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자해는 방향성과 경고를 제공하지. 마치 대통령을 탄핵하는것처럼 자아를 처형할수도 있어. 고통은 이 불안정함에서 오는 육체적 생존적 본능이고 회피는 고통이 섞인 자아의 생존 본능이다.
vellyache(benellim4)2025-12-11 1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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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 "화해"할 순 없을까요 ? 그래요, 고통 속으로 들어기지도 말고, 힘을 들여서 고통을 멀리하고 회피하자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지혜로운 회피는 파괴의 회피가 아니라, 화해의 회피라고 생각되어집니다.
대수확(agreed9416)2025-12-11 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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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처형은 또 다른 혐오를 낮는 거 같습니다.
대수확(agreed9416)2025-12-11 15: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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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는
대수확(agreed9416)2025-12-11 15: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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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할수 없는, 의미없는 고통은 죄악이지
의미있는, 방향성을 가진 고통은 삶의 의미라고 샹각해.
자아의 처형은 자의적이냐, 타의적이냐, 의도되었는가 아닌가에 따라 평가할수 있을것같아. 애초에 이 기능은 정말 극단의 상황에서만 쓰이는 기능인지라 정말 위험하지. 그리고 언제나 악용되지. 그래도 이건 없으면 안돼
vellyache(benellim4)2025-12-11 15: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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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우신 거죠. 이해합니다. 제 생각에, 화해는 본질적으로 생명의 목적을 갖고 있는 듯 보입니다. 우리가 문학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고통을 "승화"한다고나 할까요. 그것은 단순히 타율적으로 고통을 회피하는 것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생명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에서 의미가 있겠죠.
@vellyache
저는 고통의 회피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회피가 꼭 파괴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겠죠. 저는 고통을 회피하는 방식이, 화해인가 아니면 파괴인가의 문제로 이해했어요.
저는 파괴는 허용할 수 없되 화해로 가야된다, 님께서는 파괴를 허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 거 같네요.
대수확(agreed9416)2025-12-11 15: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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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확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파괴를 허용하지 않는다라...
vellyache(benellim4)2025-12-11 15: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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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llyache
네, 상당히 두렵죠 ㅋㅋ. "원수를 사랑하라."는 급이니까요.
대수확(agreed9416)2025-12-11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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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확
물리적으론 그게 정답일지 몰라도 인간 내부, 사상적으론 상당히 논란이 있겠는걸
vellyache(benellim4)2025-12-11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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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llyache
음 , 방금 말씀 주신 부분하고, 저의 사상하고는 조금 차이가 있는 듯 해요. 이 부분은 제가 더 자세히 설명을 드려야 될 부분이겠군요.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파괴와 화해를 내적인 정신적인 부분으로 국한 짓고 있어요. 물리적으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대수확(agreed9416)2025-12-11 15: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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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확
뭐라 나는 절대적으로 반대가 되아야한다고 생각해.
물리적으로 비파괴와 평화의 절대성을 강조하고
인간 내면적으론 적극적인 혁신과 창조 혁명이 필요하다고 봐. 극단적이지 않는 선에서 말이지
vellyache(benellim4)2025-12-11 15: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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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llyache
그러니까 어떻게 행동해야 될 지는 논의가 필요하겠으나,(가만히 있는 건 동의하지 않아요, 행동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행동에 논의가 필요하겠지만요.) 일단은 "번뇌하지 말자 !"
대수확(agreed9416)2025-12-11 15: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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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llyache
음. 그러니까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물론 물리적으로 평화를 추구하긴 해야 되잖아요 ? 근데 그 평화를 추구하는 게 정신이 번뇌하지 않고 잠잠한 형식으로서 확신을 가질 수 있겠으나, 물리적으로는 행동하긴 해야 되는데 그 물리적인 정답을 찾는 과정이다. 물리적으론 그 구체성에 있어서 확신할 수 없다.
대수확(agreed9416)2025-12-11 16: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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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확
음... 나는 불교적 사고에 대해 무지해서 더이상 답할수가 없군... 내 생각엔 서로 단어만 같고 완전 다른 생각을 하는것 같아
vellyache(benellim4)2025-12-11 16: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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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llyache
그러게요. 사실, "정신 자해란 무엇인가"부터해서 서로 떠올린 게 달랐던 거 같네요 ㅋㅋ 저는 "강요/강제/속박/혐오/폭력"의 이미지로, 아마도 님은 "비판/탈피/이동/진보"의 이미지로 떠올렸던 것 같군요. 그렇다면, 님 생각이 맞을 겁니다.
