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막부를 설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말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이기는 법만 알고 지는 법을 모르는 자는 언젠가 화를 입게 된다."
이 말은 단순한 전쟁 전략이나 권모술수에 대한 교훈이 아니다. 그는 인간사 전반에 대한 통찰을 담아 이 말을 남겼다. 누구든 언젠가는 패자가 될 수 있으며, 이길 때의 태도와 지는 순간의 품위가 결국 그 사람의 인간됨을 결정짓는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한 경고처럼 느껴진다. 특히 ‘지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많은 이들이 조금만 우위에 서게 되면 돌변한다. 직장에서 직급이 올라가면, 그 순간부터 후배들을 부하처럼 대하고, 돈을 조금 더 벌게 되면 친구를 깔보며, 학벌이 높다는 이유로 타인을 무시한다. 줄 서 있는 상황에서조차, 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뒤에 선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렇게 사회적 서열이나 우위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것을 타인을 짓누르는 도구로 사용하는 태도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 흔히 목격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행동을 하면서도 스스로 죄책감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태도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 바로 '노력'이라는 이름의 자기 합리화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노력 덕분이야"라는 서사는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성공 공식처럼 통용된다. 그러나 이 내러티브는 쉽게 타인의 불행을 정당화하는 데 쓰인다.
"쟤는 게을러서 저 모양이지."
"나는 잠 안 자고 공부했는데, 쟤는 안 했잖아."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어딨어?"
이런 말은 자신의 운이나 특권은 철저히 외면한 채, 상대방을 게으르거나 무능한 존재로 몰아붙이는 데 사용된다. 결국 ‘노력’은 무례함과 무관심의 면죄부가 되어버린다.
이처럼 타인에게 무례하게 굴고, 남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던 사람은 정작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극도의 고립을 경험하게 된다. 직장을 잃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네가 못났으니까 그런 거야"라고 말한다. 사업에 실패하면 "그럴 능력도 없는데 왜 시작했냐"며 비난하고,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면 "그 정도는 누구나 겪는 일"이라며 외면한다. 결과는 한국 사회의 압도적으로 높은 suicide rate로 나타난다. 이 문제는 개인의 정신력이나 멘탈의 문제가 아니라, 패자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 문화, 지는 사람을 죄인처럼 몰아가는 분위기에서 비롯된 집단적 참사다.
특히 젊은 시절 자신이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해서 타인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나이 들어서 그 대가를 치른다. 젊은 시절 외모나 인기, 성적 매력 등을 무기로 타인을 하대했던 사람, 학벌이나 스펙을 내세워 동년배를 얕잡아봤던 사람, 단지 연애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상대를 소모품처럼 대하던 이들. 이들은 결국 시간이 흘러 그 지위와 조건을 잃게 되었을 때, 사회로부터 동정이나 연대를 기대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혹한 무관심과 외면뿐이다. 젊었을 때 자신이 베풀지 않았던 아량은, 결국 노년의 삶에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위대한 개츠비』의 첫 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이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을 때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가졌던 이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또한 청태종은 말했다.
“하늘이 도우면 필부라도 천자가 될 수 있고, 하늘이 재앙을 내리면 천자라도 외로운 필부가 될 것이다.”
사람의 삶은 운과 조건, 시대와 환경에 따라 끝없이 바뀌는 것이며, 누구든 나락에 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내 앞에 있는 상처 입은 사람, 실패한 사람, 혹은 단지 나보다 덜 가진 사람에게 보이는 나의 태도는 곧 미래의 나를 향한 태도이기도 하다.
‘지는 법’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겼을 때도 겸손을 잃지 않고, 약자에게 관용을 베풀며, 자신의 운과 조건을 되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으며, 타인으로부터 진정한 존중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지금 타인에게 베푸는 작은 공감과 아량은, 언젠가 우리 자신의 구명줄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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