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우리는 보이니까
고상한 생각/일상적인 생각/정신병적인 생각
이 셋은 정말 한 끗발 차이라는 것을
이것들이 서로 막 차이가 있는 게 아님
큰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숙고해보면 꽤나 비슷비슷하고 거기서 거기임
감각/감정만 조금 전환하면 즉 관점만 조금 전환하면
정신병적인 생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음
비정상인하고 정상인하고 정말 한 끗발 차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정신병이 있다고 저들 혹은 나 자신을
같은 종이 아닌 이질적인 존재로 보거나 혐오하는 것은,
살아 있는 생명의 말/새롭게 변화하는 희망의 말
(동적인 비판)
즉 사람을 살리는 겸손함이 아니라,
["쟤는 잘 될 수 있다.", "쟤는 변할 수 있다."]
어떤 죽어 있는 공허의 말/그대로 고착화 된 절망의 말
(정적인 비난)
즉 사람을 죽이는 교만함이 아닐까
["쟤는 사람이 아니다.", "쟤, 심보가 왜 저러냐."]
이 글을 읽으면서 철학을 우월한 인식이라기보단 구조가 흔들릴때 필요한 응급처치라고 보면 더 잘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충분히 숙고하지 못했던 예리한 감각이시군요. 말씀처럼 (비유가 좀 그렇지만) "독일은 위대하다.""독일은 위대해질 수 있다."보단, "독일은 선물이다.""독일은 다시 평화를 찾을 수 있다."에 철학이 가깝다고 저도 공감이 되네요.
@대수확 의미가 잘 전달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어쩌면 기분나쁠수도 있는부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ㅇㅇ(223.39) 예리한 부분을 아주 잘 캐치하셨습니다. 다시 숙고해보니, 저는 <고상한 생각/일상적인 생각/정신병적인 생각> 이 부분은 확실히 비판(수정)이 필요하고, <["쟤는 잘 될 수 있다.", "쟤는 변할 수 있다."]> 이 부분도 역시 비판(수정)이 필요한 그런 감각이 드는군요. 이러한 부분들에서 확실히 정적/수직적인 피라미드가 그려지네요.
정신병은 에러고, 철학은 문자 그대로 소프트웨어 os같은거임. 그런데 정신과는 이걸 물리적인 문제로만 본다고. 전선을 뺏다가 꽂아봐라, 전압을 높여봐라, 어디 접촉불량 아니냐, 램을 비워봐라. 맞을수 있지 그런데 진짜 운영체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궁극적 질문인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 비어있거나 잘못되어있는데 경고음 줄인다고 그게 해결하는거냐고. 그게 굴러가겠냐고. 사람들은 철학을 학문적 진리가 아닌, 인간적 도구로써 다룰 필요가 있다.
깊이 공감합니다. 긿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철학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철학의 궁극적인 목표라 생각되어지는 실천과 관련이 있는 윤리학이 철학의 왕이자 철학의 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런데 봐. 이 좆같은 세상에 철학자가 어디 있는가? 도대체 일반 예술 미술 문학 창작을 넘어 일상적인 직무, 노동, 심지어 연애까지 쥐꼬리만한 철학이 들어가 있어도 사람들의 평가는 높아진다. 그런데 왜 이 씨발 전문 철학자라는 세상 모든걸 아는것 같은 교수, 엘리트, 소유주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가? 알량한 우월함에,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위험성에, 아무도 나서지를 않는단 말이다. 이 세상의 재현되어선 안되는 악이 활개치고 비도덕적 선택이 주류가 되고 무지가 이를 정당화 할때, 진정한 철학자는 어디서 뭘 하고있느냔 말이다. 보나마나 허구한날 과거의 인물 붙잡고 문법이나 다듬고 있겠지. 진리로서의 철학이 필요없다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은 철학이 필요하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 도움이 필요하단 말이다...
@vellyache 실제로 사용할수 없는 철학이 무슨 소용인가? 나는 알고도 움직이지 못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될 바에는, 때론 위선적이더라도, 완벽하지 않더라도 철학적 지식을 활용해 세상을 개선시키는, 행동의 논리와 근거가 있는, 조절 가능한 부드럽되 단단한 가치관과 개선된 인간에 대한 이해로 이전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
이 세상은 도구로서의 철학을 진지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철학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철학자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네요. 그리고 마음의 진실성 또한 느껴지는 것이 울림이 있네요. 철학을 완성시키기를 응원하겠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중한 의견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은 스스로가 되기 싫은 모습을 혐오한다. 세상에 정신병을 환영하는 인간이 어디있는가? 자연의 입장에서, 생존의 입장에서 무슨 이득이 있는가? 당연하지. 정신병자에 대한 거부감은 정상적인 나침반의 반대쪽 감정이다. 무언가에 가까울수록, 스스로 강하게 거부할수록, 그리고 이런 감정을 스스로 관측하지 않을수록 반발심의 혐오가 자라나 커지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정신질환은 단순히 생각의 종류가 아니라 지속성·기능손상·현실검증·행동/정서/수면/지각까지 묶인 상태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아. 네 글은 질환을 ‘사고 스타일’ 정도로 축소하는 인상이라, 앞에서 말하려는 ‘겸손/사람 살리는 말’과 톤이 충돌하는 것처럼 느껴져. 그리고 “정신병”, “정상/비정상”은 현재 맥락에선 쉽게 낙인 언어로 들린달까. 글의 목적(겸손/사람 살리는 말)과 정서가 충돌하기 쉬운 단어라서, 좀 그렇네.
차라리 이런 식으로 말하면 어떨까. 철학자는 정신질환을 타자화하기보다, 인간 경험의 스펙트럼으로 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고상한 사유와 일상적 사유, 그리고 왜곡된 사유는 완전히 다른 종족의 언어가 아니라 연속선 위에 있다. 다만 정신질환은 ‘관점만 바꾸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고통과 기능의 문제를 동반할 수 있어 치료와 지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건네야 할 말은 “너는 사람이 아니다” 같은 고착의 말이 아니라, “너는 여전히 사람이고,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정성스러운 댓글 감사합니다. 피드백 주신 점들은 100% 맞습니다. 바로 그 점에 비추어 볼 때, 저 스스로가 많이 읽고 배우고 노력해야겠다고 느낍니다. 매우 논리/예술적 정직성이 느껴지는 피드백으로서, 학술적인 글쓰기를 위한 방향성을 제시해주신 것 같습니다. 내공이 느껴집니다.
@대수확 진지하게 쓰신 글 같아 진지하게 답해봤어요. 기분 상해 하지 않고 들어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