정신 자해는 방향성과 경고를 제공하지. 마치 대통령을 탄핵하는것처럼 자아를 처형할수도 있어. 고통은 이 불안정함에서 오는 육체적 생존적 본능이고 회피는 고통이 섞인 자아의 생존 본능이다.
흠 .. "화해"할 순 없을까요 ? 그래요, 고통 속으로 들어기지도 말고, 힘을 들여서 고통을 멀리하고 회피하자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지혜로운 회피는 파괴의 회피가 아니라, 화해의 회피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자아의 처형은 또 다른 혐오를 낮는 거 같습니다.
낳는
회피할수 없는, 의미없는 고통은 죄악이지 의미있는, 방향성을 가진 고통은 삶의 의미라고 샹각해. 자아의 처형은 자의적이냐, 타의적이냐, 의도되었는가 아닌가에 따라 평가할수 있을것같아. 애초에 이 기능은 정말 극단의 상황에서만 쓰이는 기능인지라 정말 위험하지. 그리고 언제나 악용되지. 그래도 이건 없으면 안돼
두려우신 거죠. 이해합니다. 제 생각에, 화해는 본질적으로 생명의 목적을 갖고 있는 듯 보입니다. 우리가 문학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고통을 "승화"한다고나 할까요. 그것은 단순히 타율적으로 고통을 회피하는 것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생명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에서 의미가 있겠죠.
저도 두렵습니다. 나를 침범하는 사람 말이에요. 그렇기에 이해합니다.
@대수확 무슨말을 하는건지 모르겠군. 나도 의미없는 고통엔 회피를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해.
@vellyache 저는 고통의 회피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회피가 꼭 파괴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겠죠. 저는 고통을 회피하는 방식이, 화해인가 아니면 파괴인가의 문제로 이해했어요. 저는 파괴는 허용할 수 없되 화해로 가야된다, 님께서는 파괴를 허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 거 같네요.
@대수확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파괴를 허용하지 않는다라...
@vellyache 네, 상당히 두렵죠 ㅋㅋ. "원수를 사랑하라."는 급이니까요.
@대수확 물리적으론 그게 정답일지 몰라도 인간 내부, 사상적으론 상당히 논란이 있겠는걸
@vellyache 음 , 방금 말씀 주신 부분하고, 저의 사상하고는 조금 차이가 있는 듯 해요. 이 부분은 제가 더 자세히 설명을 드려야 될 부분이겠군요.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파괴와 화해를 내적인 정신적인 부분으로 국한 짓고 있어요. 물리적으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대수확 뭐라 나는 절대적으로 반대가 되아야한다고 생각해. 물리적으로 비파괴와 평화의 절대성을 강조하고 인간 내면적으론 적극적인 혁신과 창조 혁명이 필요하다고 봐. 극단적이지 않는 선에서 말이지
@vellyache 그러니까 어떻게 행동해야 될 지는 논의가 필요하겠으나,(가만히 있는 건 동의하지 않아요, 행동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행동에 논의가 필요하겠지만요.) 일단은 "번뇌하지 말자 !"
@vellyache 음. 그러니까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물론 물리적으로 평화를 추구하긴 해야 되잖아요 ? 근데 그 평화를 추구하는 게 정신이 번뇌하지 않고 잠잠한 형식으로서 확신을 가질 수 있겠으나, 물리적으로는 행동하긴 해야 되는데 그 물리적인 정답을 찾는 과정이다. 물리적으론 그 구체성에 있어서 확신할 수 없다.
@대수확 음... 나는 불교적 사고에 대해 무지해서 더이상 답할수가 없군... 내 생각엔 서로 단어만 같고 완전 다른 생각을 하는것 같아
@vellyache 그러게요. 사실, "정신 자해란 무엇인가"부터해서 서로 떠올린 게 달랐던 거 같네요 ㅋㅋ 저는 "강요/강제/속박/혐오/폭력"의 이미지로, 아마도 님은 "비판/탈피/이동/진보"의 이미지로 떠올렸던 것 같군요. 그렇다면, 님 생각이 맞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