판에서 실천이성비판으로 아무런 모순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그의 거대한 "사유 기획"을
적절히 관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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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는 성립 불가능 하죠. 도덕의 요청(의무)에 의해서 닿을 수 없는 지평선을 향해 나아가듯 즉 완성된 성립을 향해 비판적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그러한 비판은 그 자체로 희망이고 믿음의 형식일테지요. 인간 즉 인간 이성의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필연적인 숙명이기도 합니다.
이성이 도달해야 할 종착지라고 이해하면 쉬울 지도요. 유토피아/이데아/구심점으로도 이해될 수도 있고요.
그렇죠. 그런 전제 자체가 비판/비판의 과정이라고 이해하셔도 될 겁니다. 우리 인간의 이성은 그 본성상, 끊임 없는 무한한 비판을 통해 언젠가는 저 지평선(자유)이 다다를 수 있을 거라는 희망/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칸트가 인간을 이해한 방식입니다. 멋잇게 포장하면, "인간은 고난 속에서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저도 칸트와 니체가 그 출발은 다를진 몰라도, 종착지에서는 통하고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