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나도 14살 나도 그 시기에 필요한 만큼 최적화된 자아가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질문에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생물학적 나와 세상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해주는 생물학적 소프트웨어. - dc App
익명(118.235)2025-12-12 05:08:00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 에 대해서 생각해보는것도 좋아요
익명(223.39)2025-12-12 05:27:00
답글
그리고 철학이 어려운 말을 쓰는건 대부분 작가가 독자로 하여금 일부러 깊게 생각하게 돕는 표현방식이에요 그냥 보통방식으로 말해도 상관없지만 괜히 어려운 말을 쓰면 이게 무슨뜻이지? 하게되는거죠 그냥 평소하듯이 생각해도 괜찮습니다
익명(223.39)2025-12-12 05:31:00
답글
결국은 좋아하는 음식과 같다고 생각해요 뭐냐면 다른 철학자들은 피자를 좋아하는데 굳이 나도 피자를 좋아할 이유는 없짆아요?
익명(223.39)2025-12-12 05:34:00
답글
어려운말 쓰는거 이해안된다. 솔직히 전문 용어가 편리하고 정확한건 맞는데 쓸데없이 스팸하라고 있는건 아님.
vellyache(benellim4)2025-12-12 19:37:00
답글
철학이 너무 어려운 말인건 둘 중 하나임... 독자가 용어에 익숙하지 않거나, 철학자가 스스로도 잘 모르면서 썼거나
라플라스의백수(sinabroth)2025-12-12 06:01:00
답글
요즘은 인공지능이 굉장히 똑똑해져서 함께 탐구하면 꽤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거임
라플라스의백수(sinabroth)2025-12-12 06:01:00
실체적 관점에서는 12개월 24개월때 유아가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하는 어머니의 시선임 , 이게 초기 자아형성에 영향을 주고, 그 후에도 타자의 시선을 사회적 차원에서 내면화함 라깡이 무의식의 타자의 언어라고 하는것처럼, , 여기서 나와 타인의 경계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형성됨, 이 과정이 정상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면 타인의 본질이란거 자체에 대해서 숙고할수 없는 영구적 결함을 가지게 됨 즉 AI와 자신이 경계가 희미하고 타인과의 자신의 경계가 희미해짐,
rfi(59.7)2025-12-12 08:25:00
답글
본질적 관점에서는 (실제는 아니지만) 연속적 기억, 사실 인간은 기억이 조각나있는데 이 빵꾸난 기억의 구멍사이를 자신이 생성한 스크립트나 특정 내러티브로 메꿔버리는거 영화 메멘토같은거 보면
rfi(59.7)2025-12-12 08:26:00
답글
본인 철학적 관점에서는 내가 시작하고 타인이 멈추는 건강한 지점을 갖는것 , 즉 타인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공/무. 김지하 시인이나 유명한 라이트 노블식으로 말하면 <공의 경계> 라고 할수있음. 세상이 어디서 끝나는지 알아야 그 지점부터 내가 시작되고 내 존재의미가 끝나는 지점을 알아야 세상이 시작되는 지점을 알수있음. 근데 뭐 정신이 온전치 않는 경우(본인) 이 경계가 희미함. 모든게 하나로 보임 세상과 내가 희미하게 하나로 보이고, ㅋㅋ 사물의 존재방식도 나랑 결합되어 있음. 내가 세계의 의도고 세계가 나의 의도안에 있음. (도청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모 정치인을 보면 이런케이스)
rfi(59.7)2025-12-12 08:39:00
답글
@rfi(59.7)
어디서 얻은 지식입니까
철갤러2(14.39)2025-12-13 01:36:00
답글
introspection
rfi(59.7)2025-12-13 09:36:00
답글
@rfi(59.7)
대단하오
마포(status2467)2025-12-15 23:56:00
나로서의 나와 타인에게의 나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함. 본질이라는 것은 '그것을 빼면 다른 것'이라는 의미인데, 나로서의 나에서는 그런 게 없음. 심지어 사물에게도 나로서의 나를 사용할 수 있으니 더더욱 본질이 없다고 봄. 그러나 타인에게의 나는 구분 지어지는 특수성이라고 보면 될 듯. 어떻게 생겼고, 행동하고, 생각하는지 등 그것을 하나의 객체로 묶은 다음에 ~스럽다 라고 하는 거겠지.
철갤러1(59.26)2025-12-12 12:03:00
답글
그리고 나로서의 나에 본질이 없다는 건, 불교의 무아와도 같음. 말 그대로 진짜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는 것
철갤러1(59.26)2025-12-12 12:05:00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선 살아있는 인간의 본질은 없다고합니다 다만 상황에대한 선택과 의미부여만 있을 뿐이죠... 실존자에게 본질이 없다는말은 자유와도 같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개념입니다 - dc App
찌르레기(team2072)2025-12-12 12:22:00
님 정신분열증이 왜 있는지 알음? 나 라는개념은 누가 정해줄수도 있고 스스로 쪼갤수도 있음. 정체성은 절대적이지 않을 뿐더러 누군가 부여하거나 박탈할수도, 스스로 개조하거나 폐기할수도 있음. 나 라는것은 현재 가장 합당한 정신 시스템의 지휘권자임.
vellyache(benellim4)2025-12-12 19:34:00
모든 사유, 판단, 추론의 시작점이 곧 나 임. 내가 목격하는 모든 현상들은 내가 아닌 무언가, 혹은 나의 일부라고 해석될 수 있음. 내 생각의 대상이 되는 것도 나 자체는 아니고.. 나에 관련된 생각이라도 마찬가지. 어떤 형이상학적인 점, 인식의 시작점이자 인식의 조건. 이게 곧 나의 본질임. 그리고
철갤러3(116.45)2025-12-13 13:03:00
답글
이 이상으로 나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임. 칸트의 철학적 관점인데, 나는 이게 굉장히 탄탄한 생각이라고 봄
7살 나도 14살 나도 그 시기에 필요한 만큼 최적화된 자아가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질문에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생물학적 나와 세상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해주는 생물학적 소프트웨어. - dc App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 에 대해서 생각해보는것도 좋아요
그리고 철학이 어려운 말을 쓰는건 대부분 작가가 독자로 하여금 일부러 깊게 생각하게 돕는 표현방식이에요 그냥 보통방식으로 말해도 상관없지만 괜히 어려운 말을 쓰면 이게 무슨뜻이지? 하게되는거죠 그냥 평소하듯이 생각해도 괜찮습니다
결국은 좋아하는 음식과 같다고 생각해요 뭐냐면 다른 철학자들은 피자를 좋아하는데 굳이 나도 피자를 좋아할 이유는 없짆아요?
어려운말 쓰는거 이해안된다. 솔직히 전문 용어가 편리하고 정확한건 맞는데 쓸데없이 스팸하라고 있는건 아님.
철학이 너무 어려운 말인건 둘 중 하나임... 독자가 용어에 익숙하지 않거나, 철학자가 스스로도 잘 모르면서 썼거나
요즘은 인공지능이 굉장히 똑똑해져서 함께 탐구하면 꽤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거임
실체적 관점에서는 12개월 24개월때 유아가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하는 어머니의 시선임 , 이게 초기 자아형성에 영향을 주고, 그 후에도 타자의 시선을 사회적 차원에서 내면화함 라깡이 무의식의 타자의 언어라고 하는것처럼, , 여기서 나와 타인의 경계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형성됨, 이 과정이 정상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면 타인의 본질이란거 자체에 대해서 숙고할수 없는 영구적 결함을 가지게 됨 즉 AI와 자신이 경계가 희미하고 타인과의 자신의 경계가 희미해짐,
본질적 관점에서는 (실제는 아니지만) 연속적 기억, 사실 인간은 기억이 조각나있는데 이 빵꾸난 기억의 구멍사이를 자신이 생성한 스크립트나 특정 내러티브로 메꿔버리는거 영화 메멘토같은거 보면
본인 철학적 관점에서는 내가 시작하고 타인이 멈추는 건강한 지점을 갖는것 , 즉 타인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공/무. 김지하 시인이나 유명한 라이트 노블식으로 말하면 <공의 경계> 라고 할수있음. 세상이 어디서 끝나는지 알아야 그 지점부터 내가 시작되고 내 존재의미가 끝나는 지점을 알아야 세상이 시작되는 지점을 알수있음. 근데 뭐 정신이 온전치 않는 경우(본인) 이 경계가 희미함. 모든게 하나로 보임 세상과 내가 희미하게 하나로 보이고, ㅋㅋ 사물의 존재방식도 나랑 결합되어 있음. 내가 세계의 의도고 세계가 나의 의도안에 있음. (도청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모 정치인을 보면 이런케이스)
@rfi(59.7) 어디서 얻은 지식입니까
introspection
@rfi(59.7) 대단하오
나로서의 나와 타인에게의 나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함. 본질이라는 것은 '그것을 빼면 다른 것'이라는 의미인데, 나로서의 나에서는 그런 게 없음. 심지어 사물에게도 나로서의 나를 사용할 수 있으니 더더욱 본질이 없다고 봄. 그러나 타인에게의 나는 구분 지어지는 특수성이라고 보면 될 듯. 어떻게 생겼고, 행동하고, 생각하는지 등 그것을 하나의 객체로 묶은 다음에 ~스럽다 라고 하는 거겠지.
그리고 나로서의 나에 본질이 없다는 건, 불교의 무아와도 같음. 말 그대로 진짜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는 것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선 살아있는 인간의 본질은 없다고합니다 다만 상황에대한 선택과 의미부여만 있을 뿐이죠... 실존자에게 본질이 없다는말은 자유와도 같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개념입니다 - dc App
님 정신분열증이 왜 있는지 알음? 나 라는개념은 누가 정해줄수도 있고 스스로 쪼갤수도 있음. 정체성은 절대적이지 않을 뿐더러 누군가 부여하거나 박탈할수도, 스스로 개조하거나 폐기할수도 있음. 나 라는것은 현재 가장 합당한 정신 시스템의 지휘권자임.
모든 사유, 판단, 추론의 시작점이 곧 나 임. 내가 목격하는 모든 현상들은 내가 아닌 무언가, 혹은 나의 일부라고 해석될 수 있음. 내 생각의 대상이 되는 것도 나 자체는 아니고.. 나에 관련된 생각이라도 마찬가지. 어떤 형이상학적인 점, 인식의 시작점이자 인식의 조건. 이게 곧 나의 본질임. 그리고
이 이상으로 나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임. 칸트의 철학적 관점인데, 나는 이게 굉장히 탄탄한 생각이라고 봄
생각하는 자신은 의심하지 말랬음 칸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